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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술계에서 어떤 변화를 읽어낸다면, 그 변화는 다음의 세 개의 축으로 나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즉 전시회에서 주제적 접근과 기획이 강화되었다는 점, 국제교류 양상이 훨씬 다양해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을 확보하였다는 점, 그리고 미술제도적 관심과 정책적 논의가 훨씬 본격화되었다는 점으로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기본적으로 각론에서는 장르별로 2003년을 돌아보게 됨으로, 총론에서는 이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전체적인 양상으로 종합한다는 의미에서 이같은 세 개의 축을 제시하였다. 특히 국제교류는 세계화의 추세에서 미술계가 정면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실로서 실제로 이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이전과는 다르게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할 만하다. 그리고 제도적 문제는 미술계가 그동안 창작 중심으로 활동을 제한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분명 새로운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창작활동의 기반이 제도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2003년은 정책적 논의와 관심이 시작된 해로 의미를 부여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1. 주제전 기획의 확산
2003년 미술계를 돌아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전시회에서 주제적 성격이 강화되면서 비교적 다양한 내용의 담론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현대미술의 문화적 대응의 결과로 나타나는 만화와 키치, 하위문화에 대한 기획전시는 그 중 가장 많은 비율을 보인 듯하다. 문화론적 접근을 보면, 다시 여성주의적 시각과 문화적 정체성 논의, 동양적 사유와 감각 등의 주제가 첨가될 수 있겠다. 이와 관련한 전시회를 간추려 보면, 미술과 만화의 접점을 모색한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이화여대박물관), 유머와 풍자로 미술언어의 소통의 요소를 풀어낸 <퍼니스컬프처&퍼니페인팅>(갤러리 세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그림자 놀이와 퍼즐게임, 가면놀이 등 다양한 놀이의 양태를 포함시킨 <미술과 놀이>(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현대미술을 대중적 접근성을 고려한 대형기획전 <유쾌한 공작소>(서울시립미술관), 김민ㆍ최문의 <노래방 프로젝트>(대안공간 풀) 등이 일차적인 카테고리에 속한다.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전시회가 비교적 많은 비평적 관심과 대중적 호응을 동시에 얻어내기도 했는데, 기본적으로 특별한 주제를 담지 않은 개인전일지라도 여성주의적 시각과 주제의식이 강하게 배어나 여성의 언어, 여성의 무의식과 문화적 해석 등의 주제가 잘 읽혀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주요 전시회로는, <야요이 쿠사마전>(아트선재센터)과 <오노 요코전>(로댕갤러리), <미셸 블롱델전>(영은미술관, 갤러리 세줄), <차학경전>(쌈지스페이스), 염성순과 유현미, 강미선 등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미완의 내러티브>(일민미술관) 등이 있다. 또한 인도 출생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아니쉬 카푸어전>(국제갤러리)과 <볼프강 라이브전>(국립현대미술관), <마인드 스페이스>(호암갤러리) 등의 전시회는 동양적 사유와 철학을 바탕으로 한 현대미술의 속도에 반(反)하는 느리고도 고요한 작품을 보여준 것이었다.
다른 한편 환경과 사이트를 매개로 도시와 일상, 지역을 중심으로 개념적 성찰을 유도하는 전시회도 매우 큰 양상으로 드러나 이른바 주제의식에서의 확장이 두드러진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서울이라는 도시와 환경을 주제로 접근한 전시회는, <서울생활의 발견: 삶의 사각지대를 보라>(쌈지스페이스, 대안공간풀), <청계천 프로젝트-물 위를 걷는 사람들>(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에 대한 사진적 성찰을 담아낸 <공공정보전>(박영덕갤러리), 마로니에공원을 중심으로 한 <공원 쉼표 사람들>(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 등이 있다. 지역에 대한 문화환경 분석과 대안 모색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안양 스톤 앤 워터의 <생경-익숙하게 낯선 풍경전>(스톤 앤 워터)은 전시공간과 안양시의 재래시장으로 유명한 석수시장을 연계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어서 장소 특수성을 매개로 하여 주제에서의 접근만이 아니라, 작품의 소통방식과 경로까지도 전혀 다르게 접근해 가는 공공미술의 시도도 2003년에는 확실히 증가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과 함께 하는 아트벤치>(여의도 공원)와 <벤치마킹 프로젝트>(남산공원, 평화의 공원), <거리의 회복-도시를 위한 아트 오브제전>(흥국생명 빌딩 주변)을 비롯하여 청와대와 병원, 교도소에 이르는 공공미술작업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변화의 양상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도시를 읽어가는 흥미로운 사진전으로, <베를린, 도시의 변화>(대림미술관)도 도시를 성찰하게 하는 좋은 사례가 되었고, 디자인에서는 실제 도시환경 개선에 대한 디자인 안을 전시형태로 묶었던 <도시환경과 디자인-디자인이 있는 거리>(한가람 디자인미술관)를 통해 대안적 모색이 주어졌다.
