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1970년 대에 이태리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으로, 같은 시대에 미국에서 유행한 ‘상황미술’,‘개념미술’ 및 미니멀 아트의 일부와 유사하다. 1970년에 트리노 시립 미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가지면서 아르테 포베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Arte=Art, povera=poor의 뜻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뜻이 아니고, 우아하고, 고상한 전통적인 고급 미술에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아르테 포베라는 전통에 대한 반대이다. 전통적인 미술 형식이나 도상을 사용하여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을 거부하였다. 조직화 되지 않는 해프닝을 보여주므로 의미를 전달하려 하였다.
1971넌에 트리노 시립 미술관 전시에 대한 글을 옮기면 이렇다.
“아르테 포베라는 도상을 거부하고, 관습적인 표현 방식인 물감을 칠하는 캔버스를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산물)이라는 개념을 부정하고 제작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인 산물(작품) 대신에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을 제시한다.‘
아르케 포베라는 반 상업적이며, 불안정하며(고정적인 작품이 아니므로) 평범하고(일상과 구분이 되지 않는), 비형식적인 미술을 표방한다. 이것은 완성된 작품보다는 작품의 재료를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재료는 속성상 변하기 쉬으므로 고정된 작품이 되지 않는다. 피스톨레트, 마리오, 제글리, 마리오 메르츠 등의 작가들이 쓸모 없는 재료로서 미술작품을 만들면서 이 운동을 아르테 포베라 라고 하였다.
1970년 대에는 서양 미술이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여 극도로 세련된 작품을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미술운동을 서양 미술사에서는 아르테 포베라 운동이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1970년 대에는 아르테 포베라에 참여한 일부 작가들이 참여미술을 지향하면서 설치미술로 나아갔다. 그 결과 미술은 아주 난해해지고, 모호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보면, 1980년에 베른에서 열린 ‘논쟁과 통합’전에는 탁자 위에 유리알이 가득 들어 있는 크다란 유리잔을 얹어놓고 전시작품이라고 하였다. 제묵은 ‘세라자 요한의머리를 접시에 담아 내게 가져오라’ 였다. 이 설치작품이 의미하는 것은 수많은 유리알은 역사상의 유명인을 나타낸 것이다. 소크라테서스에서 파솔리니에 이르는 사람을 나타냈다. 이들은 역사의 희생자라고 불렀다. 이런 식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난해할 수 밖에 없었다.
미술은 하나의 기호이다. 기표/기의가 구본구조이다. 아르테 포베라는 기호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마침내는 기표/기의의 기능을 버리므로 미술의 의미를 모호하게 하였다. 이것은 이 시대의 포스터모더니즘적 구조주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아르테 포베라가 반 문화적 시기(7-80년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시기이다.)에 상징적이고, 관습적인 언어 기능을 붕괴시켰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반문화적이라고 한다. 문화는 언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술이 더 이상 언어의 기능을 가지지 못 한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미숧은 이제 더 이상 모방적이 아니다.(미술이론에서 모방이론이 전통적인 이론이다.), 재현을 통하여 상투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보기로서 캔버스에 아무런 그림들 그리지 않는 프레임만을 전시하였다. 이것은 미술의 전통인 재현에 대한 강렬한 반대를 나타낸 것이다.
‘가난한 미술 + 가난한 행위’라는 제목으로 미술작품의 전시와 행위 공연을 동시에 실행함으로 미술이 비물적인 행위로 확장하였다.(미술은 작품이라는 물질로 남는다. 그러나 행위미술은 연극적인 행위로 끝나므로 빗물질적인 작품이 남을 수 없다.) 이래서 리차드는 미술작품의 빗물질화(1997)라는 말을 하였다.
즉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사물(작품)을 만들어 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만 발생시킨다.고 하였다.(요셉 보이스의 플럭스서 운동에서 이미 보았다.)
이로서 예술과 삶을 구별하는 벽을 허물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