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3월 25일 금요일 건강찾아 맛찾아 떠나는 팔도 여행! 오천항 수영성으로 향했다.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931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천’(鰲川)은 자라 오(鰲)에 내 천(川) 자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이름이다.
충청 수영성에 오르기 전 화장실을 찾아 오천항으로 향했다. 오천항에는 크고작은 많은 배들이 정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목항을 오가는 여객선이 1일 2회 운항하고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충청 수영성은 서해안 지역에 위치하며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漕運船)을 보호하고 왜구침탈을 방지했고, 근대에는 이양선을 감시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선조 29년(1596), 충청수사 최호가 충청수영의 본영과 속진의 수군을 이끌고 남해 한산도에 머물며 수군통제사 원균의 지휘를 받다가 이듬해인 선조 30년(1597) 7월 1일 일본군에 패하여 통제사 원균과 함께 전사했다.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하였으며,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성곽 안쪽 둘레길에 의미를 알 수없는 사진 액자 모형의 돌벽을 지나게 된다. 적을 방어하기 위한 구조물이라면 성벽쪽에 구멍이 있어야 할 듯 한데, 복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겼을까?
수영성안에는 크고작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성곽을 돌려면 성안으로 도로가 개설되어 자동차를 피해서 도로를 건너 둘레길로 이동하게 된다.
마을의 수호신 처럼 노송이 마을을 내려다 보며 버티고 있다.
노송아래 벤치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정담을 나누며 곡차가 생각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영성 인근 천주교 대전교구 갈매못 순교성지로 이동했다. 1866년의 병인박해 때, 조선 제5대 교구장이던 주교 다블뤼(Davelu)는 회장인 황석두(黃錫斗)와 함께 당진에서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듣고 신부 위앵(Huin)·오메트르(Aumaitre)도 자수하였으며, 장낙소(張樂韶)도 제천에서 체포되어 이들 모두는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한 문초를 받은 뒤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마침 고종의 혼인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관계로 서울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보령의 수영(水營)으로 옮겨져 처형되게 되었다고한다.
건강찾아! 맛찾아! 떠나는 팔도여행! 보령시 오천면에 위치한 충청 수영성과 갈매못 순교성지를 둘러보고 함께한 일행 지인의 초대로 "한양코다리조림"에서 코다리조림에 시원한 소주를 마시며 오늘도 건강과 행복을 심어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