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유죄다. (찬성측)
국어국문학과 19001046 최유진
인자할 인에 나라 국자를 쓴 이름의 이인국 박사는 유죄다. 그의 이름 뜻은 '나라에 인자하다'는 뜻이 되는데, 그의 행동을 보면 강한 나라가 곧 ‘내 나라’가 되는 사람이니 틀린 이름은 아니다. 그는 격동의 시대에서 기회만 된다면 강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강한 나라를 내 나라로 여기고 섬기는 사람이었다. 이에 따른 그의 행동은 그저 배신에 소질이 있는 기회주의자적 행동이므로, 유죄라고 생각한다.
1. 근거 첫 번째로, 그는 시대적 주류에 극단적으로 편입하는 행동을 보였다. 친일파 때는 자신의 집에 크게 ‘국어 사용의 가’가 붙었을 정도로, 일본어를 국어처럼 사용하며 앞장서는 친일파였으며 돈 있는 사람만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마치 ‘친전파(親錢派)’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언제든 돈 있는 쪽에 편입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1-1) 친일파라는 것부터가 조국과 함께 고통받던 자국민을 배신한 행동인데, 이후의 행동들은 더 가관인 기회주의자적 행동들이었다. 당시 서로 으르렁거리던 소련과 미국을 고민 하나 없이 붙어가며 자식을 하나씩 유학 보냈으며, 이를 위해 친일파 때 수없이 무시하였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이번에는 소중하게 안아들고 미국에 가져다 바쳤다. 그는 시대적 주류라면 어디든 붙어먹는 모순적인 기회주의자다. (1-2) 이인국 박사의 자아에는 민족적 정체성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다. 그의 자아 정체성에는 그저 ‘생존’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자국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어갈 때, 이를 핍박하던 일본의 편에 서서 표창으로 받은 회중시계를 끝까지 소중히 여기던 그의 행동을 보아 알 수 있다. 그 시대에 친일파는 많고 많았겠지만, 이를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한 그에게 민족적 정체성과 양심은 없다.
한편,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도 고려해야겠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조국의 문화유산인 고려청자를 타국에 넘겼다는 점이 지탄받을 만하다. 이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자를 택한 삶의 결과로 얻은 회중시계를 소중한 보물처럼 여긴 점이 부도덕하다 보인다.
2. 이인국 박사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를 택한 사람이다. 즉, 그는 배부른 돼지다. 동시대를 살았던 윤동주 시인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시대의 아픔을 시로 진실하게 담아내며 자신의 안락마저 포기했었던 것과는 상당히 상반된다. 이인국은 권력의 향배에 따라 도덕과 양심을 짓밟고는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미국에 가져다 바친 조국의 문화유산들을 보며 합리화까지 하는 배부른 돼지와 같다. (2-1) 그의 이런 기회주의자의 전형과 같은 행동은 결코 자신의 생존에만 영향을 주지 않고, 타인들에게도 고스란히 피해가 되었다. 그의 기회주의자적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가 곧 부의 비결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결국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 (2-2) 이는 결국 사회적 혼란 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시대적 주류에서 상류층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일본, 소련, 미국을 넘나들며 국민의 피 묻은 끈적한 총구를 용의 머리 마냥 어루만지는 더러운 인간 부류다. 이런 인간이 상류층에 머무르며 하는 행동들은 그 자체로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자 산물이다. 만약 이인국 박사와 같은 사람이 상류층에서 머무르며 대를 이어 잘 살게 된다면, 언제든 나라를 버릴 수 있는 이들이 나라의 상류층에서 하는 언행 등이 영향력이 생길 것이고, 나라의 재화를 끌어들인 이들의 그 재산과 영향력으로 하는 행동이 결국 그 나라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정계에 추후 진출하기라도 한다면 더욱 큰 문제를 야기한다. 결국 나라를 버리는 기회주의자가 나라의 정치를 하는 아주 모순적이고 쓸모없는 정계가 구성되게 된다.
반면, 이인국 박사의 모든 선택들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대 변화 속에서 개인이 택한 선택일 뿐이었으며, 이로 인한 영향들은 그저 부작용이었을 뿐이라는 의견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급박하게 택한 행동이라고 해서 영향이 정당화될 순 없다. 이인국 박사 개인이 호소해 볼 수 있는 부분이지, 정당하다고 공인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기엔 너무 먼 길을 갔다.
3. 마지막으로, 그는 권력에 기생하여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며 역사적 책임을 저버렸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는 시대적 아픔에 고통받는 주변 사람들과 환자를 외면하고 역사적 책임감 따위는 버리고 주저 없이 일본을 택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반대 세력으로 재빠르게 러시아어를 배워서 빌붙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1) 맛있는 냄새만 난다면 그게 음식이든지 음식물 쓰레기이든지 윙윙 날아가는 파리와 같은 그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3-2) 특히 그의 직업이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라는 점이 더욱 그렇다. 심지어 감옥에서 사람들을 치료한 행동 또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닌 소련에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간 밖에서 친일파였을 당시에 돈 있는 사람만 살리던 행동에 비해, 너무도 간사하다.
한편, 그가 의사였든 누구든 생존이 먼저였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당대에 지식인 계층은 많지 않았고, 지식인 계층으로서 져야 할 의무도 무시할 수 없다. 지식인 이전에 인간이기에 생존을 택했다면, 그는 그저 생존한 비탄 받아야 할 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이인국 박사는 비난받아 마땅한 인간이며 유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