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공개된 서울 경복궁 경내의 국내 첫 전기발전소 터 발굴 현장. 도의철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사가 취재진한테 유적을 설명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문화재연구소 ‘전기등소’ 실체 확인
향원지 남쪽~영훈당 북쪽에 위치
아크등 발광체인 탄소봉등 출토
에디슨 전기회사와 1884년 계약
백열등 750개 점등할 수 있었지만
켜졌다 꺼졌다 해 ‘건달불’로 불려
128년 전 미국 발명왕 에디슨의 회사가 설치해 경복궁을 밝혔던 국내 최초의 전기발전소 터가 드러났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 경회루 뒤쪽에 있는 흥복전 권역의 영훈당 터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1887년 세운 첫 전기발전소이자 한국 전기의 발상지인 ‘전기등소’(電氣燈所)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이날 현장 설명회에 공개된 유적을 보면, 전기등소의 실제 위치는 향원지 남쪽과 영훈당의 북쪽 사이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전기등소 터는 궁궐 연못인 향원지 북쪽과 건청궁 남쪽 사이로 알려졌었다. 드러난 터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20여평 정도의 규모로 주춧돌과 외벽의 일부 등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원래 터의 절반 정도만 드러나고 나머지는 정원과 관람로에 묻혀 있는 상태다. 터 남쪽에는 발전용 석탄을 보관하던 탄고(炭庫) 터가 잇닿아 있고, 아크등의 발광체로 쓰인 탄소봉과 제조연대(1870년)를 새긴 투명유리 절연체(애자), 석탄덩어리 등이 출토됐다. 연구소 쪽은 “전기등소의 위치와 전등의 사용 실태가 처음 구체적으로 확인돼 국내 전기 발전사 연구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영훈당 터에서는 본채와 함께 부속 행각지 등 건물터 6동이 확인됐다. 건물터들 안에서는 각 칸의 용도를 알 수 있는 아궁이와 구들, 기단, 담장지, 배수·배연 시설 등이 드러났다. 영훈당은 임금이 평소 생활하는 거처인 흥복전의 딸림 전각으로 흥복전과 향원지 사이에 있었다. 고종 연간에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인 1917년 불탄 창덕궁을 중건하기 위해 경복궁 전각들을 헐고 옮기는 과정에서 흥복전 등과 함께 철거됐다. 이번 조사는 문화재청의 2차 경복궁정비복원사업의 일부로, 문화재청은 사업이 끝나는 2030년까지 254동의 궁내 건물을 복원해 19세기 고종이 중건한 원래 영역의 70%대까지 정비 복원할 계획이다.
국내 최초 전기발전소 터 위치도
. 문헌기록들을 보면, 조선왕실이 전기등소 건립을 계획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미국에 파견됐던 정부사절단인 보빙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1884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전등설비 계약을 맺고 1886년 11월 전등기사 매케이를 초빙해 이듬해 1월 화력발전식 전기등소를 경복궁 안에 완공했다. 당시 발전설비는 16촉광(1촉광은 양초 1개의 밝기)의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첫 점등 시점은 1887년 1~3월께로 추정되는데, 건청궁 안 장안당과 곤녕합의 대청과 앞뜰, 향원지 주변을 아크등, 백열등으로 밝혔다고 한다. 당시 향원지 물을 끌어올려 전기를 생산한 까닭에 ‘물불’이라고 불렀고, 불안정한 발전 시스템 탓에 제멋대로 켜졌다 꺼졌다 한다고 해서 ‘건달불’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옛 전기발전소 터에서 나온 전기관련 유물들. 사진 왼쪽부터 전등의 발광체로 쓰인 탄소막대와 투명유리절연체, 사기로 만든 애자.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유적에서 출토된 투명유리 절연체를 가까이서 본 모습. 제조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