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에 시작된 코로나. 코로나와 함께한 지난3년은 많이 불편하고 국민적 손실 또한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다. 가까운 예로 아들은 대학 졸업을 하고부터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는데 3년 전 친구 3명이 출자를 하여 광화문 한 복판에서 직장인들을 상대로 식당을 차리면서 큰 꿈에 부풀어서 한 달에 4~500만 원 정도만 수입이 들어오면 금방 자산이 늘어나 계획한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며 좋아하였는데 식당을 시작한 서너 달 만에 코로나가 창궐하게 되니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식당에는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고 급기야는 적자롤 메꾸며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은 손을 놓고 말았다. 세 친구가 투자한 금액은 총책임을 맡은 친구가 3억을, 그 다음 친구가 2억을, 아들은 그나마 자본이 넉넉지 못하여 1억을 투자했다가 약6개월 만에 깨끗하게 맨손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잘 살아보겠다고 월급 받아 모은 돈 1억을 날리고 나니 코로나가 야속할 수밖에 없다.
그 외 수 많은 소상공인들이 적자를 불사하고 명맥을 이어가는가 하면 버티는 데까지 버티다 결국을 손을 놓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중고 상회에는 폐업하면서 내놓은 물건들이 산을 이룬다는 보도가 나오곤 하였다.
코로나로 사업이 망한 사람도 많지만 목숨까지 잃은 사람 또한 지금까지 2만9천 명이 넘는다니 그 숫자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한 예로 나와 개인적으로 가깝던 어떤 분은 일행 몇 명이 연수를 갔다가 코로나에 감염 되어 채 일주일도 못 되어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백신을 못 구해서 애를 먹었고 정부의 무능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충분히 백신 확보가 되면서 마음대로 맞게 되었는데 백신 부작용이 심각하여 건장한 젊은이가 백신을 맞고는 사망을 하거나 재생불능의 휴유증을 앓게 되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백신 맞기를 꺼리게 되었는데 정부에서는 또 지나치게 많은 물량을 확보한 것을 소화시켜야 하는 것 때문에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 참으로 웃지 못 할 일들이 속출하게 되었다. 하루에 많을 때는 확진 자가 60만 명이 넘어가고 사망자도 400~5백 명에 이르다보니 사회는 온통 코로나로 인해서 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생명을 담보고 생활을 하다보니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고 손 씻기와 세정제는 피할 수 없는 생활이 되어 귀찮지만 열심히 실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는 직업도 큰 변화가 생겨서 음식을 비롯한 백화점이나 웬만한 가게는 사람들이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고 심지어 여행을 못 가게 되니 공항 면세점은 물론 공항 자체가 운영이 안 되는 불상사가 겹치는 현상에 서민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반대급부로 배달문화가 발달하게 되었고 어지간한 것은 집에 가만히 앉아서 배달을 시키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젊은이들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토바이 타고 싱싱 달리며 즐겁게 배달하는 데로 몰리다 보니 소상공인들은 일손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최저 임금을 대폭 올려준다고 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애를 먹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고 게다가 외국인 근로자들도 자유롭게 들오지 못하니 일손은 더욱 모라랄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다. 심지어 택시 기사들도 밤늦게 고달프게 일하느니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배달로 뛰어들면서 기사가 부족하여 심야에 택시 대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참으로 세상은 요지경이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며 또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전혀 예측이 안 되는 것이 세상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3년간 코로나로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그 혼란하고 어려운 중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참으로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실정이다. 그렇게 견디다보니 확진 자와 사망자도 많이 줄어들고 위험지수도 낮아져서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지 오랜데 우리나라는 아직 마스크에서 해방되지는 않았지만 실외에서의 의무 사용은 해제가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가 대 유행하던 작년에 우리 가족은 아들 내외와 손자에 안식구까지 확진이 되어 고생을 하였고 한 주간 동안 격리를 하느라 많은 애를 먹었었다. 특히 어린 손주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코로나로 학교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았고 학급학생 한 명이 확진 자가 발생하여 학급학생 전원이 일주일 동안 격리 생활을 하면서 어린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든지 잠깐 볼일이 있어서 아들네 집에 가서 현관에서 물건 하나만 전하고 오려는데 손주가 나를 보더니 그만 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짠하던지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쨋거나 지금은 확진자도 줄어들고 야외에서의 마스크도 해제되어 편안하고 자유롭게 별 걱정 없이 생활하는 중에 지난22년 10월 24일 아파트 단지 내 상수도에 문제가 생겨서 흙탕물이 나오는 바람에 양동이를 들고 두 번이나 물을 날랐더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어서 한참을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가누어야 하였고 그렇게 힘들게 물을 받아오고 자고 났는데 목이 약간 찜찜한 느낌이 들더니 26일인 다음 날에 조금 더 안 좋아지는 것 같고 27일에는 감기 증세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버텨보려고 했는데 28일이 되니 목이 아프고 몸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것 같아서 자가 검단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양성 반응이 나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1339번에 전화를 하여 병원을 물어보니 범계역 부근 본이비인후과를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29일 아침을 먹고 9시 병원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서 서둘러 갔는데 찾느라 시간을 보내기는 하였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벌써 병원에 꽉 차서 복잡할 정도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걱정을 하며 접수를 하고 잠시 기다리니 금방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바로 PCR 검사를 하니 양성 판정이 나와 병원장님과 면담을 하고 5일치 약을 지어서 집으로 오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리를 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몸이 나른하고 특히 목이 얼마나 아픈지 물을 삼킬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코로나가 괜히 하는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밤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 목이 아프니 침을 삼키면서 저절로 잠이 깨게 되고 기침이 나와서도 깨게 되고 가래가 차니 숨이 막혀서 저절로 잠을 깨다보니 밤새 선잠을 자는 것이다. 게다가 밥을 먹기도 힘들고 물도 제대로 안 넘어가니 보통 때 자유롭게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실감을 하게 되었다.