이처럼 주제 범위가 확장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그것은 작가들이 그만큼 변모된 문화적 논리와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작품으로 접근하면서 나름대로 개념적 성격이 강화되고, 새로운 서사구조와 주제적 표출을 중시하면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세대’라는 담론을 통해 드러난 과감한 감수성과 새로운 미학을 지향하려는 분위기도 그런 변화의 주요 부분이기도 하다. 삼성미술관의 격년 기획그룹전 <아트스펙트럼 2003전>(호암갤러리)을 비롯하여 젊은 작가들의 꾸준한 개인전이 이어지면서 신진작가, 새로운 감각이라는 명제가 강하게 제시된 듯하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더 이상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문화적 위계질서가 의미 없고, 문화적 혼성 속에서 또 다른 문화적 가치와 맥락을 잡아가려는 노력들이 돋보이며, 비물질적 형식의 다양한 프리젠테이션으로 작품 형식에서의 영역도 한층 증폭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비영리공간이자 다양한 실험을 주도하려는 대안공간이 늘어나면서 비규정적 작품 활동이 그나마 확산되면서 가능했던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모두의 주제적 접근이 한국현대미술계에서 어떤 주도적인 흐름으로 드러날 만큼 강하고 깊이 있는 것이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실제로 문화론적 접근이 마치 트렌드처럼 여겨져 비슷비슷하거나 피상적인 수준에서 반복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 측면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변화를 우연한 현상으로 보기에는 분명 의미있는 변화의 핵심이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변화가 단순히 창작을 위한 작품 소재나 주제 영역에서의 변화로 작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창작이면서도 소통을 위한 사회적 경로까지도 바꿔낼 것인지가 관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하면 도시와 환경, 공공영역에서의 창작이 결국 미술관 중심의 사회적 경로가 아닌, 도시의 문화적 여건을 개선하고 도시의 비문화적 환경을 말하는 경로가 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가능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는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사진 등의 모더니즘적 장르 구분으로 충실하게 영역을 분리시켰던 장르주의적 발상을 벗어나, 미술창작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대중과 만나며,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로 다시 문제 접근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03년 문예연감의 총론을 다룬다는 일도, 여전히 장르별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앞으로는 그런 장르적 구분만이 아니라, 주제적 접근을 통한 일별도 동시에 진행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2. 국제교류의 다양한 스펙트럼
2003년 국제교류 현황을 보자면, 일단 순수미술 영역에서의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과 같은 공예부문에서의 대형 국제행사가 치뤄졌다. 한국미술계에서 국제교류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과 함께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등을 중심으로 대형화로 전개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미술계의 국제교류의 역량과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교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제반 활동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내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이런 현황은 순수미술 영역만이 아니라, 디자인과 공예, 사진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행사를 치루면서 궁극에는 국제교류에서의 전문성에 대한 요구와 국제적 경쟁력에 대한 인식 제고가 남게되는 것이다. 전체 행사를 이끌어 갈 기획력과 운영에서의 전문성과 국제적 네트워킹의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역량은 언제나 지적되는 사항이지만, 결코 한두번의 행사로 이루어지기는 힘든 부분이다. 결국 국제교류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면서 실제로 국제교류를 통해 한국미술계의 모습과 비전, 전망을 올바로 제시할 수 있다는 관점과, 또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면서 스스로의 경쟁력을 마련해 갈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이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김홍희 씨를 커미셔너로 하여 ‘차이의 풍경’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박이소, 정서영, 황인기를 초대작가로 구성하였다. 개념적 성향이 강한 가운데 한국현대미술의 면모를 새롭게 부각시킨 성과가 보였고, 이런 성과는 다시 아르스날레에서의 기획전 가운데 하나인 후한루 기획의 <위기의 지대>(Zone of Urgency)전에 초대된 김홍석, 김소라, 주재환, 장영혜의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청주공예비엔날레 역시 국제교류에 대한 노력이 있었지만, 행사를 통해 한국 도자 및 공예예술계와 지역사회, 그리고 국제적 관계 속에서 어떤 피드백이 가능했는지를 가늠해 보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국제전의 경우, 비교적 비중있는 작가들의 전시회가 유치되면서 대중적 호응이 높은 가운데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비쳐졌다. 특히 빌 비올라 같은 국제적 스타급의 작가의 전시회(국제화랑)는 거의 흥행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호응을 얻었는데, 그러나 묘한 것은 미술관 수준의 전시회가 상업화랑에서 열리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국제화랑은 이같은 여세를 몰아 아니쉬 카푸어와 요셉보이스를 비롯한 국제전을 유치하면서 국제적 면모를 갖춘 상업화랑으로 위치를 굳힌 격이 되었다. 또한 아트선재센터의 쿠사마와 로댕갤러리의 오노 요코, 영은미술관의 미셸 블롱델 등의 여성작가의 파워도 만만치 않아, 국제적인 명성과 함께 한국미술계에서의 영향력도 적지 않았다고 본다.
