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세월을 어찌 탓하랴/전성훈
사람에 따라 가는 세월을 다르게 느낀다. 어느 깊은 산골 낚시터에서 세월을 낚는 사람에게는 흐르는 강물처럼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른다. 그러나 도시에서 먹고 살기 위하여 정신없는 바쁜 사람에게는 속절없이 솟아오르는 하얀 머리카락처럼 어! 하는 순간 세월은 덧없이 저 멀리 사라진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한숨만 쉬며 사는 사람에게는 세월은 기억 저 편 끝자락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세월은 그 형체를 알 수 없어 손에 쥘 수도 잡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허겁지겁 허둥거리며 그 세월을 붙잡으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간다. 엊그제 을미년 새해 아침이었는데 벌써 7월이다. 올해 소망과 목표는 어떻게 되었을까?
작년 가을부터 허리디스크 증세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다. 평생 한두 번이면 족하다는 ‘뼈 주사’를 여러 번 맞았지만 그 효과가 없었다. 몇 군데 병원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찾은 서울대학교 병원, 재활의학과 담당 의사는 지속적인 재활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 의사 말씀을 잘 따르는 편인 나는 믿고 따라갈 수밖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서 가르쳐 준 재활프로그램은 그 교육 시간에 비하여 비용이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재활운동 체조를 두 차례 받았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체조나 스트레칭 또는 요가는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도움은 커녕 허리 상태를 더 더욱 나쁘게 몰아가는 듯 했다. 그렇기 때문에 십 수 년 넘게 매일 아침에 하던 스트레칭 체조를 그만두었다. 또 이십 년 동안 즐기던 주말 산행도 포기하였다. 다리 근육 강화를 위해서 일주일에 3-4회 2시간 정도 중랑천 자전거 전용도로를 열심히 달리던 자전거 타기도 중단하였다.
그 대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허리 건강 회복을 위해서 애쓴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 일정표대로 움직인다. 특별히 외부 약속이나 외출할 일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재활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숨 막힐 듯이 꽉 짜인 재미없는 시간표를 수험생처럼 잘 지키는 내 모습에 처연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다행히도 재활운동을 시작한지 수 개월이 지난 6월에 들어서부터 몸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우선 잠자리가 매우 편해졌고 걸음걸이도 상당히 수월해졌다. 처음 허리디스크 증세가 나타났을 때는 밤에 몇 번씩 깨었다. 왼쪽 종아리와 장단지에 자지러질듯 한 통증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마다 고통 속에서 다리를 주무르면서 눈만 멍하니 뜬 채 마음속으로 별별 생각을 다했다. 오죽하면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떠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건강 회복이라는 을미년 새해 소망을 위하여 지난 6개월 동안 좌우 옆을 돌아보지 않고 꾸준히 앞을 향해 달려왔다. 건강이 삶의 최우선 명제가 된 것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내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가는 세월의 덧없음을 마음 아파하며 바라보지도 않는다. 흘러가는 세월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감을 알기 때문이다. 나의 고통이든 기쁨이든 싣고 떠나는 저 세월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능한 한 밝게 웃음 지으며 한 해의 바뀜도, 계절의 바뀜도 즐거이 보내주련다. 지금은 여름, 오늘은 맑은 날이다. 맑은 여름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에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바친다. (2015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