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7일(토)
비행기 안에서 하룻 밤을 보내고 7일, 토요일이 되었다. 이 비행기는 시드니가 종착지. 나는 시드니에서 호바트로 가야 하는 상황. 국제선 비행기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기까지의 시간은 두 시간. 몸만 비행기를 바꿔 타는 게 아니라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가방을 찾아 콴타스 비행기로 다시 부쳐야 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과정이 변고없이 순조롭게, 두 시간 안에 무사히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드니가 목적지인 사람들이 부럽다. 타고 온 비행기에서 내리면 그만이니까. 도착 시간이 좀 늦어진다해도 큰 낭패는 없을테니. 하기야 알게 뭔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니.
나는 매사 초조해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데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경험이 없다는 것이 불안의 가장 큰 이유였다. 호바트 선배 언니 내외분은 30여년 간 호바트에 살면서 지금 나와 같은 경로를 수없이 오갔을 것이다. 물론 그러는 가운데 판단 착오와 낭패를 겪은 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어떤 변수가 생겨도 지금의 나처럼 당황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것이 바로 '경험의 짬밥'이자 내공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음에 있는 것이기에.
나는 어제 아시아나기에 탑승할 때부터 나이가 좀 들고 노련해 보이는 '언니 스튜어디스'에게 나의 '두 시간 미션'을 설명하면서 내 좌석 위치보다 좀 일찍 내릴 수 있도록 시드니 착륙 무렵, 가능하다면 나를 좀 앞 자리에 앉혀 달라고 부탁을 해 두었다. 그 스튜어디스는 앞 쪽에 빈 좌석이 있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밤새 승객들 시중으로 피곤했을 텐데도 내 부탁을 잊지 않고 착륙 30분쯤 전에 이코노미스트 석 맨 앞 줄 빈 자리에 나를 앉혀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감을 가라앉혔다.
드디어 비행기가 땅에 멈춰 섰다. 운이 좋으려니까 맞은 편에서 나오고 있는 비즈니스 석 승객보다도 내 동작이 빨랐다. 비행기에서 가장 먼저 내려보는 것은 또 처음이다. 승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좌우로 스튜어디스가 서 있고, 비행기 문은 곧 열릴 것이다. 나를 선두로 사람들이 줄을 섰다. 공연히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시에 기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지금 시각, 시드니 공항에 동시에 착륙한 비행기가 많아서 부득이 활주로 중간에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 순간 그 멘트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맨 먼저 내리는 사람이 아닌가. 드디어 문이 열렸다. 눈 앞에는 활주로와 비행기를 잇는 하얀 철제 계단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이나 국빈들이 전용기를 타고 내릴 때 의전하는 상황이 번뜩 머리를 스쳤다. 양쪽으로 도열한 사열대나 환영나온 관계자들이 보이지 않아 손을 흔들 필요는 없었지만 마치 내가 주요인물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사방이 확 트인 활주로 한 가운데를 지나는 맑고 싱그러운 바람이 기내에서 쌓였던 피로를 씻으라는 듯 얼굴을 상쾌하게 스쳤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활주로의 안내원이 이제 공항 셔틀 버스를 타고 플랫폼까지 이동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맨 앞 줄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불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온다던 셔틀 버스는 10분, 2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맨 먼저 내린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갔다. 우리를 태워갈 셔틀 버스는 결국 30분이나 지나서 왔고, 버스는 여러 대가 한꺼번에 왔기 때문에 거의 모든 승객들이 버스에 나눠타고 함께 출발했을 뿐 아니라, 진행 방향 상 내가 탄 버스는 맨 나중에 시동을 걸게 되어 결과적으로 나는 맨 나중에 내리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고 뭔가.
이제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되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 역시 일시적일 뿐이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는 데 이미 50분 정도가 허비됐고, 가방을 찾는데도 30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더구나 각 나라에서 도착한 비행기가 착륙할 곳이 없을 정도로 비행장은 초만원이었으니 짐 찾는 곳의 혼잡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나.
또한 국제선 비행장을 빠져나가 국내선 청사까지 가는 데는 또 얼마나 걸릴 것이며, 국내선에서 다시 짐을 부치는 줄은 얼마나 길지 경험이 없다보니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모든 일이 두 시간 안에 달려 있다. 살면서 두 시간의 의미가 그때처럼 절박했던 때도 없었을 것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는 곳에 다다랐다. 예상했던대로 원래도 넓지 않은 시드니 공항의 짐 찾는 곳이 사람들과 가방으로 뒤엉켜 상황은 한 마디로 절망적이었다. 아, 이대로 시드니가 나의 목적지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무슨 상관이며, 나를 마중나와 있는 사람조차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짧은 시간 동안 몇 차례나 덮쳐왔으니...
몇 개 노선에서 몇 개의 항공사가 짐을 부려놓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에는 이미 가방이 한가득이다. 가방 무게에 짓눌리며 마찰되는 벨트의 열기마저 느껴졌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벨트의 진동으로 인해 제 자리 뜀을 하면서 얼키고 설킨 가방들이 몸을 부대끼며 다각형의 도형을 만들었다 흩뜨렸다를 반복했다.
승객들이 미처 집어내기도 전에 벨트 입구에서는 꾸역꾸역 가방이 토해져 나왔다. 이미 벨트 위를 돌고 있는 짐을 부여잡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어렵사리 찾아 낸 자신의 가방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주위를 몇 겹으로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을 헤쳐 나가느라 몸이 휘청대는 바람에 그만 놓치는 일이 많았다. 그렇게 되면 가방을 쫓아 뛰거나 아니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내 앞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 나는 운명에 맡긴다는 심정이 되었다. '물고기 뱃 속의 요나'를 기다리 듯 언제일지 모르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어서 내 가방을 토해내기만을 기다렸다. 이미 내려진 가방과 짐들, 그것들을 싣기 위해 이리저리, 사이사이 아무렇게나 놓여진 카트들, 거기에 구색을 맞추듯 시드니 공항 특유의 각양각색의 남녀 인종들, 한 마디로 도떼기 시장, 아니 도떼기 공항이었다.
아까부터 카트와 여행 가방과 여행객 사이를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외쳐대는 한국인의 음성이 들렸지만 단체 여행객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려는 관광 인솔자려니 하며, 이 소란한 광경에 소음까지 더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이국에서 들리는 내 나라 말이 별로 반갑지 않은 것은 오래 전부터였지만, 호바트 행 국내선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탓에 그 목소리는 더 거슬렸다.
“지금 막 내리신 인천 발 아시아나 항공 탑승자는 가방을 미리 다 빼 놓았으니 컨베이어 벨트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바로 찾아가시면 됩니다."
아, 그 소리는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닌 구세주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한 쪽으로 여행 가방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고, 내 가방도 앞 줄 정도에서 어깨를 겨룬 채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려 번잡하고 혼란스러울 때 이따금 취하는 일시적 조치인지, 그날의 특별 서비스인지 따지고 궁금해할 새도 없이 나는 그저 하늘이 도왔다는 심정으로 가방을 나꿔채다시피 한 후 게이트를 바람처럼 빠져 나가 국내선 청사로 내달렸다.
5회에 계속
첫댓글 도떼기란 표현이 실감납니다 ㅎㅎ
시드니 국제 공항은 너무 좁습니다.
콩튀듯 팥튀듯 이런 표현이 적절해보이네요 만약 호바트행 비행기를 놓쳤다면 ㅋㅋㅋㅋ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아찔했겠어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ㅎㅎ
하지만 지나고 나서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