하멜 표류 350주년을 기념하고, 월드컵 신화와 히딩크 열풍을 계기로 양국의 국제관계를 문화적 교류로 엮어낸 <네덜란드 현대미술전>(국립현대미술관)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주요 미술관 네 곳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데 아펠, FOAM 사진미술관 외)은 일종의 ‘왕복’ 방식의 교류전으로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한국현대미술전>은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함에 있어 이제까지의 의례적이고 행사 중심적인 기획으로 그치는 관행을 벗어나 비평적 쟁점을 알리고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통해 한국현대미술의 성격과 문화적 맥락을 알게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는 평을 얻어 주목받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 작가들의 전시회도 집중된 편인데, 독일현대미술 3인전(갤러리현대)과 게르하르트 리히터전(대림미술관), 독일현대미술전(부산시립미술관)을 통해 독일미술의 현재를 진단할 수 있었던 기회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관련한 비평적 담론이 수반되지 않아 얼마나 큰 효과를 보였는지는 다시 물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별히 아시아 관련한 기획전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아시아의 지금>(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은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민족미술인협회가 주최한 전시회로서 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역사적 특수성을 성찰하고, 세계화의 현실에서 새롭게 아시아를 발견하며, 고유한 아시아의 문화와 정체성을 추구해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시티넷 아시아 2003>(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과 상하이, 도쿄, 타이페이 등 아시아 네 개 도시를 하나의 망으로 엮어가면서 문화적 질문과 답을 묻는 방식으로 기획되었다. 이외에도 중국미술을 소개하는 <중국 현대목판화: 혁명에서 개방까지, 1945~1998>(국립현대미술관), <중국현대미술 3인전>(갤러리아트사이드)과 같은 경우도 비교적 짜임새 있는 전시로 이루어졌다.
이런 아시아 관련 전시회는 실제로 ‘과연 아시아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전제로 해야 할텐데, 그것은 아시아를 지역적 구분으로 볼 것인가, 문화적 동질성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아시아는 존재하지만, 과연 문화적 동질성으로서의 아시아주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시아라고 하지만, 이 두 전시가 극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는 지리적으로도 너무 방대하고, 또 한국과의 문화교류가 거의 없어 사실상 지극히 ‘이질적인’ 관계 속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관계를 두고보면 과연 아시아의 문화교류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가 그렇지만, 전시회 자체가 행사로 한정되고, 이를 계기로 깊이 있는 담론을 형성해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이번 전시회에서도 남아있다.
사진 관련 국제전으로 비교적 주목받았던 전시는 <동물우화집>(대림미술관)과 <제3회 사진·영상 페스티벌-금지>(가나아트센터), <다리를 도둑맞은 남자와 30개의 눈>(대림미술관) 등이다. 이를 통해 사진이 담아내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동물우화집)과 현대사진의 표현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해 보는 시도(사진·영상 페스티벌)가 가능했으며, 그리고 패션사진의 맥락과 사진, 예술의 접합을 시도함으로써 문화론적 접근(다리를 도둑맞은…)을 독특하게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의 국제전은 <안데르센 동화 원화전>, <호주 어린이 그림책 축제>, <아키그램, 실험적 건축 1961-74>, <이스라엘 현대디자인전>, <네덜란드 디자인그룹 ‘드록 디자인’> 등 다양하게 펼쳐졌다.
3. 미술제도에 대한 논의와 정책적 관심
전시 중심의 동향과 더불어 2003년 미술계의 제도적 차원에서의 동향을 살펴본다면, 전문인력의 인선차원과 정책적 차원, 미술시장, 미술교육, 미술단체의 차원으로 분류되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주요 국공립미술관 관장 선임과 관련하여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으로 하종현 씨가 1월 초에, 8월에는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김윤수 씨가 선임되었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하종현 씨가 작가라는 측면에서 관장으로서의 전문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 김윤수관장의 경우 민족미술협의회와의 연관성 속에서 참여정부의 정치적 안배라는 문제제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이용우 씨와 최태만 씨가 각각 내정되었고, 이어서 전시주제를 각각 ‘물 한 방울 먼지 한 톨’과 ‘N·E·T’로 정하면서 동양적 담론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에 대한 성찰(광주비엔날레)을,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규명하면서 문화론적 접근과 해석(부산비엔날레)을 내세우고 있다.
