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전》
매생梅生은 나부羅浮 땅 사람이다. 그 선대는 염인데 은殷나라 고종高宗을 도와 정내鼎?의 조미調味*에 공이 있어서 강남江南에 봉封했는데, 여러 대代를 전하여 시화始華에 이르러서는 초양왕楚襄王*의 사당을 받았다. 그러나 성품이 청결하고 아름다워서 산곡山谷에 숨어 살면서 스스로 즐겁게 지냈으므로 왕王이 등용登用할 수가 없었다. 자진自進은 은현?縣에 살았는데 그도 또한 은거하고 벼슬하지 않으니 세상에서 그가 은거隱居하는 산山을 대매산大梅山이라 하였다. 또 악록?綠이란 자가 있어 고야산姑射山에 들어가서 신선술神仙術을 터득하였는데 자호自號를 구의선인九疑仙人이라 하였다. 한무제漢武帝가 남월南越을 칠 때 유승庾勝이 영상嶺上에 둔병屯兵*하였으므로 그대로 대유大庾라 호號를 삼았는데 직稙이란 자가 있어 그 곳에 살았다. 그 후에 점점 번성하여 일품一品 구명九命*의 높은 벼슬을 하는 이도 있었으니 어사御使 관官, 남창위南昌尉 복福*, 한림翰林 순詢*, 성유聖兪가 모두 그 족속이다. 안원현晏元獻이 고소태수姑蘇太守 때 한 손님을 데리고 서강西岡에 오니 귀류貴遊들이 모두 그를 좋아하자 드디어 수레에 싣고 낙양洛陽에 왔는데 그가 생生이다. 생生은 용모와 자태가 조용하고 우아하며 품격과 성질이 꽃답고 고결해서 아무리 빙설氷雪의 날카로운 기세로도 그의 본심을 바꿔놓지를 못했고 또한 쓸쓸하여 방황하거나 우수憂愁가 마음에 맺힌 적이 없어서 그 고매한 풍표風標와 아름다운 격운格韻은 화광華光과 단청丹靑으로 묘사描寫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손何遜, 임포林逋와 더불어 더욱 친하게 지내면서 명성의 준결함으로 당시에 회자膾炙되어 귀한 이나 천한 이나 어진 이나 불초한 이 할 것 없이 감히 두 말을 하지 못하고 다들 매우 사랑하여 반드시 옥屋 내의 3분의 1은 생에게 내주어 시詩, 주酒로 읊고 수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의 부엌과 그의 감실을 비단수로 사치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생生은 그것을 영화롭게 여기거나 섭섭하게 여기지를 않으니 이른바 옥당玉堂과 방사芳舍*라도 담담히 이심二心이 없는 자이다. 그를 군자인君子人이 아니라 하겠는가? 그 자손子孫이 매우 많아 화이華夷에 흩어져 사는데 모두 매씨梅氏를 성姓으로 삼고 있으며, 동국東國에 사는 자들이 능히 그 가성家聲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매화의 족속은 참으로 귀현貴顯한데 모두 적막寂寞한 곳에 살면서 세한歲寒한 때에 유독 꽃을 피고 있으니 복숭아 꽃의 요염과 살구꽃의 아첨, 봄바람과 더불어 영화를 다투는 것들에 비하면 같은 날 동일(同日)에 말할 수가 없으니 저 세상의 황금黃金에 치어서 정신이 혼혼??한 자들은 대체로 생生을 법으로 삼을 지어다.” * 염; 소금을 말함,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에게 명령하기를 “내가 만약 조화로운 국(화갱和羹)을 만들거든 너는 소금과 매실(염매?