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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9일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 한성일 목사 -
본문: 왕상 17:12-16 / 왕상18:19-29
찬양: 주를 위한 이 곳에
열왕기상17
17: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17: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7:15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7:16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열왕기상 18
18:19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18: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18: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18: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18: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18: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18: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18: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18: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18: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우리 삶은 반복된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제가 거의 메일 아침마다 하는 커다란(?) 고민 중의 하나는 아침 식사로 흰색 식빵을 먹을까, 아니면 좀더 몸에 좋은 Whole meal 로 된 브라운 식빵을 먹을까 입니다. 그리고 밤 10시가 넘어 잠들 무렵에 또 자주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출출한데 뭐 하나 먹을까? 아니야, 늘어나는 옆구리 살을 생각해서 먹지 말자 하는 고민이 있지요. 그래도 최근 한 열흘 정도는 야식의 유혹에서 이겼습니다. 보시기에 조금 날씬해 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이 참 1차원 적인 고민과 선택을 많이 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적인 우리의 선택들 사이에는 우리는 잘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영적인 선택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고생하는 아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까/ 그냥 지나갈까?
이해가 잘 안가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남편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보고 측은한 마음으로 다독여 줄까?
올해에는 성경을 좀 읽어 본다고 했는데, 오늘은 성경을 읽을까?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 전에 기도해 주는 것, 오늘은 건너 뛰고 내일부터 제대로 해 줄까? 등
이러한 영적인 선택들도 우리는 끊임 없이 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선택들을 끊임 없이 하는 것이 우리의 하루이고, 그리고 내일이 되면 또 내일에 해당하는 선택들을 하면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반복해서 하느냐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결정이 됩니다.
<열왕기상 17장 스토리>
제가 본문을 열왕기상 17장과 그 다음 장, 이렇게 두 부분을 선택 했는데, 각각의 본문 역시 선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17장, 18장 모두 주인공은 당시 북 이스라엘의 대표선지자였던 엘리야 인데, 17장에서는 사르밧의 한 과부와의 대면 장면이 나옵니다. 아합의 추적을 피해 도망 중이던 엘리야는 이 여인에게 물과 음식을 좀 달라고 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가정에는
가루 한 움큼과 그것을 구울 기름 조금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나라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터라 모자는 이 것으로 최후의 만찬을 한 후 죽을 것이라 하는데,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시점에서 여인의 선택은 처음에는 다소 인간적인 선택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 합니다. 아무리 선지자라 하지만 당장은 나와 자녀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고, 어쩌면 우리 역시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과부에게 다시 믿음으로 권면을 할 때 여인의 선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쪽으로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시다시피 엘리야의 약속대로 비가 내리기 까지 그 여인의 집에 가루와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됩니다.
크리스찬에게 있어 선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믿음의 선택이냐 / 아니면 믿음과 관계 없는 보편적 선택이냐 둘 중의 하나 입니다. 이 여인은 결국 내면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믿음을 선택 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는 귀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또 다른 본문인 18장에서 나타나는 선택의 문제를 보겠습니다.
<18장 스토리>
엘리야가 당시 왕의 총애를 받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짱을 뜨는 장면입니다. 그 주변으로는 백성들이 모여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는 광경입니다.
엘리야가 제안 하기를 너희 신이 살아있는 신인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 있는 신인지 서로의 신에게 기도하여 어느 신이 과연 저 제단 위에 불을 내려 주는지 사람들 보는 앞에서 한 번 해 보자는 겁니다.
저도 사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엑시터 대학 교목실에서 몇 년 전에 어떤 이벤트를 기획 하길래, 제가 이런 제안을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 한 적이 있습니다. Healing Time 을 한 번 가져보지 않겠냐는 겁니다. …
몸이던 마음이던, 치유받고 싶은 학생이나, Staff들을 초청해서 각자의 신의 이름으로 이들을 치유해 보자는 거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두들 반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어느 종교지도자들도 제 의견에 관심을 갖지 않아 저는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꼈던 것은 각 종교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신에 대한 자신감, 즉 살아있는 신이라는 자신감이 없어 보였습니다.
자, 이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 간에 한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사람은 사실 엘리야나 바알 선지자들이 아닙니다. 바로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는 백성들이고 그들의 선택입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섬기고는 있지만,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농사와 축산등 실제 삶에 다산의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던 바알의 도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과 당시 실제적 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되는 우상 사이에서 백성들은 신앙의 갈등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 때 엘리야는 여호와와 바알 둘 중, 어느 신을 선택해야 할지 그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신앙을 할 때 둘 사이에서 머뭇 거리지 말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겁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레크레이션이나 성경퀴즈 할 때 단체 OX퀴즈 해보셨을 겁니다. 이런 것을 하다 보면 알쏭달쏭한 문제 앞에서 가운데 선을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시 한 곳에 마음을 정하고 있는 듯 하다가 ‘아 여기가 아닌가벼’ 하며 끝까지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셨을 겁니다. 어떤 이는 심지어 발 하나는 여기에, 다른 발은 저쪽 편에 대고 있다가 휘슬 부는 순간 눈치 따라 한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런데 제가 이런 사람들 치고 우승 근처 까지는 가더라도, 최후 우승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이들은 지금 신앙과 세상의 대세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지 못하며 머뭇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엘리야와 바알 제사장 간의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알 팀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송아지를 잡아다 놓고 바알의 이름을 불러가며 별 짓을 다 했습니다. 먼저는 그 제단 주위에서 선지자들이 뛰놀았다고 합니다.