정책적 논의의 시작은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발표와 더불어 주어졌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민간 전문인을 중심으로 한 성격의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다는 발표로 미술계에서도 미술제도에 대한 논의와 정책적 관심이 서서히 드러났다고 하겠다. 게다가 2003년 하반기에는 새예술정책을 위한 T/F팀 구성이 공개되면서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에서의 역할을 분명하게 하는 사건이 연속된 셈이다. 문화예술위원회 전환은 지원정책의 정교한 구성을 기반으로 가능한 것으로, 단순히 문예진흥원의 기구 개편의 차원이 아닌 문화예술에서의 공공성과 전문성, 일관성,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미술계 내부에서 이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해가 지나갔고, 또 국회에서 상정되지 못한 채 17대 국회로 넘어가게 되었다.
지원정책 가운데 사립미술관 지원문제가 자립형미술관네트워크(자미넷)에 의해 제기되면서 그나마 미술계에서 환기되었다. 사립미술관의 문제는 실제로 오랜 ‘골칫거리’였던 셈인데, 그 배경은 국공립미술관이 극히 제한된 숫자인 상태에서 정부가 사립미술관 등록 요건을 쉽게 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지만, 또 정부로서는 스스로 나서 미술관을 확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쨋든 비영리문화기관인 사립미술관의 경영난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단지 사립미술관의 지원이 현행 박물관·미술관진흥법에 의하면 사업지원에 한정되어 있어 어떤 방식으로 사립미술관을 지원할 것인지는 정책적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또한 대안공간의 확산도 주요 현상으로서,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창작활동을 담아낼 공간과 신진작가들의 활동이 확산되는 현상도 결국 사립미술관의 문제와 더불어 지원정책의 과제로 넘겨올 공산이 크다.
미술품 양도소득에 의한 종합소득세 과세로 2003년 하반기동안 미술계가 들썩였다. 정부로서는 조세 형평의 원칙에 따라 그동안 미뤄왔던 종합소득세법을 추진하고자 하면서 다시 13년 동안 시행을 저지해왔던 미술계와의 긴장관계가 불켜진 것이다. 결국 이 법안은 다시 유보되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몇가지 쟁점을 미술계에 남겼다. 일단 미술인들에게 양도소득에 의한 종합소득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 그래서 13년 동안의 유예기간 동안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게다가 종합소득세에 적용될 작가군이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그렇고, 종합소득세 폐지가 마치 우리 미술시장의 불황 타계로 이어지는 듯한 인식도 그렇다. 결국 합리적인 미술시장의 시스템과 유통질서를 만들어가면서 적절한 정책입안이 절실하다는 논리로 의견이 모아지는 가운데 미술시장의 논의는 한 차원을 넘긴 셈이다.
다른 한편 2003년은 미술교육의 차원에서도 뜨거운 논란이 제기되었던 시기였다. 5월 교육부가 ‘예체능 교과 평가방식의 서술식 전환 검토 발표’의 일환으로 ‘음미체 내신 제외’를 내세워 미술교육계에 크나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대책위가 마련되고, 미술교사와 미술교육계의 인사들이 대책 마련을 위한 많은 토론과 연구가 주어졌으며, 특히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논의들이 주어졌다. 그 내용의 근간은 기본적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미술교과를 기존의 낡고 오래된 예술제도로 장르 편제함으로써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와 문화환경에 걸맞는 교육 개념을 놓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교육부의 미술 시수 증대와 새로운 교과과정의 구성과 대책, 학습내용과 방법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을 기조로 하는 범국가적 프로젝트를 국가정책으로 의제화하는 데 문화관광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시되었다.
이렇듯 모든 미술계의 사건은 곧바로 정책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그런 점에서 2003년은 미술계 내에서 정책적 관심이 시작된 해로 보면서 그 특별한 의미를 찾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9월에 출범한 새로운 미술단체인 ‘미술인회의’(운영위원장: 성완경)가 이전의 미술단체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그 역할과 활동의 내용을 드러냈다. 기존 미술단체가 장르별 구성이라면, 미술인회의는 제도의 성장과 개혁을 목표로 하여 활동기구를 구성하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공공미술위원회를 비롯하여 미술교육, 미술문화공간, 남북국제교류, 지역미술, 여성·소수자, 창작환경, 유통구조위원회와 부설기구로서 미술행동센터와 정보교류센터, 정책연구센터 등을 두어 각각의 활동내용이 제도적 실천과 일치하도록 되어있다.
2003년에 시작된 미술제도와 정책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발전될지를 기대하는 일은, 미술인들의 새로운 역할과 문화관광부의 정책적 의지와 함께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협력체계와 인식의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과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筆者 : 박신의 미술평론가 |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