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과 오빠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원두막(瓜亭) 하면 떠오르는 것이 생뚱맞게 오빠라는 단어이다.
고1 때였으니1965년 시골 정족리에서 명문 C고에 합격하게 되니 소문이 자자했다.
춘중에서 C고로 진학함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잘못해 낙방하면 당시 S고를 가야 한다고 중 3 오용일 담임이 겁을 주었지만 무난히 합격하였다. 합격하면 등록금이 큰 문제라 다랑논이라도 팔 요량으로 단단히 다짐을 하셨다고 후일에 형님은 일러주셨다.
진병산 아래 백여 호가 넘었던 정족리 양지편 우리 고향집에서 개울을 건너면 예전 대갓집이 보인다. 대문을 통과한 뒤에 행랑채와 사랑채 안채를 구분하는 중문이 있고, 안채와 사랑채가 껴안고 나그네를 반긴다. 가옥형태로 양반집 훈장의 얼이 서려있다. 뒤로 서낭고개가 병풍처럼 보듬고 있다. 행랑채에 서면 눈아래 온 마을이 평화로웠다. 김해 김씨네 종갓집엔 손녀 정자라는 계집애가 예쁘게 꽃피고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 4H회원으로 회관에서 활약할 때 모습이 선연하다.
모내기 할 때 뽑혀 다니며 반찬 솜씨가 대단했다. 오월 단오 때 총각처녀들과 짚을 모으러 다니고, 저녁에 짚을 적셔 세갈래로 그네줄을 만들 때도 빨간 쉐터를 입고 청년들에게 힘을 부쩍 심어주곤 했다. 새참을 준비하며 관습에 선두에 서던 처녀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진학을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당시는 큰 문제가 못되었다.
십리가 잔뜩 넘는 시내 중,고등학교를 줄창 걸어 다녔다. 그녀는 집에서 맛있는 찬을 모내기 때도 퍼나르고 새참 먹으러 집으로 초대한다. 동네 사람들 모두 그 집 모내기를 하던 일요일, 집에서 공부하다가 갔다. 맛있는 반찬을 모두 내 앞으로 놓는 정자- 부러운 듯 바라보는 동네 일꾼들, 토마토 칼피스도 그녀의 사랑을 담은 첫 작품일 줄이야?
내 첫사랑이다. 학창시절 시내 누님 댁에서 만화책을 빌려다 주면, 다 읽고 조카편에 편지와 함께 보낸다. 초미의 관심사다. 밤이면 개구리 소리 들으며 뒷동산에 올라 별을 따주고 ,그녀는 사랑을 한 자루 밤새도록 내 품에 쏟아 놓는다. 몸을 옴츠리며 대답이 궁할 때는 내 가슴을 콩콩 치면서 교태를 부리던 모습이 지금도 짜릿하다. 중.고 책방에서 책을 사다 준 것도 백여 권에 이를게다. 우체부는 어린 조카다. 애기를 엎고 낮이면 그 집가를 서성이다가 만나면 전한다.
그런 사랑 중에서 지금까지 각인된 것은 오빠란 단어이다. 두 살 위인 그녀 오빠는 농고를 다니면서 술담배를 하며 동네에서도 불량배로 소문이 자자했다. 동생이 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어느 여름날, 방학이었으리, 술을 잔뜩 먹고 원두막에서 둘 다 오라고 겁을 준다.
달 또한 어슴프레이 초저녁을 지나 숨죽이고 있을 때 오빠가 기다리는 원두막으로 갔다. 잔뜩 술에 취한 오빠는 나를 무릎 꿇리고 엄청난 잘못이라도 한 죄인처럼 마구 괴롭히는 게 아닌가! 군대도 면제받아 곱게 큰 내가 당한 구타로 평생 처음이었다.
친구 기철이처럼 코피를 떠뜨리며 딩굴며 싸운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허약체질이라 피하곤 했다. 원두막 아래서 우리 둘은 그 오빠한테 실컷 얻어터지고 돌아온 저녁- 큰 형님은 그 집에 가서 새벽부터 난리를 쳐 결국, 이튿날 맨 정신을 찾아와 빌고 간 게 전부였다, 첫사랑의 아픔이었다. 지금은 모두 사라진 원두막-.결국 오빠는 철원서 군대생활을 하고 춘천보다 땅값이 저렴하다고 모두 팔아 이사를 갔고, 그 후 교통사고로 요절해 어느 우주로 갔다는 게 전부였다.
그녀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였던가! 교육대학에 합격했을 때 제일 먼저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사들고 밤에 축하를 해준 여인으로 어머님도 마음에 두던 여자가 아닌가~ 모든 것은 인연이다. 맺지 못할 인연이다. 살아온 생을 돌아보면 삶은 진정 연극임을 진하게 느낀다. 아직 철원에서 늙어가겠지 ㅡ
누구를 만나서 사는 것은 모두 神의 손길이 틀림없다. 누굴 원망하리! 여름 대명사 원두막도 사라진 지금, 여름 또한 예전과 다르다. 오빠처럼 비틀대며 독하게 겁을 준다. 퉁퉁 부은 얼굴로 그날 밤 곁에서 간병을 하며 함께 눈물짓던 그녀도 지금, 어느 노인정에서 독한 폭염과 씨름하고 있을까? 뒤늦은 희수喜壽의 나이에 고해성사를 하며 인생이 덧없음도 느껴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