한참을 그리 뛰 놀아도 불이 내리지 않자 이제는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믿는다는 신은 잠잠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기도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엄청난 불길로 그 자리에 임하시는 것으로 그 대결이 끝나게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주석서를 보통 함께 펴 놓고 그 때 그 때 궁금한 것을 같이 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참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알 제사장들이 불을 내리게 하려고 제단 위에서 뛰놀았다고 하는데, 뛰놀았다는 말은 종교의식상의 춤의 한 형태를 가리킵니다. 왼무릎과 오른발 무릎을 번갈아 꺽어가며 움직이는 동작을 말하지요. 그리고 이 동작을 묘사하는 히브리어 동사의 뿌리가 참 재미있는데요, 무엇과 같냐면요, 좀 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던 장면 있지요? 그 ‘머뭇머뭇 하다’ 라는 히브리어의 뿌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하나님께서 제 머리를 치시는 듯한 강한 영감을 받았고, 바로 이것이 오늘 설교의 중심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열왕기상 기자가 이 성서를 기록할 때 어원이 같은 단어를 양쪽에 쓴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닌 의도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믿음과 세상적 마음 사이에서 결정치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는 우리의 마음, 행동 자체가 어찌보면 우상 앞에서 제사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당연히 주일 성수를 해야 하는데, 본 교회에서 피치 못하게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이면 다른 곳에 가서라도 예배는 꼭 드려야 하는데, 각종 다양한 이유로 믿음과 비 믿음 사이에서 머뭇 거릴 때가 있습니다.
학업이나, 아이의 교육, 건강, 인간관계 유지, 레져 등, 다 물론 중요하나 이러한 것들 사이에서 내가 머뭇 거리고 있다면, 본인은 아니라 하겠지만 이 것들은 어느 사이 이 내 우상이 된 것과 다름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 이렇게 살아도 내 삶에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그럭저럭 평탄한 삶을 살기에 우리가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평탄해 보이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 10분
언젠가 TV에서 한국의 사대강 강줄기를 공중에서 헬기를 타며 보여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후 카메라가 잠수부들과 수면 아래로 들어갔을 때, 그 안에는 엄청나게 많아진 녹조가 문제가 되고 있었고, 이 뿐입니까? 괴물쥐라고 불리는 뉴트리아와 같은 생명체까지 생기어 속은 완전히 썪어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 사대 강의 현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어쩌면 이와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내리며 살아갑니까? 믿음과 내 인간적 생각의 선택 사이에서 지금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혹시 이제까지도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고 있는 분은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합시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눅16: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집 하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주인을 선택해야 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때 이 하인은 신실한 하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의 천국 비유를 보겠습니다.
[마13: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이 농부는 보화를 발견한 다음에 그렇게 기뻐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뻤던지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보화를 선택 했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천국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이 농부와 같은 그런 기쁨이 정말로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귀히 여기며 내심 자랑하는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 만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까?
어떤 목사님의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한 번은 어떤 분이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부목사가 되고 싶다며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쭈어봤답니다. “왜 우리 교회에 오려고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이 교회 교역자들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겁니다. 자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흥회에 참석해 성령받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가정도 불신집안이다 보니 신학교 갈 때도 힘들었고, 전도사 시절에도 교회 형편이 너무나 어렵고, 목사님과 장로님 사이의 갈등 때문에 힘들었고, 부목사 시절이나 지금 담임목회를 하면서도 자기는 한 번도 행복해 본 적이 없어서 행복한 목회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1년만이라도 자기를 좀 받아 주시면 행복한 목회가 뭔지 배워서 앞으로 목회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그러셨답니다.
“목사님, 고등학교 2학년 때 성령을 받았다고 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은 목사님과 함께 계셨는데… 신학교 때도, 전도사 때도, 부목사 때도, 지금 담임목회 하실 때도 예수님은 목사님과 함께 계셨는데, 예수님께서 그동안 목사님을 한 번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셨는데, 우리 교회에 오신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목사님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못하신 그 일을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겠어요?”
찾아온 목사님은 이 말을 다 듣고는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더랍니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일어나시며 말했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러곤, 그 목사님의 손을 잡고 인사하시고는 돌아가셨답니다. (6 17분)
이 이야기를 보며 깨달은 것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으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다른 조건으로도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7.35
<결론>
사랑하는 우리 민트교회 여러분, 더불어 제 자신에게도 선포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이외의 것들 사이에서 혹 머뭇거리는 분이 계시다면, 이제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세상 대세를 따르지 않고 믿음의 선택을 할 때, 세상은 나를 향해 설령 어리석다 말할 지라도 적어도 하나님의 종들 만은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 역시 그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을 가지고 믿음의 선택을 했을 때 이웃 사람들은 혹 어리석은 짓이라 속으로 흉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믿음의 선택의 결과,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여인의 삶 가운데 개입하시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 주셨습니다.
한 회사에서 한 직원이 어떤 일을 했을 때 그것이 오너의 뜻을 따른 결과라면 그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라도 회사가 책임을 져 줍니다. 왜냐면 오너의 뜻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택도 이와 같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믿음의 선택을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 주실 것을 저는 확신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계속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선택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택의 순간 순간 마다 최~선을 다 하여 믿음의 선택을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음의 선택을 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충만한 은총과 사랑으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