첫사랑의 연정
조 윤 환 herbal-me@hanmail.net
달리는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타고 라일락향이 늦은 봄을 풍요롭게 하였다.
징검다리 하루를 휴가로 하여 삼박 사일의 여행은 즐겁기만 하였다. 진주 촉석루와 남강 변을 거닐면서 갑자기 혜란이가 허리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드는 연기를 하였던 것이다. 젖은 옷을 강가에서 모닥불에 말리면서 마주보는 눈길은 불타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의 전화벨소리가 요란하였다. “그 더벅머리 총각 좀 바꿔줘요.”고함소리가 쩌렁쩌렁 하였다. “새파란 말단주사 주제에 감히 누구를 넘보는 거야 응! 당장 발 끊어 알았어.” 눈앞이 깜깜하였다. 높은 돌담이 무너져 앞을 덮치는 것만 같았다.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일주일 전 혜란의 제안을 받고 여행을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민박을 하면서도 방을 따로 사용했다. 평상시도 철저한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된 우리는 서로 존중했다. 항상 수호신처럼 지켜주는 그 마음 씀씀이 때문에 혜란은 나를 더 신뢰하고 사랑하였다. 그런데 이 수모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부모처럼 보살펴 온 혜란의 큰 언니가 극성스럽게도 반대했다. 그녀는 주로 관공서를 상대로 납품하는 중소기업 사장이다.
그 다음 날 퇴근길에 정성들여 준비한 선물을 양손에 들고 혜란의 집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을 여는 순간! 너는 뭐야. 그녀의 언니는 나의 가슴을 힘차게 떠밀어 뒤로 넘어졌다. 손에든 선물은 뒤로 나가 떨어졌다. 문전박절 당한 이도령 꼴이 되어 비참한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숙집 의 독방에서 뜬 눈으로 날을 새었다. 출근하여 사무실에 도착하니 관서장이 호출하였다. 혜란의 큰 언니가 와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모욕을 주고도 관서장한 테 항변하였다.
그 연유로 나는 경고를 받고 8층 전자교환기부품 창고내부에서만 근무하는 금족령이 내려졌다. 외출도 나가려면 일일이 결재를 받고 나가는 감시를 받는 신상특이자가 되었다.
기술자들이 요구하는 물품만 출급하여주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도 전화도 통제 당하였다.
헤란은 책갈피에 눌러 말린 라일락꽃잎을 편지에 붙여 사랑의시를 보내곤 했다. 작은 꽃이 많이 모여서 한 송이를 이루었다. 색깔도 진한 원색이라 요염한 것도 아니고 ,백목련처럼 청아한 것도 아니다. 은은한 보라색 ,어디까지나 겸손한 색깔이다. 그러나 이 꽃의 향기만은 결코 수수하거나 은은하지 않다. 아카시아의 향기보다는 좀더 짙고 ,장미의 향기보다는 좀더 달다. 많은 꽃송이이가 한꺼번에 피기 때문에, 가냘프게 풍기는 향기가 아니고 와락 가슴에 한 아름 안기는 향기였다. 라일락은 그 꽃 모양보다도 그 향기로 사랑을 받았다. 혜란의 체취가 라일락과 함께 했다.
3급을류 공개경쟁채용시험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밤늦게 까지 공부하기 위하여 동대문시장에서 두꺼운 방한복을 구입하였다. 두 번을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새벽 기도를 시작하였다. 세 번째 도전하였다. 전국에서 이십여명 선발하는 시험이었다. 합격 발표하는 날 인사담당 심대리가 뛰어왔다. “ 조 대리! 합격 했어!”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흥분되었다. 라일락 꽃송이를 안고 달려온 혜란의 입김은 와락 가슴에 한 아름 안기는 진한 향기였다.
우리는 처음에 라일락꽃이 만발하던 때 그 향기를 음미하며 첫 연정을 느꼈었다. 홍일점으로 합격한 혜란이가 월간지에 나와 함께 기사화 되었다. 그 것이 인연이었다. 그녀는 나일락꽃을 너무도 좋아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첫 사랑의 연정이라 그렇게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의 사랑을 라일락으로 승화시키자고 했다. 그녀는 목을 안고 등에 업혔다.
혜란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모욕을 주었던 언니를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불치의 췌장암 선고를 받고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공항으로 달렸다. 혜란이가 탔음직한 비행기가 상공을 향하였다. 그 길로 마구 달렸다. 한없이 달렸다. 강화도 해변까지 도달했다. 바다에 뛰어든 태양이 붉은 사랑을 안고 혜란이와 함께 심해로 가라앉았다.
십년이 흘렀다. 정문입구가 소란스럽다. “ 이게 누군가? 아니 이 게 누구십니까! 정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 녀는 무릎을 꿇었다. “혜란이가 미국병원에서 눈을 감기 전에 윤아(나의애칭)를 부르면서 운명했어요.” 했다. 과거 잔인했던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이를 욕심에 눈이 멀어 가로막았던 자신이 저주스럽다고 했다. 동생이 사랑의 큰 상처를 안고 세상을 떠난 것도 자신의 잘못이라 했다.
혜란이와 정략결혼까지 시키려고 신뢰했던 자기회사 전무가 경리여직원 과 눈 맞아 회사공금을 빼돌려 인터폴이 안된 제3국으로 도피했다고 했다. 회사는 부도가 나고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고 했다. 살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가슴에 한을 뿌리 내리게 한 그 한 맺힌 그 여인이 가슴을 더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회사에서 심부름해주고 일당으로 생계를 유지 한다 고 했다. 친구회사에 편의를 좀 보아 달라고 사정했다. 그 당당하고 고고하던 그 기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기이하기도 했다.
라일락꽃의 향기는 밤에 더욱 두드러졌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시선으로 빼앗기는 많은 에너지를 밤에는 고스란히 향기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혜란은 그 모습이 라일락이었고 그녀의 눈빛이 연보라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반가워 안길 때마다 라일락향기가 물신 베어들었다. 라일락꽃을 입에 물고 이마를 마주 하여 입술을 부비며 사랑의 시를 읊었다. 향기 짙은 혀로 계속하여 속삭였다.
그녀의 언니한테 당했던 수모는 내 일생에 가장 큰 상처로 남아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총무과장, 회계과장, 기계과장등이 강하게 반대를 했다. 모두가 주사 때 동료였기 때문에 잘 아는 친구들이었다. 그 순간 불치의 병을 안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언니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던 그 음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라일락꽃다발을 안겨주자 그렇게도 좋아했던 혜란이가 창가에 걸려있는 구름위에서 웃고 있다.
첫댓글 세월이 흘러도 첫사랑의 달콤함은 사라지지 않는가보군요.ㅎㅎ~~ 모욕준 혜란씨의 언니덕에 고시패스까지 하셨네요.ㅎㅎ`~
딸에게 20대 청년기의 사랑의 스토리를 주어 아버지의 청춘사를 동화처럼 들려주고 싶어서 올렸구나 회상에서 현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여 주고 싶었다. 밝고 명랑한 긍정적인 박진감넘치는 삶을 살으려므나
세월의 나이는 마음의 나이를 걸코 앞서지 못하더라구요. ㅎㅎ
칠순이 지난지도 3년이건만 20대 청년시절이 그리워 청춘으로 끌어와 그 순간만이라도 젊어지고 싶어 회상록을 그렸는데 보아주어 고맙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