梅)이 되어 국의 간과 맛을 맞추어 다오”라고 한 것을 인용한 것이다. *정내鼎?의 조미調味 ; 정내鼎?는 재상宰相을 말하며, 조미調味는 요리의 맛을 말 하는 것으로 재상宰相의 정치를 말함. *초양왕楚襄王 ; 초경양왕楚頃襄王을 말한다. 전국戰國 때 초왕楚王으로 회왕懷王의 아들이며 이름이 횡橫이다.『史記四十』 *자진子眞 ; 자진子眞은 한漢나라 수춘壽春 사람이며, 매복梅福의 아들이다. 소시少時에 장안長安에서 배웠고 상서尙書. 곡양춘추穀梁春秋에 밝았다. 왕망王莽 때 처자를 버리고 회계산會稽山에 은거隱居했음. 은현?縣은회계군 會稽郡에 있다 『한서육십칠漢書六十七, 한서지리지상漢書地理之上』 *영상嶺上에 둔병屯兵 ; 영상嶺上은 대매산大梅山의 영상嶺上을 말함. 『사기史記』 〈동월열전東越列傳〉에 상上이 이르기를 “사졸士卒이 지쳐있다. 병졸이 지쳤으니 제교諸校들에게 예장매령豫章梅嶺에 주둔하고 명을 기다리도록 하라〈上曰士卒勞倦...罷兵 令豫章梅嶺待命〉고 했다. *일품一品 구명九命 ; 일품一品은 품계品階를 말하고 구명九命은 직급職級을 말하는 것으로 영의정領議政과 같이 높은 벼슬을 말한다. *매복梅福 ; 한나라 수춘壽春 사람. 자는 자진子眞이다. *매순梅詢 ; 송나라 선성宣城 사람. 자는 창언昌言. 소시少時부터 호학好學하고 사변詞辯을 잘 했다. 진사進士에 급제한 후 벼슬이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에 이르렀다. 봉양奉養을 잘 했고 분향焚香을 좋아하여 새벽에 일어나 향을 피워 방에 향기가 가득하여 사람들이 그를 매향梅香이라고 했다. *매성유梅聖兪 ; 매요신梅堯臣의 자. 송나라 선성宣城 사람으로 순詢의 종자從子이다. 시를 잘 했는데 심원고담深遠古淡한 것으로 뜻을 삼았다. 구양수歐陽脩와 시우詩友였다. 벼슬은 도관원외랑都官員外郞에 이르렀다. 『宋史四百四十三』 *안원헌晏元獻 ; 송나라 임천臨川 사람인 안수晏殊를 말함. 자는 동숙同叔이다. 경덕景德 초에 신동神童으로 천거되었으며 진종眞宗이 불러 진사進士와 더불어 정중廷中에서 시험을 보였는데 붓을 잡자마자 글을 완성했다. 벼슬이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다. 원헌元獻은 그의 시諡호이다. 〈宋史三百十一〉 *하손何遜 ;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섬剡 땅 사람. 자는 중언仲言, 8세에 능히 시를 지었다. 벼슬이 상서수부랑尙書水部郞에 이르렀다. 문장文章이 유효작劉孝綽과 함께 일어졌다. 〈梁書〉 *임포林逋 ; 송나라 전당錢塘 사람이며, 자는 군복君復이다. 념담호고恬淡好古하고 명리名利를 구하지 않았다. 서호의 고산孤山에 은거隱居하면서 20년간 성시城市에 나오지를 않았다. 사시賜諡는 화정선생和靖先生이다. 지금은 서호고산西湖孤山에 그의 묘墓와 학총鶴塚이 있다. 〈宋史四百五十七〉 *옥당玉堂,방사芳舍 ; 아름다운 궁전宮殿을 지칭한 것임. *태사공太史公 ; 한나라 사마천司馬遷을 일컫는 말. 대대로 태사령太史令의 직職을 맡았었으므로 그렇게 부름.