일주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고 5일치의 약을 지어 와서 먹기 시작하니 금방 약효가 나는지 복용 2일차부터는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고 열도 정상으로 회복되어 해열제는 끊었다. 하지만 가래가 심하고 편도선이 부어서 가래를 당겨 올리려고 하니 목젖이 울렁하면서 입 안 가득 차는 것이 생전 처음 이런 현상을 겪게 되니 놀랍기도 하고 코로나가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 다른 것은 괜찮은데 물을 마시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서 참으로 고통스러워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약을 복용한 지 3일째인 31일이 되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고 말하기도 조금 편해지고 무엇보다 물을 마시기가 편하니 사람이 살 것 같았다. 약복용 4일째인 11월1일에는 상당히 호전이 되어 몸은 거위 정상일 정도로 좋아지고 목상태도 많이 좋아져서 물이나 음식을 먹기가 한결 편해지니 사람이 살 것 같았다. 약복용 5일째인 11월2일 저녁 마지막 약을 먹고 나니 큰일을 수행한 것 같은 뿌듯함과 스스로 코로나를 무사히 이겼다는 생각으로 마음도 편하고 잠도 편하게 잘 수가 있어서 모처럼 단잠을 잔 날이다. 며칠간 잠도 설치고 먹는 것도 괴로웠는데 이제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거의 정상이 되니 사람은 역시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남은 인생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물러가고 먹는 것도 불편함이 없이 자유로운데 다시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멍멍하며 어지러움도 생겨서 상당히 불편한 하루를 보내면서 고개를 앞으로 숙이지도 못하고 똑 바로 한 채 30분 이상을 그렇게 지내며 두통약을 먹은 후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을 먹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의사에게 보이니 귀어 물이 찼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검사를 하고 나니 금방 귀가 제자리로 돌아온 듯 정상으로 들리기 시작하였고 한결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4일치 약을 먹고 나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약을 먹어야겠다. 그런데 난청 현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멍멍하며 내가 말하는 소리에 울려서 발음도 정확하게 안 되는 것 같고 티브이 소리도 보통 볼륨으로는 제대로 들리지가 않아서 답답하기 말할 수 없을 정도다. 4일치 약을 다 먹었는데도 별로 차도가 없어서 금요일에 다시 병원에 갔더니 마침 원장님이 안 계신다며 다음 날 다시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5일치 약을 다시 지어왔는데 처음에 약국에서는 항생제는 복용 간격을 10시간 이상 지나야 한다며 아침에 먹고 저녁에 먹으라고 했는데 다른 약국에서는 하루에 세 번을 먹으라고 처방을 해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항생제는 많이 복용하는 겄이 내성이 생겨서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루에 세 번을 먹으라니 걱정이 되어 스스로 판단하여 아침저녁으로 두 번 만 먹기로 하였다.
고얀 놈과 함께한 일주일. 보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보고 가고 싶은 곳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보고 싶은 손주도 못 오게 하고 집 안에서 혼자서만 지내야 하는 답답함도 무사히 넘긴 한 주간이 얼마나 긴 것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격리도 끝내고 코로나도 완전히 퇴치하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후유증으로 불편을 겪으니 코로나가 괜히 야단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빨리 귀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소화 기능도 살아나서 활발하게 생활하는 날이 빨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약을 복용하고 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이론적으로 밝다고 해도 경험을 따를 수는 없는 것. 앞으로 더욱 코로나를 비롯한 건강에 유의하며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