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디테일로 승부하는 약국들 [43] 경기도 부천시 팰리스약국
"층약국만 두 곳이 운영 중인 상가 1층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선 다들 미쳤다고 했죠. 하지만 자신있었요. 병원에 종속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
▲ 경기도 부천시 소재 팰리스약국. |
경기도 부천 팰리스약국 김대영 약사는 3년 전 서울 생활을 접고 돌연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층약국들이 자리잡고 있는 건물 1층에 후발주자로 들어가겠다는 김 약사의 말에 지인들은 모두 만류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병원 테두리에서 벗어나 약사가 재밌는 약국을 만들어보겠다는 그의 의지는 서서히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약국에 머무는 동안 약사와 환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그 속에서 상호 모두 만족을 느낀다는 김대영 약사의 '재밌는' 약국 경영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약사가 환자 선택 직접 돕는 오픈진열="약사님 어린이용 가그린 주세요."
"저쪽에 있으니 직접 가서 살펴 보시겠어요?"
웬만한 약국 같아선 환자가 지명구매한 제품을 매대 안쪽에서 집어주거나 약사가 직접 나가 특정 제품을 환자에게 바로 건네줄 법도 한데 이 약국은 뭔가 다르다.
약사는 매대 밖 진열장에서 환자가 직접 제품을 확인하게 하지만 구비된 다양한 제품들을 보며 환자는 선뜻 자신이 사려던 제품을 집어들지 못한다.
이 때, 김대영 약사만의 특별한 '아이템'이 등장한다. 바로 레이저포인트기다.
|
▲ 김대영 약사는 환자가 오픈 진열대에서 제품을 선택하는 동안 매대 안에서 레이저포인트를 활용해 제품을 설명하고 상담을 진행한다. |
약사가 매대 안에서 환자가 바라보고 있는 제품들을 하나 하나 레이저포인트로 짚으며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예상 외로 환자는 약사의 행동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것 저것 대화를 나누고 결과적으로 약사가 권하는 제품을 구입하기까지에 이른다.
|
▲ 약국에서 활용 중인 레이저포인트기. |
김대영 약사가 활용 중인 오픈 진열은 약국가에서 흔히 말하는 일반약 오픈매대와 개념이 다르다.
단순 업무 효율성과 편리성을 위해 제품을 내 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소비자와 약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제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약사가 환자의 선택을 돕는다는 의미의 '오픈'이다.
그만큼 약사는 환자가 매대 밖 제품을 선택하는 시간동안 환자에게 지속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환자와 약사가 모두 만족할 수 있을만한 제품을 권하려고 노력한다.
김 약사는 "환자가 어떤 품목을 찾을 때 약사가 일방적으로 매대 안 제품을 집어주면 환자의 불만이나 거부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면 오픈진열로 1차적으로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오히려 환자는 약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약사의 권유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오픈진열 효과 실험, 놀라운 결과로=김 약사가 오픈진열을 활용 중인 제품은 파스류와 임신테스트기, 점안액, 진통제, 연고, 생약소화제 등 10여가지다.
|
▲ 김 약사는 환자들이 반응을 체크하기 위해 임신테스기 오픈 진열대를 직접 만들고 가격이 다른 제품들을 4종 구비해 환자들의 반응을 체크해 보았다. |
진열 품목은 지속적으로 변화를 주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있다.
임신테스트기의 경우 약사가 오픈판매대를 직접 제작하고 기존 제품 이외 신제품을 다양하게 구비해 놓았다.
기존 두 제품은 판매가가 4000원 추가사입품목 5000원, 6000원으로 가격 차별화를 했다.
오픈진열 후 판매 결과를 확인해 보니 이전 판매량은 365개, 오픈판매 이후 판매량은361개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매출액은 고가제품이 약 10% 가량 증가했다.
오픈진열 후 환자들은 오히려 약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약사가 권해주는 제품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구입했기 때문이다.
김 약사는 "보편적으로 매대 안쪽 진열에서 발생하던 나쁜 대화 흐름들이 완전히 개선됐다"며 "상당수의 고객이 무슨 제품을 써야 할 지 약사에게 자발적으로 의탁해 물어보는 형태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김 약사는 "하지만 다수의 복수 제품을 진열함으로써 오히려 고객이 약사에게 어떤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해야 할지 묻게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파스 제품 역시 오픈진열대를 활용, 13종의 파스를 배치하고 진열대 위에 제품들의 실물 견본을 부착해 환자들의 선택권을 높였다.
|
▲ 14종의 파스를 오픈 진열하고 각 제품들의 실물 샘플을 함께 구비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고 있다. |
이 밖에도 최근 인기 제품으로 꼽히는 손발톱무좀치료제, 습윤밴드 등은 경쟁제품을 함께 배치해 환자가 약사와 상담하며 제품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실례로 손발톱무좀치료제의 경우 지명구매도가 높은 풀케어를 유사 상품인 로세릴과 함께 배치해 놓으면 풀케어를 찾으러 온 환자도 약사와 대화를 하며 다른 제품과 비교, 선택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판콜과 판피린도 두 제품을 함께 배치해 약사의 설명 하에 환자가 두 제품을 비교하고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제품들의 경우 오남용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환자와 약사 간 대화가 많아지다 보니 약사는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 해당 의약품 복용의 절제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
▲ 환자들이 단순 지명구매가 아닌 관련 상품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약사의 설명을 들은 후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손발톱무좀치료제와 종합감기약, 점안액, 액상소화제 등을 경쟁 제품들과 함께 오픈진열해 놓았다) |
김 약사는 "고객이 이미 머릿속에 특정 제품을 정하고 들어온 경우라도 약국 공간 내에서 '선택'을 하는 상황이 되면 본인이 생각했던 제품을 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관찰했다"면서 "최소한 비교 조건만 만들어주면 고객이 쉽게 결정을 내리게 되고, 가격에도 덜 민감하게 구매를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김 약사는 "작은 실험 결과를 통해, 여전히 약국 고객에게는 약사가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며 "좀 더 적극적인 오픈 진열을 통해, 고객이 편안함을 느끼고, 판매도 촉진된다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약사 1인, 원스톱 운영 체제=팰리스약국은 약사 1인 체제로 운영 중이다. 약국장 이외 별도 근무약사나 전산직원도 고용돼 있지 않은 것이다.
조제와 매약 비율이 3:7인 것도 도움이 되지만 약사 1인이 수납부터 조제, 복약지도까지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데는 POS와 오픈 진열대의 역할이 크다.
|
▲ 김대영 약사. |
POS 시스템으로 전산직원이 별도로 수납과 입력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오픈 진열대를 활용하면서 약사가 매대 안에서 해야 할 물리적인 업무가 줄었기 때문이다.
김 약사가 별도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직원이 바쁜 시간 중 약을 집어주거나 하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상황은 이렇지만 팰리스약국은 인근에서는 가장 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약국 중 하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아침 9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문을 닫고 있다. 김 약사 혼자 하루평균 13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김 약사는 "장시간 혼자 약국을 운영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보다 약사 자신이 재밌는 약국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픈 진열 등의 시도로 새로운 결과 등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약국이 곧 실험장소라는 생각으로 재밌는 약국 경영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