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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足烏, 즉 풀이하면 "세발(三足)달린 까마귀(烏)"이다.
고대의 우리민족은 세 발 달린 까마귀가 태양 속에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까마귀를 "신(神)의 사자(使者)"로 귀히 여겼다. 또한 한님이나 해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단군의 지팡이 머리에 까마귀를 조각함으로써 단군이 "신의 사자"임을 나타내었다.
중국신화에서는 까마귀를 "현조(玄鳥)"로 북방을 지키는 새로 인식한다.
바로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북방을 검정색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한 북방은 오행(五行)에서 수(水)를 차지하고 있고, 이 水의 의미는 "탄생과 시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신의 전령인 성스런 신물(神物)에 왜 발이 세 개가 달린 걸까? 이는 우리 고유의 삼사상(三思想)에 유래한다고 보여진다.
바로 삼신을 일컷는 것으로 완성의 숫자로 삼(三)을 숭상한 것이다.
발이 두 개인 신의 전령 까마귀는 단순히 천(天)과 지(地) 즉, 신의 뜻만을 전달하는 의미이지만, 이 불완성체의 까마귀에 인간을 상징하는 발 하나를 더 붙여 "세발달린 까마귀"가 되어,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완성체적인 "신의 전령"이 된 것이랍니다.
발(足)이 세 개인 것은 이 삼족오 말고도, "삼족정(三足鼎)"라는 것이 단군 조선의 유물로 나타나고 있다. "세발달린 솥"은 단군왕검시대의 제기(祭器)로 국가를 다스리는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국가 치도(治道)의 이념을 상징한 것이 "세발달린 솥"이라면, 군왕 즉 단군왕검을 상징한 왕가의 문양이 바로 "세발달린 까마귀"인 것이다.
"삼족오"는 태양에 살면서 태양의 불을 먹고 사는 태양의 전령으로 전설에 나타나는데, 태양은 바로 하늘 혹은 밝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더 올라가면, 환(桓)이 되는 것이고, 배달(밝달)이 되는 것이다.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만물의 완성체를 가장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여, 삼신사상이 유래 되었는데, 단군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삼사상에 입각하여, 국가의 기틀을 삼조선으로 삼아, 일명 진한, 마한, 번한으로 칭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스스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족(天孫族)임을 자처하던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이 "삼족오"를 숭상의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여기었던 것이다.
한국의 삼족오
■ 고구려 벽화
고구려 벽화에는 풍속화, 초상화, 사신도 등과 함께 성신도(星辰圖:천체의 그림)가 많다. 성신도에는 해와 달, 별자리 등이 그려져 있고 해 속에는 까마귀가 그려져 있다. 이 까마귀가 삼족오이다. 해 속의 까마귀는 달 속의 개구리(金蛙, 혹은 두꺼비)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이 까마귀는 검은 색으로 되어 있고 다리가 셋이다. 이 세 발 달린 까마귀는 해의 상징으로 양(陽)의 뜻이고 개구리로 상징되는 달은 음(陰)의 뜻이다. 즉, 음양론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삼족오는 고구려 쌍영총, 각저총, 덕흥리 1호, 2호 고분, 개마총(鎧馬塚), 강서중묘, 천왕지신총, 장천 1호분, 무용총, 약수리 벽화고분, 그리고 다섯무덤(오회분) 4호묘, 5호묘 등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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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무덤 5호묘은 널길(묘도:墓道), 이음길, 널방(묘실:墓室, 현실:玄室)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 널방에는 사신도를 비롯해 많은 벽화가 있다.
동, 서, 남, 북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그려져 있다. 들보란 건물의 칸과 칸 사이에 있는 두 기둥 위를 건너지르는 나무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네 귀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재목을 말한다.
5호 무덤에서는 네 면의 벽 위에 약간 밖으로 내어 쌓은 부분이 바로 들보에 해당된다.
이 들보 위에는 서로 얽힌 용의 그림이 이어져 있다. 이 용들은 하늘 세계를 받치고 있는 것으로 천상과 천하를 가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들보의 각 귀퉁이에 삼각형의 돌판을 올려서 1단을 만들었는데, 한 변의 길이를 정확히 3분의 1로 나누어 삼각돌판을 올려 모줄임을 했기 때문에 네 귀퉁이에 4면이 나오고, 나머지 벽면과 같은 면에 4면이 나와 모두 8면이 된다(1단).
