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연, 나누는 기쁨: 뉴욕가정상담소의 이명신 이사

불교에서 자주 듣는 말 가운데 ‘인연’이 있다. 낯선 우리가 우연히 만나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고 귀하게 여기고, 그래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인연이 있다. 어려울 때 위안이 되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런 인연은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이는 처음 보는데도 왠지 친근하고 믿음이 가고, 또 어떤 이는 괜스레 부담이 가고 불편한 사람도 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나는, 지난 유월의 첫날 낮게 내려앉은 구름을 보며, 뉴욕 원각사의 불사추진 위원장 정화섭 거사의 부인인 관음행 이명신 보살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운전 중 갑자기 전화기가 먹통이 되어버린걸 알았다. 약속 장소와 가는 방향을 다 전화기에 저장해 놓은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많이 헤매지 않고 10분가량 늦게 목적지에 도착해 긴장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약속 장소에 있던 몇몇 사람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아한 중년 여성이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인데도 잔잔한 반가움이 들었지만, 자리에 앉으면서 인사말과 더불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며 멋쩍어 하는데, 다행히 먼저 웃어주시니 비로소 초면의 어색함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살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관음행 보살과 원각사의 인연
부모님께서 모두 불자였던 유복한 집안에서 4남 1녀로 태어난 이명신 보살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성장했다고 한다. 1967년 컬럼비아 대학으로 일찌감치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곧 불문학을 전공으로 학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던 21세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곧 학업과 결혼생활을 병행하게 되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셨던 우리 어머니는, 제가 대학을 마치고 전문가로서 사회활동을 하기를 바라셨지요.” 원각사와의 인연은 그런 어머니로부터 비롯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숭산 스님의 친구인 청담 스님과 잘 알고 지내셨는데, 미국으로 가신 숭산 스님께서 절을 세우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당시에 모셨던 불상을 당신이 시주하셨다고 하셨어요. 그 절이 바로 원각사예요.” 첫째인 딸을 시작으로 2남 1녀의 자녀를 낳으면서 대학원까지 전공인 불문학을 공부 하였다. 그러면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결혼생활과 학부모로서 보낸 시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흘렀다. 그러는 틈틈이, 뉴욕에서 새롭게 접한 예술 분야에도 한번 몰입을 하면 열정을 가지고 도전했고, 그 성실함에 보상받듯 언제나 마지막에는 스승들로 그 재능을 인정받곤 했다. 다만 너무 몰두 하다 보니 건강상의 제약으로 조각가의 열정은 접어야 했다고 한다. 그동안, 원각사에는 어머니와의 인연을 생각해 찾아 가기는 했어도 신심이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6년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지고 심장수술을 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커다란 두려움에 직면한 보살님은, 제일 먼저 원각사에 달려가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편찮으셨던 법안 스님과 부주지였던 스님 앞에서 철없이 울면서 매달리며 기도 했어요. 만약 남편이 잘못되면 부처님이고 뭐고 다 없는 거라고.” 어려운 수술이었기에 꼭 원하던 의사가 있었지만, 워싱턴에서 열리는 학회 일정과 겹쳐서 하는 수 없이 다른 교수가 집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침, 담당 의사가 수술날 아침에 다치게 되어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미룰 수 없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원했던 의사가 학회를 접고 급히 돌아와서 수술을 하고 남편은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 “그 이후에도 몇번의 이와 같은 작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 제 삶에서 일어났어요. 그러한 크고 작은 일 뒤로, 진심으로 부처님을 따르는 마음이 우러나와 그 뒤 부터는 관음행이라는 법명으로 원각사 법회에 매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뉴욕가정상담소(The 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 Center:KAFSC)와의 인연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접어 놓았던 문화 예술 활동을 다시금 시작하면서, 마음이 맞는 교포 1세대가 중심이 된 ‘Circle of Friends’라는 봉사단체를 만들게 된다. 1994년 시작된 ‘Circle of Friends’는 뜻있는 17명의 회원이 모여서, 회원 간에는 활발한 문화활동을 나누고, 뉴욕가정상담소를 통해 봉사활동 및 기부활동을 실천하는 모임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얼마 전에는, 유명한 패션 브랜드인 ‘MISOOK’의 디자이너 박미숙 씨가 KAFSC에 의상기부의 의사를 밝히면서 이명신 이사와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오래동안 했던 의류 사업을 정리하면서 최고의 백화점에서만 판매되던 ‘MISOOK’의 새 의상을 1000벌가량이나 도네이션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이에 관음행 보살은 ‘Sharing is Caring’이라는 기금모금 바자를 기획하는데 일조하고 성공리에 이끌어서, 가정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던 피해여성들이 재정적, 심리적 독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주거지를 마련하는 프로젝트의 기금조성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이명신 이사가 보여준 이러한 꾸준한 리더쉽과 선행으로 지난 4월 25일, 사단법인 차이나타운 맨파워 프로젝트(CMP: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에 직업 훈련 및 교육 등을 통해 경제력 증진을 도모하는 단체)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자원봉사자 상(Volunteers in Service to Asian-American Community:VISAC)을 뉴욕가정상담소 이사로서 받게 되었다. 