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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소개
| 지리산 삼신봉 지리산(삼신봉) (경남 하동, 지리산 국립공원 내, 해발 : 1,289m) 지리산 하동지역은 쌍계사, 칠불사 등의 절을 비롯하여 불일폭포, 화계계곡,청학동, 도인촌 등의 볼거리도 많다. 청학동 마을에서 삼신봉을 바라보면왼쪽부터 쇠통바위, 가운데는 내삼신봉, 오른쪽이 외삼신봉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중 내삼신봉이 해발 1,354m로 가장 높지만 통칭 삼신봉은 이보다 해발이 낮은 1,284m의 외삼신봉을 대표해 부른다. 삼신봉은 지리산 남부능선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동으로는 묵계치를, 서쪽으로 생불재(상불재), 남으로는 청학동을, 북쪽으로는 수곡재와 세석을 이어주는 사통팔달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삼신봉 특히 외삼신봉을 기점으로 다양한 등산로가 열려 있다. 정상에 오르면 북쪽으로 천왕봉 (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을잇는 지리산 주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어디서 보든 지리산 주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최고의 전망대이다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청학동이 산행 들머리이기 때문에 삼신봉과 내삼신봉까지 쉽게 오를 수 있다. * 청학동이란 ? .<청학(靑鶴)은 중국의 문헌에 나오는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또 운다"는 전설의 새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청학동이라 불렀다. 일찍이 <정감록>에서는 "진주 서쪽 100리, (중략)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십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고 하였으며, 이를 본 고려시대의 이인로, 조선시대의 김종직과 김일손, 유성룡의 형인 유운용 등이 청학동을 찾아 나선 바 있다.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고 엎드려 수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 청학이 그 곳에 서식하는 까닭에 청학동이라 부른다. 아마도 옛날 세상에서 숨은 사람이 살던 곳으로 무너진 담장이 아직도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다" 라고 하였으나 청학동을 끝내 찾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고,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용은 세석 고원을 청학동이라고 짚어 보긴 했지만 확신을 갖지는 못하였다. 현재 지리산에 청학동이라고 불리는 곳은 현재의 청학동 말고도 여러 군데가 있다. 불일폭포 부근, 세석고원, 청학이골(악양면 등촌리 위쪽), 상덕평 마을(선비샘 아래) 등이다. 말하자면 지리산 곳곳이 청학동인 셈이다. * 쌍계사(雙磎寺)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다. |
매화.동화나라 입금하였습니당~~
감사합니다^~^
김세균님 개인사정으로 취소합니다
일 잘보시고 다음기회에 함께 할수있기를 바랍니다
현재41명 입니다
정화영 부회장님 김진수님
개인사정으로 산행 취소합니다
현재39명 입니다
윤원태님 산행 신청 합니다.
반갑습니다
유한식님외 1명 코로나감염으로 취소합니다
오캠 코로나로 취소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