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천안지역사건 종합
[제공 진실화해위원회]
<국민보도연맹사건>
천안에서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주민 50여 명을 서장(김종대)이 후퇴 시 풀어줬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민군 점령 당시 보복이 적어 우익인사 희생사건이 적었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주동자급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부역혐의 피해>
국군이 천안지역을 수복하자 천안경찰서는 1950년 10월 1일 경 선발대가 복귀했으며, 이어 부역혐의를 받던 주민들 색출과 처단이 이어졌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성환지서와 직산지서에 의한 희생사건을 확인했다.
성환면에서는 11월 성환지서에 연행되어 양곡창고에 감금되었던 주민들이 트럭에 실려 둔포방향으로 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일부는 직산 금광굴에서 총살되었다. 10월 2일에는 우신리 홍광복, 박재순 등 10여명의 주민들이 성환지서로 연행되어 희생되었다.
직산면에서는 직산지서 임시 유치시설로 쓰였던 면사무소 양곡창고 등에 감금되었던 200여 명의 주민들이 직산면 군동리 성산 금광구덩이, 삼은리 저수지 등에서 집단희생되었다.
10월 10일에는 인민위원장이었던 상덕리 유진일이 직산지서에 감금되었다가 같은 마을 유선목, 김갑돌 등과 함께 군동리 성산 금광구덩이(직산국민학교뒷산)에서 집단희생되었으며, 10월 17일에는 직산지서에 갇혀 있던 삼은리 황연순, 황연옥 형제가 삼은리 저수지에서 살해되었다.
이상 천안지역에서 확인된 민간인 집단학살 피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