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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을 보며 마음을 챙기다
LA 지역에서 영화 ‘명량’이 개봉된 지난 8월 8일, CGV 시네마에 예약을 하러 갔다가 깜놀(깜짝 놀람) 했다. 문화의 사각지대인 LA에서 전회 매진이라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겨우겨우 이틀 뒤인 일요일 오후 1시 15분 티켓을 구했다. 그것도 앞쪽 구석 자리다.
이미 한국에서는 개봉한 지 만 이틀도 채 되지 않는, 37시간 만에 전국 100만 관객을 돌파한데 이어 개봉 12일만인 8월 10일에는 1천만을 넘어서면서 한국 영화 사상 최단기간에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되었다. ‘명량’은 매일매일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8월 13일 현재, 개봉 보름 만에 1200만 관객을 넘었다. 이쯤 되면 거의 무시무시한 기세로 ‘명량’ 신드롬이 퍼져가고 있다고 해도 될 듯 하다.
이런 폭풍 같은 흥행성적에 대해 혹자는 스크린 독점 때문이라며 핏대를 올린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상업 영화 시장에서 자본주의의 논리를 배재하고 무조건 독점으로 흥행했다 할 수는 없는 일. 명량은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상영관수가 많다는 것은 ‘명량’의 흥행에 아주 작은 원인을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거기다가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트위터를 통해 ‘명량'을 졸작이라고까지 폄하했지만 이조차도 ‘명량’의 등등한 기세를 꺾진 못했다.
‘명량’은 이순신 장군이 치렀던 전투 가운데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하는 영화로 박은우의 소설, ‘명량’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인 김한민과 전철홍이 공동으로 각본 작업을 했고, 다시 영화 각본을 원작으로 김호경이 소설을 완성한다. 하지만 박은우가 됐든 김호경이 됐든 모두 이순신 원작인 ‘난중일기’를 보고 또 보고, 바로 보고 거꾸로 보아가며 만들었을 터이니 원작자는 이순신 자신일 것이다. ‘올드 보이’의 최민식, ‘7번방의 선물’의 류승룡이 출연하며 이정현, 조진웅, 김명곤 등 연기력 출중한 중견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연출은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 감독이 맡았다.
제작비만 150~200억이 투자된 초대형 액션 사극 ‘명량’은 수십척의 함선이 충돌하는 대규모 해상 전쟁을 61분간 징하도록 보여준다. 특히 함포전, 선상 백병전, 충각기동 등 해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제작진의 발표가 있었고 그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논란을 일으킬 만한 점들도 많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온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을 차가운 광화문 대로의 동상이 아니라 살아 숨쉬게해 우리들 가슴에 쿵쿵 북소리를 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난 후에는 월드컵 축구경기 볼 때만 잠깐 발동하던 애국심이 불끈 솟아나기도 했으니 고증 미흡이라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등의 논란은 지나친 깐족임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한 번 들여다보자. 1597년 임진왜란 6년째를 맞는 조선팔도. 생각해보라, 하루 이틀 하는 전쟁도 아니고 6년째…나라의 혼란은 극에 달했고 백성들은 왜구에 대한 두려움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왜군은 수도, 한양을 향해 전진하면서 조선의 안녕을 뒤흔들었다. 선조는 끝까지 버티다가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파면했던 이순신을 다시 불러들여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한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남은 것은 12척의 옹색한 배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병사들뿐이었다. 그나마 위용을 자랑하던 희망의 씨앗, 구선(거북선)은 배설이라는 인물에 의해 전소되고 만다. 구선이 불타고 없어져 실제 해전은 판옥선 12척으로 진행된다.
당시 왜군은 이미 이순신과 몇 차례 해전을 치러봤던지라 그의 전투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조선을 먹어치우려는 그들에게 이순신은 눈의 가시였다. 이에 왜군은 감히 넘보지 못할 카리스마를 지닌 해적 출신의 용병,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영입해 다시 한 번 조선 정벌 해전에 나선다. 그는 짐승의 뼈로 만든 무시무시한 투구를 쓰고 위엄을 실어주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모습으로 그려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동요하는 법이 없고 지략이 뛰어나며 성격은 잔혹했다. 게다가 이미 이순신에게 동생을 잃은 터라, 이순신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조총 등 최첨단 병기로 무장한 일본 병사들이 330척의 웅장한 세키부네에 나눠 타고 조선 앞바다에 집결한 순간. 백성들은 앞을 다퉈 도망하기 바빴고 병사들은 도저히 승산이 없는 전쟁이라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의 성웅, 이순신이 가진 것은 단 12척의 판옥선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 뿐. 12척의 조선과 330척의 왜군. 천하의 이순신이었지만 왜 두려움이 없었을까. 하지만 적들도 자신만큼 큰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그 두려움을 이용한 심리전을 계획한다. 또한 그는 단 12척밖에 되지 않는 배이지만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아뢸 만큼 긍정으로 똘똘 뭉쳐있다. 그리고 그는 명량(울돌목)에 나가 물살을 살핀다. 회오리가 몰아치는 울음 바다 명량을 이순신은 자신의 승리를 기록할 바다로 만든다. 이로써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는 출발점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역사를 바꿔쓰는 위대한 전쟁으로 기억된다.