지난 18년간 한인 여성 커뮤니티 뉴욕가정상담소를 통해 변함없이 보여준 봉사활동이 뉴욕한국복지관의 김경락 목사와 방은숙 무지개의 집 이사장과 더불어 올해의 대표 한인 봉사자 3인으로,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5월 11일에 있었던 제23회 KAFSC(뉴욕가정상담소)의 Annual Benefit Gala(기금마련 행사)에서는, 여러 한인 관련 단체와 뜻있는 개인들이 기금 마련에 동참했는데, 550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서 이명신 이사는 남편과 함께 Gold Sponsor로서 한인사회 속에서 활발한 나눔의 미덕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KAFSC의 ’Raising Hop, Transforming Lives’라는 주제로 모인 올해의 Gala에서, 일 년 예산의 30%에 해당하는 40만 불 정도의 성금을 모을수 있었다고 한다. 박미숙 씨와 남편 해리 두리틀 씨도 ‘Doolittle Foundation’으로 참여해 이번 행사 최고의 액수를 기부하고 Platinum Sponsor가 되었다. 올해로 23년이 되는 뉴욕가정상담소는 미국 내 뉴욕 한인 비영리 단체 중에서 2번쩨로 큰 규모의 ‘public fund raising’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어 도움이 필요한 많은 한인 여성과 가족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고 있는 곳이다. 2010년 Gala 때, 인연이 닿아 나도 작게나마 뉴욕가정상담소의 기금마련 동영상 제작에 자원봉사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커뮤니티를 위해서 봉사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그 방법도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상담전화를 24시간 받는 자원 봉사자들과 각종 행사에 자원봉사할 인원은 항시 필요하다고 한다.
(www.kafsc.org)
Harry & Misook Doolittle Foundation(두리틀 재단)과 원각사의 인연
이명신 보살이 뉴욕가정상담소를 통해 알게 된 박미숙 씨와 남편 해리 두리틀 씨의 이름을 원각사의 수 많은 연등 속에서 찾은 건 정말 우연이었다고 한다. 작년 초, 청동 불상과 진신 사리 탑 등의 대작 불사에 착수했지만, 그 외 대웅전과 선방, 납골당 등의 건립을 위해서는 아직 모자라는 액수가 너무 많게 느껴지던 무렵에, 원각사 불사 추진 위원장인 남편과 법당에 앉아서 바라보던 천장의 연등 속에서 박미숙 씨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녀가 불자임을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고, 며칠 뒤에 박미숙 씨 집에서 열렸던 파티에서, 원각사에서 본 연등과 이름, 그 연등을 다셨다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보살님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박미숙 씨가, ‘그럼 남편에게 원각사 불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관음행 보살에게 선뜻 권했다고 한다. 이에 용기를 얻어 보살님은 평소에도 많은 기부를 해오던 이들 부부에게, 정말 계획에도 없던 원각사의 대작 불사의 의미와 상황을 설명하게 되었다. 며칠 뒤 원각사로 직접 방문을 한 두리틀 씨 내외와 이명신, 정화섭 부부가 함께한 자리에서 지광 스님은 대작 불사에 대해 영어로 열심히 설명하느라고 정작 그가 내어 놓은 보시 봉투를 열어보지 않고 그냥 두고 있었다고. 그러자 두리틀 씨가 먼저 열어 볼 것을 권했고, 그 안에는 생각지도 않게 큰 액수인 10만 불이 쓰인 체크가 들어있었다, 3월의 추운 날씨임에도 절에서 정성껏 지내는49재 제사와 또 미국 땅에 전통 한국식 불사를 위에 노력하는 원각사 신도들과 지광 스님에게 큰 감동을 받은 두리틀 씨는 다음번에 올 때는 Harry and Misook Doolittle Foundationd에서100만 불을 더 기부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작년4월 10일 법회가 끝나고 그 약속을 전달 하였다.
한편, 작년 11월 6일 신도 총회를 위해 한국에서 오신 회주 정우 스님은 박미숙 보살에게는 ‘보리마’, 남편 해리 두리틀 씨에게는 ‘설산’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셨다.
다정하고 단아한 모습속에 순수한 열정이 느껴지는 관음행 이명신 보살님은 이야기를 접으면서, “한때, 내가 그 당시의 ‘나’라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다음 생에는 ‘나’와는 다른 사람, 다른 조건의 ‘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며 지금은 “무심코 내뱉은 그런 말들에 반성하며 지금,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고 서로 보듬으며 살고 싶다”고 했다. “불자로서 세상에 불법이 두루 전해지는 일이라면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죠.”라고 수줍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보살님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왜 원각사가 그토록 보살님에게 소중한지를 물었다. “지광 스님같이 지혜롭고 따뜻한 스님이 원각사에 오신게 원각사 신도로서 참 행운이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대답하는 보살님의 말투에 진심이 담북 묻어 나왔다.
그 넓이만큼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원각사의 미래는, 미국 속에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우리나라의 뛰어난 불교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미주 최고의 전통 한국 도량이 될것이고, 그럴 수있는 많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힘써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꾸준하게 불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원력을 내어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고 귀한 인연을 원각사와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