《梅生傳》 梅生者 羅浮人也,其先曰?相,殷高宗,調鼎,有功,因封於江南,累傳,至始華,爲楚襄王,所愛,然,性淸?,屛山谷,以自娛,王不能用,居?縣者曰,子眞隱而不仕世,謂其山,曰大梅,有曰?綠者,入姑射山,得神?術,自號九疑仙人,漢武帝,擊南,越庾,勝屯兵嶺上,因號大庾,有曰植者家焉其후(?변에後에서?을뺀자)漸繁,有一品,九命御史,官,南昌尉福,翰林詢聖兪,皆其族也,晏元獻,守姑蘇,携一客,至西岡,貴遊咸傾,遂載至洛下,是爲生生,容姿閑雅,?質芳潔,雖氷雪,鍔鍔,不易厥素又未嘗凄迷,?結,風標,格韻,非華光丹靑,所可描,與何遜,林逋,尤友善,以聲俊,膾炙,當時,無問貴賤,賢不肖,莫敢有貳辭,皆酷愛之,必以屋,三分之一,與生,以詩酒,?酬,或紗其廚,繡其龕,以侈之,生不以爲榮悴,所謂玉堂芳舍,澹然,無二心者,不其君子人哉,其子孫,甚多,散處華夷,皆冒梅氏,居東國者,能繼其家聲云. 太史公曰,梅之族,洵貴顯而,皆居寂寞之濱,獨榮,歲寒之時,視桃妖,杏,與春風,華競者,不可同日語,彼世之金注,??者,盖以生爲軌乎. 『綠泉續集 文卷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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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사節士로 상징된 매화
절사節士란 임금에게 향한 신하로써의 충절과, 임 에게 향한 여인의 절조節操를 뜻하며, 정절을 굳게 지키는 사람을 말 한다. 이와 같이 절사로서의 매화를 잘 나타 내 주고 있는 시로는, 정 철鄭徹(1536-1593)의 "송강가사"『사미인곡思美人曲』이 있다. 동풍東風이 건듯 불어 적설積雪을 헤쳐내니 창 밖에 심은 매화 두 세가지 피었에라 가뜩 냉담冷淡한데 암향暗香은 무슨 일일까? 황혼에 달이 쫓아 벼게 맡에 비치니 느끼는듯 반기는듯 임 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임 계신데 보내오자 임이 너를 보고 어떻다 여기실까? 이 시에서 "임"은 선조先祖(1552-1608,재위1567-1608)를 가리켜 달에 가탁假託한 것이고, 매화는 임금을 향한 충성심이 강한 송강 자신을 비유한 것이다. 한편 암향暗香은 송강의 충성된 마음을 나타낸 것이고, 매화를 꺾어내어 임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는 말은 충성된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자신의 육신肉身의 일부(매화가지)라도 잘라서 하늘나라 만큼 멀리 계시는 달님 같은 선조 임금께 바치고 싶다는 뜻이며, 이는 송강 자신을 매화에 비유하고, 매화는 다시 충절을 지키는 절사에 은유隱喩된 것임을 알수있다. 한편 라말羅末의 시인 최 광 유崔匡裕 는 비단 같은 고움, 서리 같은 빛 사방 이웃을 비치니 뜰 모퉁이 섣달 봄을 독차지 했네. 숱한 가지 반 너머 떨어져 치장마져 거의 진 채 갠 눈 갓 녹아 눈물 새로 머금었네. 찬 그림자 금정金井의 해를 나직히 가리고 싸늘한 향내 옥창玉窓의 먼지를 살짝 잠갔네. 고향에 돌아가면 냇가의 몇 그루가 만리 밖 당唐의 나를 반겨 맞으리. 라고, 하여 매화자체의 세한고절歲寒孤節과 가인家人의 대인청절待人淸節을 함께 노래하였으며, 홍세태洪世泰가 「영분매詠盆梅」라는 다음의 시에서
창밖 청산에 눈이 하얀데 상 머리 한 그루 찬 꽃송일세 그대의 고아한 풍체 정말 깨끗함을 보니 이 몸 빙혼氷魂을 배워야겠네. 窓外千峰積雪 床頭一樹寒 看君道骨淸甚 莫是身學梅花. 라고 한 것은, 매화의 외형적인 단아하고 고결한 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찬 겨울에도 홀로이 절개를 지키는 고절高節을 배울 것을 강조한 내용으로서 매화를 절사로 표현하였으며. 아마도 이 벗님이 풍운이 그지없다 옥골빙혼玉骨氷魂이 냉담도 한저이고 풍편風便에 가만한 향기는 세한불개歲寒不改하누나. 라는 시조에서도 매화가 절사에 은유된 예이다. 이조말엽의 대가객大歌客이었던 안 치영安致英은 당대 명기名妓들과 풍류風流를 즐기면서 노래했던「영매가詠梅歌」가운데 다음의 노래는 매화의 뛰어난 절의를 말해 주고 있다. 빙자옥질氷姿玉質이여 눈 속에 네로구나 가만히 향기 놓아 황혼월黃昏月을 기약하니 아마도 아치고절雅致高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동각東閣에 숨은 꽃이 철쭉인가 두견인가? 건곤乾坤이 눈 이어늘 제 어찌 감히 피리 알괘라 백설양춘白雪陽春은 매화 밖에 뉘 있으리. 한편 만해萬海 한 용운韓龍雲의 「매화梅花」시는