다시 이번에는 벽면 한가운데를 기점으로 각 귀퉁이에 1단보다 훨씬 큰 삼각형 돌판을 얹어 모줄임을 하여 면적을 좁힌 뒤(2단), 그 위에 커다란 천장돌을 올리는 절묘한 건축술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1단은 8각이고 2단은 4각인 특이한 모양을 이룬다. 4호 무덤은 1단과 2단이 모두 4각이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모서리를 줄였다고 해서 이러한 건축양식을 모줄임(말각조정 : 抹角藻井)이라고 한다.
동북쪽(청룡과 현무의 귀퉁이)에 나무처럼 생긴 식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날아오르는 해신과 달신이 있고 두 다리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앞뒤로 힘있게 펼쳐졌으며, 오색의 굵은 꼬리는 아래에서 위로 탄력 있게 휘어 오르고 있다.
해신(복희)은 머리에 삼족오가 들어 있는 해를 이고 있으며, 달신(여왜, 여와)은 달을 이고 있으나 달 속의 두꺼비는 사라지고 없다. 그 위쪽 2단에 용을 타고 춤을 추는 신선과 피리를 부는 신선이 있는데, 이들 뒤로 북두칠성과 삼족오가 보인다.

5호묘 해의 신

다섯무덤 4호묘의 일월신과 삼족오(출처 : 천리안 자료실)

다섯무덤 4호묘의 악기를 연주하는 신선과 삼족오(출처 : 천리안 자료실)
=> 고구려 역사 유적 답사(홀본, 국내성편) - 서길수, 사계절
■ 桓檀古記(환단고기)
桓檀古記(환단고기, 한단고기) 단군세기(檀君世紀) 중에서 8세 단군 우서한(혹은 오사함)
재위 8년 갑인 7년(B. C.1987년),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날아와 대궐 뜰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날개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고 한다.
甲寅七年三足烏飛入苑中其翼廣三尺
* 단군 우서한은 8대 단군으로 8년 동안 재위(B. C. 1993 ~ 1985)
=> 한단고기 - 임승국 번역, 주해 - 정신세계사
■ 기타
우리의 전통적인 풍습에서도 아기를 출산(出産)하면 대문(大門)을 가로질러 검정 숯과 빨간 고추, 흰 종이를 끼워놓은 새끼줄을 걸어놓는데, 이 것을 '검줄'이라고 부르며 '신색(神索)'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제단(祭壇) 앞에 까는 노란 흙을 신토(神土)라고 적으며, '검토'라고 읽어서 과거에는 '신(神)'을 '검'이라고 읽었다. 또한 한글에서 '까마귀'나 '거미', '그믐달' 그리고 '검은' 색(色) 등 어두운 흑색(黑色)을 가마, 검, 그믐 등으로 말하는데, 이 또한 '곰'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곰'은 곧 '흑곰(黑熊)'을 말하는 것이며, '흑곰'을 '신(神)'으로서 추앙(推仰)한 고대(古代) 종족(種族)이 남겨 논 흔적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구려 (高句麗)에서 태양(太陽)을 '세발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로 형상화하거나, 신화(神話)에서 태양을 '금오(金烏)'라고 부른 이유도 모두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풍습에서도 아기를 출산(出産)하면 대문(大門)을 가로질러 검정 숯과 빨간 고추, 흰 종이를 끼워놓은 새끼줄을 걸어놓는데, 이 것을 '검줄'이라고 부르며 '신색(神索)'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제단(祭壇) 앞에 까는 노란 흙을 신토(神土)라고 적으며, '검토'라고 읽어서 과거에는 '신(神)'을 '검'이라고 읽었다. 또한 한글에서 '까마귀'나 '거미', '그믐달' 그리고 '검은' 색(色) 등 어두운 흑색(黑色)을 가마, 검, 그믐 등으로 말하는데, 이 또한 '곰'과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곰'은 곧 '흑곰(黑熊)'을 말하는 것이며, '흑곰'을 '신(神)'으로서 추앙(推仰)한 고대(古代) 종족(種族)이 남겨 논 흔적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고구려 (高句麗)에서 태양(太陽)을 '세발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로 형상화하거나, 신화(神話)에서 태양을 '금오(金烏)'라고 부른 이유도 모두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까마귀의 까맣다, 검다의 뜻은 바로 우리 말의 검다라는 뜻으로 곰이란 뜻이다. 곰, 검의 뜻은 바로 존경한다, 신성시 한다라는 뜻으로 이것은 바로 왕이란 뜻이다. 이건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란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란 말이 바로 이 곰이란 말에서 나왔다.
