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종교개혁의 상징이자, 루터의 도시인 비텐베르크를 찾았습니다.
루터가 살던 수도원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민 루터하우스, 루터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자 오랫동안 설교를 한 시립교회, 루터동상이 있는 시청앞 광장,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슐로스교회, 루터를 파문하겠다는 교황의 교지를 불태운 루터의 참나무 등을 방문하였습니다. 내년은 1517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인지 꼭 500주년이 되는 해로 거리 곳곳에 포스터가 붙어있으며 벌써부터 술렁이는 분위기 입니다. 저희는 슐로스교회가 500주년 행사로 내부출입금지를 하기 전 마지막 행사로 진행한 음악회가 마치는 시간에 방문을 하게 되어 슐로스교회 내부도 둘러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1517년 비텐베르크대학의 교수이자 사제였던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 등 교회의 부패에 문제제기하면서 95개조의 반박문을 슐로스교회의 문에 붙이며 종교개혁의 불을 붙이자, 당시 교황인 레오10세는 이단결정이 내려진 루터에게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며 파문하겠다고 교지를 내립니다.
그때 루터는 바로 이 참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교황의 교지를 태워 버립니다.
루터가 살던 수도원으로 지금은 루터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루터의 초상화.
루터가 사용하던 설교대
루터는 신약성서를 일반인 누구라도 읽을수 있도록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합니다. 루터가 번역한 성경책 사본도 전시돼 있습니다. 루터는 이 번역작업을 우리가 며칠 후에 방문하게 되는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성에서 머물며 근 십여주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집니다.
크라나흐가 그린 십계명. 루터를 그린 화가로 유명한 루카스 크라나흐는 루터의 친구이자 1537년부터 1544년까지 비텐베르크 시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이번 동독여행에서 크라나흐의 그림과 흔적을 여러 도시에서 만나게 됩니다.
루터가 있던 당시에 강의실로 쓰이던 공간입니다.
구시가지 시청사 앞 광장의 루터동상.
비텐베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시립교회(성마리아교회)는 루터가 16살 어린 수녀였던 아내(카타리나 본 포라)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자 오랫동안 루터가 설교하며 활동한 현장입니다. 루터는 여기서만 2천번 넘는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루터박물관에서 본 루터설교대도 이 곳에서 있던 곳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크라나흐가 그린 제단화가 있습니다.
1502년에 문을 연 비텐베르크 대학입니다. 루터도 여기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지요. 이후에 비텐베르크 대학은 할레의 대학교와 합병하여 현재 할레에 위치한 할레 비텐베르크 마르틴 루터 대학교로 남아 있습니다.
비텐베르크 답사의 백미는 슐로스교회입니다.
1517년 당시 비텐베르크대학의 교수이자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가 교회의 부패에 반대하며 모든 신학생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슐로스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인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교회문은 일종의 게시판 같은 역할로 각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바로 그곳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때를 디데이로 삼아 10월 31일 제성기념일 전야에 반박문을 내걸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의 나무문은 청동문으로 교체되었고, 현재 청동문에는 작은 글씨로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 입장에서 루터의 동상, 루터의 무덤 등도 둘러보았습니다. 내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로 이교회는 행사준비로 내부입장을 통제할 예정인데 저희가 내년 행사를 앞두고 문닫기 전 마지막으로 둘러보는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기분좋게 루터의 도시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텐베르크 도시탐방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