어여뿐 온갖 꽃 모두 보았고 안개 속 꽃다운 풀 모두 밟았네. 그래도 매화는 찾을수가 없는데 땅에는 눈보라만 가득하니 이를 어쩌랴.
看盡百花正可愛 從橫芳草踏煙霞 一樹寒梅將不得 其如滿地風雲何. 라고 읊고 있으며. 이 시에서 땅에 "눈보라가 가득했다"고 하는 것은 일제의 침략과 만행으로 온 나라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으며, 매화를 찾을수 없다?는 것은 나라를 빼앗긴 설음과 압박에서 구해줄 구원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매화의 절의節義. 향香. 세한지절歲寒之節. 강인强靭함을 들어 절사에 비유하고 있다.
매화의 절개를 상징하는 시 가운데는
오동은 천년 늙어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라는 시가 있으며, 홍 세태洪世泰(1653-1725)는 그의 시에서
비록 인간 세상에 살아도 속 되지는 않아서 숲 속에 묻힌 것 처럼 살아왔네. 한 평생 구차하고 괴로워도 한탄하지 않았으니 우뚝한 뜻을 지닌 그 품성을 스스로 알고 있네. 縱在人間非俗 却從林下爲生 不恨終身寒苦 自知稟性孤情 라고 읊으므로써, 추위 속에서 온갖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피어난 매화이지만 아무런 원망과 불평없이 오직 자신만이 간직한 품성을 지닌체 누속에 물들지 않고 지조, 절조를 지키려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나타 내고 있다. 한편 성 삼문成三問은 그의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단종에 대한 연군戀君의 뜻을 눈 속에 피는 매화로 표상하고, 대나무의 절개의 뜻을 더하여 충신의 의지를 상징한 것이다. 매화는 같은 꽃, 같은 나무, 같은 품종끼리는 화분花粉이 붙더라도 수정을 하지 않으니 그 절조와 일편단심이야 말로 옛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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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흰 눈으로 상징된 매화
달 그림자로 인하여 창 문에 비치는 매화나무 가지. 흰 눈이 소복히 쌓인 가지에서 피어 나는 매화 꽃을 생각 해 볼 때에 달과 눈과 매화는 그 연분緣分이 필적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유리처럼 차가운 하늘에서 보석처럼 쏟아지는 달 빛 아래. 청아淸雅하고 처연凄然한 모습으로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에 대하여. 정 훈丁薰은 그의 『꽃시첩詩帖』?매화?에서 청아淸雅한 그 모습 태초太初로 변함 없고 백설白雪로 흰 빛 깔은 그 넋을 말 하는가? 이른 봄 거친 하늘을 네가 먼저 깨트네. 라고 하였고. 서거정徐巨正은 매화시 차운(次尹洪州梅花詩韻兼東吳君子)시에서
매화도 눈 같고, 눈도 매화 같고. 흰눈 내리기 앞서 매화가 피네. 알지라 하늘과 땅의 맑은 기운임을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 오리라. 梅花如雪雪如梅 白雪前頭梅正開 知是乾坤一淸氣 也須踏雪看梅來. 라는 시에서 매화가 흰 눈에 비유되고 있음을 볼수있다.