삼족오가 동북아 공통의 문화로 중국에서도 보이고 일본에서도 보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지만 고대 토기 모양에서 세 발 달린 토기가 수없이 나오고 있다. 은나라 유물을 보더라도 그렇고 산동성 대문구 문화의 토기를 보더라도 세 발 달린 토기 모양이 발견된다. 그러나 은나라가 동이문화임이 증명되고 대문구 문화가 동이문화라고 본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보여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나타나는 삼족오, 그리고 까마귀의 모습을 한 솟대와 정월 대보름의 까마귀제 등에서 신조로서의 까마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세발 까마귀는 원래 동이족이 숭상하던 신성한 새였다.
상고시대 동이족은 중화족을 압도하여 동아시아의 맹주의 역할을 하였으나 후에 한족과의 경쟁에 밀리게 되고 중국의 사상의 영향으로 '한족을 핍박하던 동이의 상징'인 까마귀에 대한 한족의 시각이 우리 문화로 스며들게 되었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까치는 길조로 여기고 북방을 상징하는 까마귀는 흉조로 여기는 조선의 사대주의 양반들로 인해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신화속의 삼족오
태양 속에 사는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한 특징을 가지는데 바로 달 속에 사는 두꺼비와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신화에 나타나는 태양속에 사는 까마귀에 대한 전설은 후예(后예)란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후예사일(后예射日 : 후예가 태양을 쏘았다)로 표현되는 신화 부분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제의 한 명인 요임금 때 하늘에 열 개의 태양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열 개의 태양은 천제와 그의 부인 희화(羲和)의 아들들로서 원래는 하루에 한 명씩만 하늘에 나와야 하지만 어느 날 장난끼가 동해 열 명이 모두 하늘로 나왔습니다.
열 개의 태양이 하늘에 떠 있으니 지상에는 큰 난리가 납니다. 식물들과 동물들이 죽어가고 강과 바다의 물도 말라버리는 등 엄청난 재앙이 닥치게 되어 요임금은 천제에게 이 혼란을 막아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에 천제는 후예(后예)라고 하는 활의 명인을 지상에 내려보냅니다.
후예는 10개의 화살을 가지고 지상에 내려온 후 지상의 참혹한 모습에 분노하여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렸는데 이 때 화살에 맞고 태양이 떨어진 자리에 죽어있는것은 바로 까마귀였습니다. 요임금은 후예 몰래 화살 한 개를 감추어 마지막 1개의 태양은 남겨 두었다고 합니다.
후예는 인간세상을 구했지만 천제의 아들들을 쏘아죽인 죄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으로 추방당합니다. 후예의 부인은 항아(嫦娥 : 또는 상아)라는 여인이었는데 이 여인은 남편 때문에 인간계로 추방당한 것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되어 매일 바가지를 긁습니다.
후예는 아내를 위해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를 찾아가 불사약을 받아와서 아내에게 줍니다. 원래 부부가 반드시 나누어 먹으라고 준 것이었지만 항아는 남편 몰래 혼자 다 먹어버립니다. 불사약을 먹자마자 항아는 하늘로 올라가게 되지만 올라가던 도중 남편을 배신했다고 천제에게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하늘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달 속에 가서 두꺼비가 됩니다. 달은 밤에만 뜨니 낮에 숨어살기에 좋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후 아내에게 배신당한 후예는 좌절하여 술로 지새다가 제자에게 마저 배신당하고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이것이 중국신화에 나오는 후예사일(后예射日)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럼 이 신화는 언제 형성되었으며 이 신화에 나오는 저 태양속의 까마귀 다리가 세 개로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후예신화는 적어도 춘추전국시대에는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이 그의 작품 초사(楚辭)속에서 후예에 관해 읊고 있습니다.
전한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춘추원명포(春秋元命苞)라는 책 속에 삼족오의 명칭이 비로소 등장합니다만 이 춘추원명포라는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그 내용만 다른 책에 실려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삼족오의 다리가 왜 세개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陽數起於一成於三故日中有三足烏
양수는 1에서 시작되어 3에서 완성되니 고로 태양속에는 삼족오가 있다.
또 후한 초기의 인물인 왕충(王充)이 쓴 논형(論衡) 설일(說日)편속에도 삼족오란 단어가 나타납니다.
儒者曰 日中有三足烏, 月中有兎蟾여
유자들이 말하기를 태양속에 삼족오가 있고 달 속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있다고 한다.
중국신화에서의 후예에 관한 이야기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루어졌으며, 전한시대에 비로소 삼족오의 형태로 발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첫댓글 삼족오 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