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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당한 무명의 싱어송라이터인 그래타(키이라 나이틀리)는 길거리연주자인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뉴욕 뒷골목의 작은라이브카페 무대에서 마지못해 노래(Tell me if you wanna go home)를 부르다가 한 중년남자의 주목을 받게된다.
한때 스타급 음악프로듀서였지만 지금은 가족에게 외면당해 허접한 원룸에 살면서 자신이 만든 음반사에서도 결국 쫓겨난 데이브(마크 러팔로)는 술집을 전전하다가 작은라이브카페에서 그래타의 노래에 필이 꽂힌다.
사랑을 잃고 뉴욕에 오만정이 떨어져 고향으로 가려는 여자와 그 여자의 재능을 발판으로 뉴욕에서 재기하려는 중년남자의 스토리는 참신함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음악영화의 공식이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함께 뉴욕에 왔다가 이제는 스타가 된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와 몇 년간의 실패로 ‘버본위스키’ 한잔 사먹을 돈이 없는 술에 쩔은 중년. 이 비루하고 절망적인 ‘루저’들의 분투기는 진부하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펼쳐내고 어떤 음악을 들려주느냐에 따라 관객들의 공감대는 달라질 것이다.
8년전 저예산 음악영화 ‘원스’로 화제를 모은 존 카니 감독의 새영화 ‘비긴어게인’은 결코 어둡고 칙칙하지 않다. 밝고 경쾌하다. ‘인생역전’을 위한 갈등구조도 과감히 생략했다.
프로 뮤지션출신인 존카니 감독이 선택한 지름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역시 정신없이 쏟아지는 음악이고 또하나는 뉴욕이라는 공간적인 배경이다.
비긴 어게인의 OST에는 올 가을 내한공연이 예정된 팝그룹 마룬파이브의 리더로 영화에선 그래타를 실연에 빠트린 애덤 리바인이 부른 영화 주제곡 ‘Lost Stars’를 비롯해 키이라 나이틀리의 소박한 보컬을 만나볼 수 있는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존 카니 감독이 작사, 작곡한 ‘Like A Fool’을 비롯한 16곡의 주옥같은 곡들이 청각을 자극한다.
뉴욕도 이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중한 무대다. 음반사로부터 투자를 거절당하고 선택한 길은 저예산 아이디어다. 밴드가 노래를 부르는 배경으로 천의 얼굴을 가진 뉴욕이라는 다채로운 풍광과 자잘한 소음까지 담아 현장감있는 음악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위해 존 카니 감독이 직접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센트럴파크, 타임스스퀘어, 지하철역, 엠바이어스테이트빌딩 주변건물 옥상, 차이나타운 뒷골목등을 로케이션 장소로 골랐다고 한다.
이 때문에 뉴욕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자신이 걸었던 곳이 음악을 배경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것을 보며 색다른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래타와 데이브의 분투기는 어떻게 됐을까. 관객의 예상대로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짜릿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타에겐 떠났던 스타애인이 돌아오고 데이브는 연애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난 아내와 다시 시작하게 됐다.
15만달러와 캠코더 2대를 들여 찍은 ‘윈스’에 비할수 없을 만큼 많은 예산이 투입된 영화지만 그에 반비례해 여운과 감동은 훨씬 적다. 하지만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애덤 리바인의 절창에 귀기울이고 뉴욕의 풍광을 입체적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만원짜리 티켓값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포인트/데이브가 그래타를 처음 본 라이브카페의 한장면. 혼자 통기타를 반주로 부르는 그래타의 건조하고 소박한 노래에 관객들의 반응은 신통치않다. 그러나 음악피디인 데이브의 눈과 귀엔 무대위 피아노와 바이올린, 엘렉트릭기타, 드럼이 스스로 연주하며 강렬한 사운드로 그래타의 노래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똑같은 노래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반주의 힘, 편곡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