한편 달과 매화의 조화로 이루어 낸 정경情景을 그려보면, 창 가에 드리워진 매화나무 가지 위로 둥근 달이 두둥실 떠 있고, 취할 듯이 쏟아지는 맑고 고운 달 빛에 젖어 숨 죽이며 피어 오르는 매화 꽃 봉오리, 은은한 향내.가슴 조이며 우리의 선인들은 심저心底한 가락으로 흥을 돋우었다. 창 아래엔 매화나무 여러 가지 뻗어 있고 창 앞에는 둥근 달이 둥실 떠 있네. 맑은 달 빛이 빈 사립문에 흘러드니 남은 꽃이 계속해서 피어 나는 듯. 窓下數枝梅 窓前一輪月 淸光入空査 似續殘花發 이는 박 제가朴齊家의 「매화월영梅花月盈」시이며, 창에 핀 매화와 달, 달 빛의 어루 만짐에 의하여 계속 피어나는 매화꽃을 읊었다. 매화를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고 하여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에 비유하기도하며, 겨울과 여인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기기도 한다.
달 구석 매화 몇 가지, 추운 겨울 혼자 피네. 멀리 보아 눈은 아니니, 은은한 향기 스스로 풍기네. 라는 왕 안석王安石의 시가 이를 말 해주고 있다. 달 그림자로 인하여 창 문에 비치는 매화나무 가지. 흰 눈이 소복히 쌓인 가지에서 피어 나는 매화 꽃을 생각 해 볼 때에 달과 눈과 매화는 그 연분緣分이 필적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다. 유리처럼 차가운 하늘에서 보석처럼 쏟아지는 달 빛 아래. 청아淸雅하고 처연凄然한 모습으로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에 대하여. 정 훈丁薰은 그의 『꽃시첩詩帖』매화에서 청아淸雅한 그 모습 태초太初로 변함 없고 백설白雪로 흰 빛 깔은 그 넋을 말 하는가? 이른 봄 거친 하늘을 네가 먼저 깨트네. 라고 하였고. 서거정徐巨正은 매화시 차운(次尹洪州梅花詩韻兼東吳君子)시에서
매화도 눈 같고, 눈도 매화 같고. 흰눈 내리기 앞서 매화가 피네. 알지라 하늘과 땅의 맑은 기운임을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 오리라. 梅花如雪雪如梅 白雪前頭梅正開 知是乾坤一淸氣 也須踏雪看梅來. 라는 시에서 매화가 흰 눈에 비유되고 있음을 볼수있다.
한편 달과 매화의 조화로 이루어 낸 정경情景을 그려보면, 창 가에 드리워진 매화나무 가지 위로 둥근 달이 두둥실 떠 있고, 취할 듯이 쏟아지는 맑고 고운 달 빛에 젖어 숨 죽이며 피어 오르는 매화 꽃 봉오리, 은은한 향내.가슴 조이며 우리의 선인들은 심저心底한 가락으로 흥을 돋우었다. 창 아래엔 매화나무 여러 가지 뻗어 있고 창 앞에는 둥근 달이 둥실 떠 있네. 맑은 달 빛이 빈 사립문에 흘러드니 남은 꽃이 계속해서 피어 나는 듯. 窓下數枝梅 窓前一輪月 淸光入空査 似續殘花發 이는 박 제가朴齊家의 「매화월영梅花月盈」시이며, 창에 핀 매화와 달, 달 빛의 어루 만짐에 의하여 계속 피어나는 매화꽃을 읊었다. 매화를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고 하여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에 비유하기도하며, 겨울과 여인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기기도 한다.
달 구석 매화 몇 가지, 추운 겨울 혼자 피네. 멀리 보아 눈은 아니니, 은은한 향기 스스로 풍기네. 라는 왕 안석王安石의 시가 이를 말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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