이순신은 세종대왕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상 인물이다. 이순신 싫어한다는 대한민국 국민을 아직 본 적이 없다. 굳이 애국심 마케팅을 쓰지 않더라도 이순신은 성별과 세대 계층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아 어필할 수 있는 소재다. 사람들은 영화 ‘명량’이 성공한 이유가 ‘최종병기 활’ 감독의 새 작품이라는 점도 아니요, 최민식이라는 배우의 힘도 아닌, 이순신빨이 작용해서라고들 말한다.
관객들은 자녀들에게 호연지기를 심어주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은 부모들, 참된 지도자를 갈망하는 중장년층들까지 각계각층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모들과 함께 일반인들처럼 표를 구매해 ‘명량’을 봤다고 한다. 8월 7일 그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본 국민들은 줄을 서서 티켓을 산 대통령의 모습에 깜작 놀랐다고.
하지만 아무리 이순신이 우리 민족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영화가 조잡했다면 이런 신드롬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명량’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갖춘데다가 시기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각종 재난 사고에 미적거리는 정부 지도자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몰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에 영화사의 기록을 낼 수가 있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난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학교를 마친 후에는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하고 2007년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데뷔했다.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내공이 엿보인다. 그해 그는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대표작품으로는 극락도 살인사건, 핸드폰, 최종병기 활 등이 있다.
김한민 감독은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원경스님(서울 심곡암 주지)을 만나면서 불교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심신이 지칠 때면 가까운 절에서 기도를 하며 위안을 받는다고 털어놓는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이를 작품세계에 표현하려고 하는 그에게 있어 불교에의 귀의는 어쩜 자연스런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는 시대극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에 이어 임진왜란을 모티브로 한 ‘명량’을 선택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다음 번에는 일제강점기의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재조명하며 정신적 가치를 드러내고 싶다고 한다. 생사가 오가는 초긴장의 전쟁이라는 상황 아래, 인간은 욕망과 본능을 넘어선 신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한민 감독이 포착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감독은 영화 '명량'을 구상하기 시작했던 2007년부터 '난중일기'를 읽으며 인간 이순신을 만나왔다. 옳바른 안목을 갖춘 무인이요, 원칙으로 공무를 처리하고 성실하게 사람을 대한 인물이 바로 충무공 이순신이다. 또다른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 조정에 보고를 할 때마다 자신이 아닌 부하들의 공훈을 세세히 적어보냈다고 한다. 원균과의 사이가 나빠진 이유도 원균과 자신의 공덕은 차치하고 부하들의 공훈을 지나치게 챙겨서라고. 생즉필사 사즉필사. 이순신 장군은 가장 위험한 전쟁터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 싸웠다. 또한 부하를 사랑하고 원칙에 입각해 공무를 처리했다. 참 지도자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줬다.
무예에 올인하기 전, 글공부도 열심이었던 이순신은 전쟁터에서의 사상자 숫자며 배의 파손과 같은 단순 정보의 기록에서부터 어떤 작전으로 적을 물리쳤는지, 그리고 전쟁을 치르는 기간 동안 느꼈던 개인적인 감성까지 세세하게 ‘난중일기’에 기록했다. (역사에 기록된 명량대첩의 조선군 사상자는 사망 2명, 부상 3명이었는데 영화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많은 병력이 손실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를 전쟁문학의 금자탑이라고 부러워했던 것이 충무공 앞에 죄송스럽다. 그나마 박정희 정권을 지나며 1968년 세종로의 동상건립과 현충사 건축 등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추앙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백전백승의 해군제독에 대한 대접으로는 아직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감독은 ‘난중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명량해전의 전투 씬을 촬영했다. 전함과 갑옷, 칼 소총 대포 등 무기까지 여러 사료를 참고해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해 냈다.
‘명량’의 하일라이트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대장선과 왜장 구루지마 미치후사의 선대가 벌이는 결전. 이 장면은 우리 영화사는 물론이요, 전세계 영화를 통틀어서도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초대형 해전 장면이다. 빠른 속도의 회오리가 이는 바다가 적의 함대는 물론 우리들의 전함까지 격하게 흔들어댄다. 뒤집힐 것도 같고 가라앉을 것 같기도 한 위기의 전투 장면을 한 시간 넘도록 보고 있자면 마치 심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멀미라도 난 것처럼 피곤함이 느껴진다.
이순신의 용기와 희생은 하늘을 움직인다. 하늘이란 그의 말대로 곧 민심이다. 바위 위에서 사랑하는 지아비가 죽을 위험에 처한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던 벙어리 정씨여인. 외마디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죽어가는 남편의 말대로 붉은 치마를 벗어 흔들어 조선군에게 작전 메시지를 전한다.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던 백성들이 정씨 여인을 보고 모두 힘을 합해 전령 역할을 담당한다. 이제 꼼짝없이 모두 죽나보다 생각되던 절명의 순간, 뱃사람들이 나룻배에 나눠 타고 도착해 밧줄을 당겨가며 기울어가는 대장 이순신의 통제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회오리바다 명량은 블랙홀처럼 일본 군의 함대를 삼킨다. 이순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희생이 두려움을 용기로 층변변화시킨다.
