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오늘의 법구]
⊙ 불의 신에 대한 제사와 삼보에 대한 공양
아무리 평생토록 백 년 동안을 불의 신을 받들어 제사 지내도 잠시라도 존귀하고 거룩한 삼존 삼보님께 공양함만 못한 것이다. 단 한 번의 공양으로 얻은 복덕이 백 년의 제사보다 훨씬 더 낫다.
雖終百歲 奉事火祠 不如須臾 供養三尊 一供養福 勝彼百歲 수종백세 봉사화사 불여수유 공양삼존 일공양복 승피백세 《법구경(法句經)》 『술천품(述千品)』
----------------------------------------------------------------------------------------------------------------- 이 게송은 외형적 의례와 참된 공덕의 차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선 법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① 雖終百歲 奉事火祠(수종백세 봉사화사)
"아무리 평생토록 백 년 동안을 불의 신을 받들어 제사 지내도"
수종백세(雖終百歲)는 "비록 백 년을 살도록"이란 뜻이고, 봉사화사(奉事火祠)는 "불의 신을 받들어 섬기 며 제사를 지낼지라도"의 뜻입니다.
여기서 '불의 신'은 당시 인도 사회의 브라만교적 화신(火神) 아그니에 대한 숭배 의례를 가리킵니다. 평생토록 염소를 희생(犧牲)으로 삼아 제단에 바치고, 겉으로는 경건하게 제사를 지내며 복을 구하거나 현세적 이익을 바라고 사후(死後)에 천상(天上)에 나기를 기도하지만 살생(殺生)의 업(業)으로 천상에 오 르기보다는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기 쉬운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無知)의 소치입니다.
② 不如須臾 供養三尊(불여수유 공양삼존)
"잠시라도 존귀하고 거룩한 삼존 삼보님께 공양함만 못한 것이다."
여기서 '삼존(三尊)'은 곧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三寶)를 뜻합니다. 공양삼존은 삼보에 공양함을 말 합니다. 따라서 이 법구는 잠시라도 삼존(三尊), 곧 삼보(三寶)님께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삼보는 지혜와 방편으로 깨달음과 해탈로 이끄는 참된 의지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의 신을 섬겨 살생업이나 지어서 복을 구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처사입니다. 그보다는 잠깐 이라도 어리석음을 개혁(改革)하여 지혜를 계발하고 깨달음과 해탈로 이끄는 불(佛) · 법(法) · 승(僧) 삼보 (三寶)에 공양(供養)함이 현명한 일입니다.
③ 一供養福 勝彼百歲(일공양복 승피백세)
"단 한 번의 공양으로 얻은 복덕이 백 년의 제사보다 훨씬 더 낫다."
일공양복(一供養福)은 '한 번의 바른 공양으로 얻는 복덕'을 말합니다. 승피백세(勝彼百歲)는 '저 백 년의 제사보다 훨씬 수승하다, 뛰어나다, 훨씬 더 낫다'는 뜻입니다.
삼보(三寶)에 공양(供養)함에 희생(犧生)이란 없습니다. 이것은 우선 자비(慈悲)를 행함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탐(貪) · 진(瞋) · 치(癡) 삼독(三 毒)을 버리는 데서 시작하여 일심(一心)으로 본래 성품(性品)을 관(觀)하여, 열반(涅槃)을 증득하는 것이어 서 삼보(三寶)에 공양함은 이런 뜻을 새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깐 동안이라도 삼보에 공양하는 복덕이 백 년의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이 게송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공덕은 '대상'과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이는 의식의 규모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바른 깨달음을 향한 마음, 해탈을 향한 공양이 참 된 복덕을 낳습니다.
둘째는 세속적 복과 출세간적 공덕의 차이입니다.
불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대개 복 · 재물 · 장수 · 천상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삼보에 공양하 는 것은 탐 · 진 · 치(貪瞋癡)를 줄이고 지혜를 키우는 인연이 됩니다.
세속적 복은 윤회 안에서 돌고, 삼보에 대한 공덕은 해탈로 나아가는 씨앗이 됩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공양"이라도 그 공덕이 수승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의례의 길고 짧음 중요한 것 아니라
바른 귀의 지혜 방향 더 중요한 것이라네.
백 년의 그른 길보다 삼보공양 수승하다네.
오늘의 게송은 의례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바른 귀의와 지혜의 방향이 중요함을 일깨웁니다. 형식보다 본질, 시간보다 방향, 양보다 질이 중요함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백 년을 그릇된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한 순간이라도 바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게송은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행하는가?" "복을 원하는가, 깨달음을 원하는가?"
오늘은 붉은말의 해 병오년(丙午年) 새해 설날입니다. 적토마의 기세가 느껴지는 병오년입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바른 생각 바른 견해로 정진하며 베풀고 나누며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넉넉한 한 해를 기세 좋게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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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