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한달 내내 비. 예보인가? 면피인가? ◈
1994년 5월 기상청 직원들이 대규모 체육대회 행사를 하는 날
비가 내렸어요
오후 들어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행사를 끝내야 했지요
공교롭게도 그 전년 체육대회 날에도 큰비가 내렸어요
기상청은 “총무과에서 예보관실과 상의 없이 날짜를 정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통하지 않았지요
‘기상청 야유회나 체육대회 날엔 비가 내린다’는 말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요
7월 들어 기상청 예보가 틀리는 지역이 많아지면서
매년 나오는 불만이 또 나오고 있지요
폭우를 예보했지만 정작 비가 내리지 않거나,
비 예보가 없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어요
예보도 수시로 바뀌어 “이 정도면 중계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요
기상청의 올해 상반기 강수맞힘률(비가 온다는 예보가 맞은 비율)도
평균 69%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포인트 하락했어요
최근 장마전선 폭이 극도로 좁아지면서 같은 지역이라도
강수량 편차가 크다는 것이 기상청 설명이지요
레이더 기상 영상을 보면 강우 지역이 점점이 흩어져 있기도 하지요
그러자 얼마 전부터 한국 기상청 예보가 아닌 해외 날씨 앱을 본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22일 기준 애플 앱스토어 무료 날씨 앱 부문 1위는
체코에 본사를 둔 ‘윈디닷컴’,
3위는 미국 기업인 ‘아큐웨더’이고
우리 기상청의 ‘날씨 알리미’는 6위로 처져 있지요
노르웨이 기상청이 1시간 단위로 예보하는 앱 YR은 7위에 올랐어요
해외 기상 앱을 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기상 망명족’이라는 용어도 등장했지요
그러나 기상청이 이들 해외 앱의 한국 기상 예보 적중률을 검증해 본 결과
우리 기상 예측이 훨씬 정확했다고 하지요
사실 그럴 수밖에 없어요
해외 기상 앱들은 한국 기상청이 제공한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그냥 수치 예보 모델을 돌리는 방식이지요
기상청은 다른 나라에는 제공하지 않는 기상 항공기·기상 관측선 등의
특별 관측망 자료까지 더해 예보 모델을 돌리고,
우리 기상 특성을 잘 아는 베테랑 예보관들의 경험까지 더해
예보하기 때문에 가장 정확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다만 외국 앱의 그래픽 처리 등은 배울 점이 있다고 인정했지요
올해 장마는 ‘도깨비 장마’라고 할 정도로 유별났어요
하지만 날씨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니
기상청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지요
관측망을 더 촘촘히 하고, 예측 모델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최종 결정하는 예보관 자질을 높여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기상을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지요
다만 근접치에 가깝게 예보해야 하지요
이것이 기상청의 숙명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난 20일 기상청 자유게시판에
‘기상청 때문에 굶어 죽게 생겼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어요
숙박업을 한다고 밝힌 자영업자 A씨는
“6월 동안 매주 주말마다 비가 와서 예약률이 떨어졌다”며
“오늘도 폭우가 온다고 해 예약한 손님들조차 취소를 했다”고 적었지요
이날은 기상청이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최대 150㎜의 비가 내릴 것”이라
예보했던 날이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내린 비는 저녁부터 밤 사이 30~50㎜대에 그쳤지요
A씨는 “그동안은 그래도 날씨니까 어쩔 수 없지,
장마니까 인정해야지 하며 기다렸다”며
“하지만 기상청이 비가 온다고 표시해 놓으니 예약 자체가 없고
사람들이 더 안 온다”고 했어요
지난 19일 기상청은 20~30일 열흘 동안 중부지방 날씨를
내내 흐리고 비가 올 것으로 예보했지요
A씨는 “본인들만 책임 피하려고 전부 비 온다고 해놓은 거냐”고 따졌어요
이번 장마철 들어 기상청 예보가 틀리는 때가 많았지요
특히 애매모호한 예보가 분노에 불을 붙였어요
기상청이 예상 강수량을 ‘20~80㎜’로 내놓자,
시민들은 “중간에 어디 하나 얻어 걸리려 범위를 넓게 잡는 거냐”고 했지요
예보 내용 중 ‘강수 확률’을 없애라고도 했어요
“강수 확률 60%는 비가 온다는 거냐, 안 온다는 거냐”라고 묻고 있지요
기상청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요
기상청은 브리핑에서 “올해 정체전선(장마전선)이 좁고 긴 띠 모양으로
형성된 데다가 중간중간 작은 비구름이 짧은 시간 내에 생겼다
사라지고 있어 예측이 어렵다”고 밝혔어요
기상청은 또한
“지금 예보 기술로 작은 비구름은 예측할 수 없다”고도 했지요
국민도 기상청이 신이 아닌 이상 항상 맞는 예보만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예보가 친절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틀릴 때 틀리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달라는 것이지요
‘비가 20~80㎜ 오겠다’ 해놓고 30㎜ 왔다고 “봐라. 예보가 맞았다”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비가 60㎜가 와도 새벽에 오다 그친다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편함을 덜 느낄수 있어요
비가 내린다 해도 폭우 수준이 아니라면 휴가 정도는 떠날 수 있지요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비가 정확히 언제 얼마나 오는지보다는
그 비가 위험한지, 일상생활을 해도 되는지,
변동 가능성은 얼마나 큰지이지요
영국에선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될 때 인명 피해, 침수, 교통 체증 등
시민들이 어떤 불편을 겪게 될지를 기준으로 삼아
호우 특보를 내린다고 하지요
올해처럼 변동 가능성이 크다면 예보를 수정하는 데 급급해 하기보단
차라리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건 어떨까요?
기상청이 “일단 지금은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상되긴 하는데,
변수가 있으니 외출 전 실시간 예보를 꼭 확인하라”고 예보한다면 어떨까요
‘예상 강수량 ‘20~80㎜’ 식으로 나 몰라라 하는 것보다는
요긴한 정보가 될 것이지요
기상청의 각성이 필요한 때인것 같아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지난 9일 수원시 수도권기상청에서 분석관이 모니터에 표시된 한반도 상공의 비구름을 가리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