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은 납 등 금속을 가공해 금으로 만드는 것을 연구하거나 그것을 작업하는 기술을 말한다. 중세까지 이런 허황된 꿈을 갖고 그 기술을 찾아다닌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연금술사는? 책 속 주인공이자 젊은 청년 ‘산디아고’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작가는 말한다.
1981년 나는 내 운명의 길을 찾게 해준 스승 람을 만났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나는 연금술의 길로 들어올 수 있었다. 혹독한 정신감응 훈련을 마치고 난 저녁으로 기억된다. 나는 연금술의 언어가 그토록 어렵고 모호한 이유를 물었다.
“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 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아마도 스승은 스스로 두 번째 부류에 놓고 있는 듯했다. 나는 스승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연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징의 언어란 만물의 정기, 또는 카를 구스타프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이해했다. 자아의 신화, 그리고 그 단순함 때문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신의 표지들도 알게 되었다. ‘위대한 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하루 자아의 신화를 살아내는 세상 모든 사람 앞에 조용히 열려있었다. ‘위대한 업’은 달걀 모양의 어떤 것 혹은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 따위가 아닐 터였다. 만물의 정기 속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 만나게 되는 ‘하나의 언어’, 그것일 터였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영혼의 연금술사가 되지 않겠는가.
스승이 세 번째 부류의 연금술사를 설명하며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옮긴다.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를 품에 안고 수도원을 찾으셨다. 사제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성모께 경배를 드렸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시를 낭송했고, 어떤 이는 성서를 그림으로 옮겨 보여드렸다. 성인들의 이름을 외우는 사제도 있었다. 맨 끝에 있던 사제는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곡마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기술을 배운 게 고작이었다. 다른 사제들은 수도원의 인상을 흐려 놓을까봐 그가 경배드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아기 예수와 성모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고 싶어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랜지 몇 개를 꺼내더니 공중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그가 보여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재주였다.
아기 예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성모께서는 그 사제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