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4- 교회가 정비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 예수님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차를 가지고 있습니까? 기아차입니까? 현대차입니까? (한 사람이 기아차라고 답합니다.) 아, 기아 차! 제가 슬로바키아에 갔을 때, 기아차를 선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슬로바 키아! 슬로바키아에서는 기아를! 라고 도로의 선전판에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아 차는 아주 실내가 넓고 편안하다고 선전합니다. 마치 비행기처럼 날아간다고 선전합니다. 예, 아주 좋은 차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기아 차를 가지고 계신 분, 차 정비를 받습니까? 그렇게 좋은 차인데 왜 정비를 받습니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종합하여 한 마디로 말하면, 중간에 차가 서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정검을 받습니다. 차가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에 잘 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도 정비가 필요합니다. 차도 정기적인 정검으로 정비를 하는 것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지만, 일단 차가 가다가 길에 멈춰 서는 일이 생기면 그 차를 고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우리 삶이 가다가 서 버리면 다시 고치는 것은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삶이 망가져서 서 버린 후에 그것을 고치려고 합니다. 서 버린 후에 다시 생명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서는 천국을 땅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정비소입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을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재창조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입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입니다.
제가 지난 해 체코에서 청소년들 피정을 지도했을 때입니다. 13살에서 30 세까지의 청소년들 300 명이 피정에 왔습니다. 그 중에 250 명 정도가 마약을 하거나 약물 중독이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하는, 다시 말해, 삶이 중간에 서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청년은 마약을 한 지 15 년 만에 마약을 끊었습니다. 피정 후에 딸이 어머니를 안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끌어안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이 행동들이 그들의 삶에 처음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화해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재창조해 주셨다고 그들이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것이 아닌, 세상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우리는 부서집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즐기기 시작하면 우리에게 파멸이 옵니다.
남자를 혐오하던 23 살의 처녀가 이제 예수님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한 주를 보냈습니다. 그들에게 일주일간의 휴가였습니다. 청소년 피정은 그들에게 쉴 수 있는 휴가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피정에 오라고 말하지 않고 휴가에 오라고 말합니다. 와서 쉬다가 가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쉬러 와서 정말 예수님 안에서 잘 쉬다가 갑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영세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변화된 것을 보고 주교님들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내년에 체코의 주교님들 15 분이 저에게 피정을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제가 내년에 대주교님과 주교님들 15 분을 피정 지도하게 됩니다.
비밀은 실은 비밀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 성사, 이것이 비밀입니다. 교회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대양과 같습니다. 교회는 보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대양에서 어떻게 떠다녀야 합니까? 뚜껑이 닫힌 병처럼 떠다니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당에 다니지만 우리 삶에 변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삶이 마치 병뚜껑이 막힌 병과 같기 때문입니다. 뚜껑이 막힌 병에 어떻게 물이 들어옵니까? 병의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피정을 지도할 때, 평판이 아주 좋지 않은 사람이 피정에 왔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피정에 왔다고 수군거렸지만 그는 피정 후에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삶의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정통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할아버지의 형이 주교님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옛날 선조 때부터 성당에 기부금을 많이 내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병뚜껑이 닫힌 병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보십시오.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나 창녀들, 죄인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사생활 중의 사생활, 아주 내밀한 방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오지만 은총 없이 그냥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닫힌 병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비옥한 땅을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닫힌 뚜껑을 열 수 있게 도와주시도록 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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