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4 자전거 김제용지 기행
자유인 조동화의 망중한!
나는 1950년 김제시 용지면 와룡리 김제조씨 가문에서 태어나 韓國鐵道公社에서 指導팀장으로 停年 退職하고 남은 시간 自由人으로 살면서 산행과 유적지탐사로 시간을 소일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로 세월을 낚는 방랑자라 하면 될 것 같다.
오늘은 나의 고향 김제시 용지면 일원기행을 목표로 아침일찍 도시락과 사과하나, 참외하나, 계란2개와 물, 매실주 반병을 준비하여 자전거로 백구정까지 온후 정자에서 잠시 휴식하고 자전거를 타고 부용사, 새절에 있는 봉의산 용봉사를 탐방했으며 봉의산을 국교때 원족 갔던 기억을 찾아 30분정도 등산하고 구암리로 이동 용지국민학교에 들러 학교시절 황새가 집을 짓고 수십마리가 살았던 은행나무를 관찰하였고, 소풍을 자주 갔던 사창산에 올라보니 공원으로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잘 단장해 놓았다.
도시락을 사창산 정자에서 먹고 사창산공원을 1시간 정도 걸은후 내려와서 6년전 작고한 이진선친구묘역을 살펴본후 반교리로 이동, 우주황씨 비석과 제실을 발견, 자세히 보니 황세택친구 어머님 효열각이 설치된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효열각 참배후 마교옆 애린원 임상교회를 답사하고 수하리 지나 내가 태어난 마을 와룡으로 이동, 와룡산을 1시간여 산책하다.
와룡산은 내가 어릴적 수도 없이 올라 새도 잡고 삐비도 뽑아먹고 바위에 올라 친구들과 소리쳐 놀던 기억이 있는데 와룡산에 오르니 옛 바위는 않보이고 묘똥과 우거진 숲으로 변하여 있었다.
학창시절 통학을 하며 기차를 이용하였던 옛 와룡역으로 이동, 역사는 철거되어 없어지고 금수친구가 시계포를 하던 최영구씨 소유 그건물은 지금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네.
금수친구는 시계포하던 건물을 살피고 추억을 하시구려.
그리운 추억의 터전 내고향 김제 용지를 뒤로 하고, 송방리를 거쳐 집에 도착하니 시계는 저녁 7: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달동안의 자전거하이킹을 이제는 접고, 푸른5월에는 산으로 맑은공기 마셔가며 자연을 벗하리라고 다짐해본다.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즐겁고 재미나게 살면 그것이 행복 아니겠는가요.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를 아는 사람들 건강하고 행복합시다.
☛자전거코스 : 오산교-신오산-만경강뚝방길-백구정-부용사-새절-용봉사-봉의산-평고-용지초등학교-사창산-마교-애린원-임상교회-와룡-와룡산-송방리-귀로
☛산행 및 산책내용
봉의산 30분 사창산 1시간 와룡산 1시간
☛자유인 조동화 오늘의 행복이야기
자유인 조동화의 오늘 하루 목표, 나의 고향 용지를 기행할 요량으로 어린시절 추억의 기억을 되세기고자 하는 작은 소망을 안고 아들이 타던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다.
인생의 삶의 행복이 무엇인가?
자유인의 신조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행복을 느끼자”입니다.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하며 사리라.
과거는 지나갔고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닐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식은 사창산 정자에 앉아 아내가 싸준 도시락과 매실주를 마시면서 어린시절 다니던 용지초등학교 500년 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니, 기분이 좋아 감개무량하였다.
성현군자께서 말씀하시길,
老覺人生 萬事非(노각인생 만사비)
늙어서 생각하니 만사가 아무것도 아니며.
憂患如山 一笑空(우환여산 일소공)
걱정이 태산 같으나 한 번 소리쳐 웃으면 그만인 것을.
온 세상이 훨씬 넓고 아름답게 보이고 편하고 진실하게 보이네
人生事 空手來 公手去 (인생사 공수래 공수거)
인생사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을........
===좋은글===
☛황세택친구 어머님 효부열녀비 비문내용
효부열녀(孝婦烈女) 나병순(羅炳順)여사의 헌신적인 행적을 칭송하고 귀감으로 삼고자 그 후손들과 친지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 효부열녀비를 세웁니다.
나병순여사는 나주인 나준식과 최선녀 장녀로 1928년6월28일 출생하여 1949년 12월22일 우주인 황호덕(黃鎬德)과 혼인하시여 슬하에 3남(황세택, 황겸택, 황경택)을 두셨습니다.
1960년1월22일 32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몸으로 시부모인 황봉규(黃奉奎)와 송상순(宋祥順)을 36년에 걸쳐 지성으로 섬기시고 봉양하셨습니다.
남편이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정성을 다해 장례를 치른후 곡기를 끊고 사경을 헤메다가 집안 어른들의 간곡한 만류와 당부로 생의 의욕을 되찾고 4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효성과 희생과 사랑을 다해 시어른을 봉공하면서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정성껏 뒷바라지하여 출가시켰고 자식들을 올곱게 양육하였으며 일생을 헌신하셨습니다.
이에 시부모를 섬긴 지극한 효성과 헌신 그리고 남편을 향한 사랑과 일편단심의 뜻과 행적을 기리고 빛내고 기리고자 2015년9월13일 김제향교에서 효열상을 수상하셨고, 동년9월18일 성균관효열상(成均館孝烈賞)을 수상하셨습니다.
☛세택친구에 보내는 서신
황세택어머님 효부열녀비 비각에 세겨진바와 같이 어머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세택친구가 성공을 거두어 더욱 어머님 헌신과 정성이 더욱 빛이나는구려.
세택친구 소중한 나의 친구 어머님께서 효성을 잘 알아주어 행운이 깃들것이네.
우주황씨 비석, 제각과 제단을 현대식으로 설치하여 참 잘해놓았네.
잘해 놓았는데 종중에 건의해서 담을 철거하고 묘역에 심는 푸른나무로 대체하여 사람들이 보기좋게 하면 좋을듯하네.
☛사창산
사창산 성지는 현 용지면 구암리 면소재지 뒷산 사창산에 있습니다. 사창산은 호남선 와룡역과 부용역 중간지대에 위치한 해발 63m의 낮은 언덕배기에 불과하나 이 산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사창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인근 지방 즉, 개토, 모촌, 금굴, 공동, 회포, 연산, 백석 등 7개 면의 국가 상환 곡을 수납창고 형태로 관리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습니다. 이 사창산은「수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제시대에는 수동산현이 있었던 곳이며, 통일신라시대에는 평고현이 위치하기도 한 고적지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용지면 서부일대가 잡초지로서 관개시설이 발달되지 않아 만경강 하구가 개수되기 이전 서해의 바닷물이 수동산 아래까지 넘쳐 사창산에 보관한 정부 양곡 및 군량미를 용암천 하구에서 배에 싣고 부용천을 따라 만경강으로 나가 군산 앞바다로 해서 서울로 보냈다는 곳입니다. 통일신라때에는 정부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과 군량미를 조선시대에는 구휼미를 보관하였다가 흉년이 들거나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울 때 보관했던 쌀을 풀어 어려운 백성을 구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사창산 등성이에는 썩은 쌀알이 발견되곤 하여 앞서 말한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사적지로 보존되지 못하고 등성이의 파헤쳐진 밭에서 아무렇게나 곡물이 자라고 있으며, 양쪽(남,북) 등성이에 석산이 개발되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 크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자료참고 : 용지면사무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