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일을 기억에 담고 싶지 않다.
황지은
핼러윈 데이를 이틀 앞둔 주말 저녁. 핸드폰에 서울 여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손주들이 핼러윈 특유의 차림새로 동네 골목길을 다니는 모습이다. 아이들 차림새가 제각기 독특하다. 재미있는 포즈까지 취하여 귀엽다. 미국에서 손자 돌보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낯설지 않다. 추억이 함께하니 친숙하게 느껴진다. 동생 집은 주소가 이태원동이다. 사진 뒷배경에 그곳 분위기가 담겼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듯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각에 무심히 티비를 켰다. 화면에 ‘이태원 대참사’ 속보 자막이 뜨고 믿기지 않는 장면이 나왔다. 인파에 밀려 넘어져 압사했다는 사망자 숫자가 오보로 의심이 될 정도다. 사고 현장이 동생 집에서 멀지 않았다. 그 근처를 걸어서 지난 적이 있다. 동생 집에 택시 타고 갈 때도 그 앞을 지나갔었다. 길이 좁고 경사가 꽤 있는 오르막이다. 동네가 특별하다. 부자와 서민이 어울려 산다. 언덕 맨 위에 남산 하얏트 호텔이 있고 길 따라 내려오면 삼성그룹 회장 저택, 미술관이 있다. 외국인 대사관저가 있고 잘 알려진 유명 배우가 사는 집도 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차 집들은 규모가 작아진다. 소형빌라 오래된 원룸 판자촌 같은 건물도 있다. 대로변에 가까울수록 상권이 활발하여 아래쪽은 번화가로 형성되었다. 건물을 특이하게 꾸며 다양한 업종이 자리 잡았다. 백인과 흑인, 히잡 쓴 여인도 보이고 외국인을 쉽게 접하여 일부 어떤 곳은 외국인 듯하다.
엄청난 뉴스에 동생 집 가족이 무사한지부터 염려되었다. 전화를 거니 조카도 사건 현장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붐벼서 뒷골목으로 빠져나와 집에 와 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러나 뉴스에 사상자 숫자가 엄청나 거론하기조차 어려웠다.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할 말을 잃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에 벌어져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예전에 딸이 서울 출장와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모 집 가려고 차를 운전해 가니 길에 사람이 가득하여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양옆으로 비켜서니 바닷물 갈라지듯 길이 나타나 신기했다고 했었다. 평소 주말에도 그랬으니 특별한 날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동안에 사고 없이 무사히 넘어가 복잡함이 일상적으로 의례화된 것 같다.
카톨릭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 10월 31일 핼러윈 이브는 미국에서 어린이의 축제 날이다. 아이들이 특이한 복장을 하고 즐거워 마을에 집들을 방문하고 다녔다. ‘선물을 안 주면 해를 끼칠거야’ 하면서 다니니 마냥 좋아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오는 것을 대비하여 사탕과 초콜렛을 준비한다. 손자가 호박 모양의 통을 들고 다니며 과자 선물을 가득히 받아와 나도 함께 꽤 오래 먹었다. 평소 안 가던 집에도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방문하여 이웃과 인사하니 좋아 보였었다. 지금은 안전을 위해 모르는 집 방문은 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태원은 핼러윈 분위기가 다를 것이라 기대하는 젊은이들이 그곳에 가서 분장하고 인증샷 촬영하여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올해는 3년 만에 코로나 제재가 풀려 많은 인원이 이태원으로 몰려 인파의 물결에 휩쓸려 다녔나 보다. 미국은 총기사고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으나 일상에서는 안전에 대비하는 습관은 배울 점이다. 구급차나 소방차가 지나가면 정말 순식간에 길을 틔운다. 좁고 복잡한 길에서도 어찌하든지 간에 협력하여 빠르게 비킨다. 소방차 소리가 기겁할 정도로 요란하고 안 비키면 차를 부수며 지나가고, 무거운 벌금이 겁나고, 경찰 공권력이 대단한 이유가 있으나 잘못 처신해서 사회적인 지탄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앞사람과 옷깃이 닿지 않게 하는 거리 유지는 기본이고 사람이 보이면 이유 불문 차가 멈춘다. 아이들 등하교는 직접 시키거나 스쿨버스를 태워 혼자 다니게 하지 않는다. 고등학생인 손자가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니 엄마인 딸이 태워다 주고 끝나면 다시 가서 태워 왔다. 손자의 친구도 그 집 부모가 그리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 철저하다.
오래전 우리 집을 외국(캐나다)인에게 임대한 적이 있다. 그들은 입주하자 제일 먼저 아이의 안전부터 살폈다. 예를 들면, 요긴하게 쓰일 서랍장인데 일일이 빼 보고 서랍이 걸림 없이 빠져 위험하다며 바깥 베란다에 내다 놓았다. 거실 탁자 위에 깔린 두툼한 유리는 모서리가 둥근데도 아이 키 높이라 위험하다며 들어내었다. 나는 평소 조금 위험하다 싶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무의식중에 괜찮다는 생각으로 지냈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안전에 불감하였음을 인정했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태원 참사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충격이다. 사망자의 명복을 빌면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동생이 살고 있고 내가 다녔던 길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참담하다. 경제가 발전하고 K팝이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드라마가, 영화가 세계 선두를 달리는데 우리 모두의 안전 의식은 어느 수준인지 되짚어보게도 된다. 반성하고 개선하여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일상의 위험한 요소에 무의식적으로 익숙해지기 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이 필요하다. 가슴 아픈 일을 기억에 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안전에 관한 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