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친구
박 가 경
“부럽네요. 고등학교 친구랑 같이 여행을 다니고.”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보름달이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다. 달빛이 검은 바다 위에 비춰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 움직임들이 모여 하나의 다리 형태가 된다. 육지에서 바다 지평선까지 이어진 다리는 출렁출렁 살아 있듯이 춤을 춘다. 그 모습을 홀리듯 쳐다보는데 아저씨 말이 들린다.
“아저씨도 친구분이랑 여행 오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한다.
“직장 선배지 친구가 아니에요. 여러분처럼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마음 맞아서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경우는 잘 없죠.”
아저씨와는 테이블을 중간에 두고 ‘ㄱ’자로 앉았고, 테이블에는 빈 맥주 캔이 여러 개 뒹굴어 있다. 취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을 만큼 나른하게 졸린 눈으로 편히 캠핑 의자에 앉아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친구는 먼저 자러 간다며 텐트에 들어가 방충망이 반쯤 보이도록 문을 열어 놓고 누워 있다. 아저씨 말에 그런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옮긴다. 텐트 속에는 친구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 온다.
이번 울릉도 여행은 두 달 전부터 계획했다. 친구와 울진 여행을 다녀오면서 후포항에 울릉도 가는 배가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었다. 둘 다 울릉도와 독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같이 가자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곧바로 언제 갈지 정하고 2박 3일 일정을 짜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 여행 일정이 성수기랑 겹쳐서 숙박비가 비쌌다. 울릉도는 음식값도 비싸다고 알고 있어서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곳이 캠핑장이었다. 캠핑장을 자주 다녔던 언니가 캠핑용품을 빌려주기로 했다. 친구는 생애 첫 캠핑이지만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도 캠핑은 처음이라서 새로운 경험한다는 것에 기대 반, 캠핑 초보 병아리끼리 텐트를 치고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부담 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울릉도 여행 첫날, 울릉도 가는 배 중 가장 큰 배 썬플라워호를 타고 5시간 항해 끝에 울릉도가 멀리서 보였다. 울릉도의 첫인상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외로운 무인도 같았다. 평지 하나 없이 우뚝 솟은 산 자리 잡아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험해 보이는 자연 그대로 모습이었다.
사동항에 도착해서 보이는 울릉도는 공사장이었다. 공항을 짓기 위해 산을 깎고 섬에서 바다로 길게 뻗은 활주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개발 중인 울릉도는 길도 험하고 도로 옆에 절벽이 많아서 돌이 많이 굴러떨어졌다.
우리가 묵을 캠핑장은 울릉도 서면 남서리 해변도로 옆에 있었다. 숙소에 가기 전, 남서 일몰 전망대에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다. 전망대에서 쨍쨍한 오후 2시 태양과 보기만 해도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전설이 있는 우뚝 솟은 남근바위를 보았다. 저 바위를 보았으니 둘 다 결혼하게 되면 아들 하나는 낳지 않을까? 라는 생각하며 내려왔다.
친구가 여행 계획을 짜면서 1일 1수영을 강조했다. 서둘러 해가 지기 전에 학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친구는 스노쿨링용 수영복, 스노쿨링 마스크, 오리발을 준비했다. 나는 수영복, 스노쿨링 마스크, 첫 바다 수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명조끼를 준비했다. 친구는 바다에 들어가 오리발로 우아한 웨이브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구명조끼에 의지한 채 열심히 팔다리를 휘저으며 친구를 뒤따라갔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스노쿨링 마스크를 통해 바라본 맑은 바닷속은 너무 아름다웠다. 여러 종의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유유히 헤엄치고, 손을 휘저으며 인사하는 나를 무심히 시선 한 번 던지고 자기 갈 길 가는 물고기까지, 자연 아쿠아리움에 다녀온 것 같았다.
저녁에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텐트를 쳤다. 형부가 울릉도 오기 전에 시간을 내서 텐트 치는 법을 알려 주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는 터라 어설펐다. 친구도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하자는 대로 움직였다. 텐트가 엉성하게 모양을 갖추고 마지막에 비 올 것을 대비해서 지붕 천막을 텐트 위에 설치하려고 했다. 울릉도 바람이 세게 불었고 천막이 휙휙 날아가서 애를 먹었다. 옆 텐트 아저씨가 안쓰럽게 여겼는지 천막 설치하는 것을 도와주셨다.
해가 졌다.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고마운 옆 텐트 아저씨에게 고기 몇 점을 가져다주었다. 아저씨는 다른 친구분이랑 여행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몇 마디 나누고 텐트로 돌아와서 맥주와 함께 고기를 안주 삼아 맛있게 먹으며 바다를 감상했다. 울릉도는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섬이라서, 밤바다는 검은 바탕 도화지에 별이 몇 개 박혀 있는 광경일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오징어잡이 배들이 밤에 오징어를 잡겠다고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울릉도를 포위하듯이 둘러싸서 밝은 빛을 내서 눈이 부셨다. 저 빛 덕분에 캠핑 램프가 필요 없다며 불만을 털어버리고 친구와 첫날 여행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텐트 때문에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일 텐데도 묵묵히 같이해 준 친구가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독도 가는 날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떴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은 화창한 날씨다. 날씨가 좋아서 독도에 입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저동항으로 향했다. 독도행 배를 타고 달려갔지만, 기대와 달리 파도가 세서 배에서 내리지 못했고 아쉬움만 남겨 두고 돌아왔다.
마지막 해지기 전에 1일 1수영을 실천하기 위해 캠핑장 앞바다로 갔다. 사람은 없었지만, 샤워장이 설치된 것을 보니 수영을 할 수 있는 곳 같았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에 들어갔다. 학포 해수욕장보다 더 깊고 맑았고, 물고기 종류도 더 많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 때까지 수영했다. 친구는 엄청 행복해 보였다.
저녁으로 맥주를 따서 꼬치를 안주 삼아 먹을 때 옆 텐트 아저씨도 합석했다. 오징어 배를 제외한 모두가 잠든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릉도 여행 마지막까지 날씨가 좋았다. 오전에 캠핑장 앞바다에서 수영하고 배 시간에 맞춰 사동항으로 갔다. 울릉도로 올 때 타고 온 썬플라워호가 정박해 있었고 짧은 여행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승선했다.
“다음에는 네가 좋아하는 여행지로 가자” 친구가 멀어지는 울릉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친구는 수영을 좋아하고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을 약속했고 다음 여행지는 산이 될 것 같다. 아저씨가 말한 ‘부럽다’는 말을 이해할 것 같다.
여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친구와 나의 인연이 쭉 이어질 것 같은 단단함이 느껴진다. 여행하고 싶을 때 생각나고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기분 좋게 함께 하겠다고 하는 그런 친구가 나에게 있다.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인생의 한 부분을 공유하는 그런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