영화 속 클로즈업한 이순신의 장검에는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한 번 들어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는 뜻이다. 모든 전투가 끝나고 이순신은 바다를 보며 읊조린다. “이 한을 어찌 해야할꼬.”
그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진정한 리더십이 민심을 움직여 불가능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문(?)을 숭상하고 무(?)를 천시하던 조상들의 유전인자가 오랜 습처럼 남아 있어서였을까. 이순신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별 관심도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왔었지만 ‘명량’을 보고난 후에는 마치 열병이라도 앓듯,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탐색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초등학교 때, 외워 불렀던 노래가 있다. 지금은 그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이은상 작사, 김동진 작곡 ‘충무공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가사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보라.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생을 오직 한길,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나라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그이시다. 그날 땅과 하늘을 울리시던 그의 맹서. 저 언덕 저 바다에 배고 스민 그의 정신. 외치는 저 목소리, 그가 우리를 부르신다. 겨레의 길잡이로 그가 우리를 부르신다. 충무공 오 충무공. 민족의 태양이여. 역사의 면류관이여”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때 위인전으로 만났던 충무공 이순신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이순신은 병정놀이를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꼬마 대장 이순신은 책에서 읽은 작전을 병정놀이에 적용하기도 했다고.
"오늘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겠다. 공격하는 적군은 윗마을 병사들이 맡고 수비는 아랫마을 병사들이 한다. 수비하는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따로 진을 치도록 하겠다. 수비하는 반은 나무 뒤에 진을 치고, 그 나머지 반은 저 아래쪽 개울가에 진을 친다. 뒤에 개울이 있어, 뒤로는 절대 적군이 쳐들어 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배수의 진'이라는 것이지. 강이나 바다를 등지고 치는 진으로 옛날부터 많은 승리를 거둔 작전이다."
푸하하. 이건 도저히 병정놀이하는 꼬마 대장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손자병법’을 몇 번이고 읽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전쟁의 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전기에 따르면 청년기의 이순신은 문무를 두루 갖추고 있었지만 무과에 올인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오랑캐와 왜적에 의해 고통받고 있던 조선을 구하고자 그는 병법서 탐독은 물론이요 말타기, 활쏘기, 칼쓰기, 창쓰기 등의 무예를 연마하였다. 결혼해 두 아들까지 둔 28세의 이순신은 훈련원 별과 시험을 보다가 말에서 떨어져 왼쪽 다리에 상처를 입고 과거에 떨어진다. 하지만 4년 뒤인 32세 때에 식년 무과 병과 4등으로 급제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임명된다.
이순신이 쌈박질만 잘 하는 무관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는 멋들어진 한시, 이제는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한시를 다시 한 번 외워본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이란 시도 멋지다. ‘바닷가에 가을빛이 저무니 추위에 놀란 기러기떼가 높구나. 시름으로 뒤척이는 밤에 새벽달이 활과 칼을 비추는구나.’
영화 ‘명량’의 대박행진으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비롯한 이순신 관련 서적의 매출이 급상승했으며 아산 현충사의 방문객 수가 2배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실제 전투 현장인 진도 울돌목에도 상당한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던 것은 잿빛 가사를 입은 스님들의 모습이었다. 조선은 숭유억불을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 아니던가. 그럼에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진 상황 하에서는 염주알 돌리며 기도하는 스님들의 원력에 상당히 의존했던 것 같다. 또한 체격 건장한 승병들이 갑옷 입은 조선의 해군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도 여러 장면 나온다. 감독은 “‘난중일기’에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스님에게 승병장의 직책을 주었다는 구절을 비롯해 승군의 눈부신 활약상에 대한 기록이 상당수 나온다”며 “승병에 관한 기록을 영화에서 제대로 표현하려 애썼다”고 말한다.
우리 나라 승병의 역사는 그 기원이 고구려로부터 시작돼 고려와 조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이는 수행도 나라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깨달음에 기인한다. 삼국시대 스님들은 정치적 기밀을 전달하는 첩자의 역할을 수행했었다. 고려 때의 스님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팔만대장경을 새겼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서산대사의 승병운동, 사명당의 불교외교로까지 이어진다. 우리의 전통무술은 불교의 승병들에게 전수되어 왔다고. 조선 후기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의 여러 사찰에서는 스님들의 무술단련 기합소리가 산중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었다고 하니 소림사 무술영화가 따로 없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승병의 숫자는 약 800명 정도. 하지만 4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들에 대한 위령재나 표석 하나 마련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충청남도 금산의 칠백의총은 800여 승병들과 함께 전투하다 순국한 유생 700명만을 위한 장소다. 이를 영규대사와 800여 승병의 명예를 기리는 천오백의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살생금지를 계율로 삼고 있는 불제자들이 어쩌다 총칼을 휘두르는 승병이 되었을까. 또한 이에 대한 합당성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생명체는 물론이요 아귀도 죽이지 않으려 하는 불교이지만 우리의 불교는 나름의 개별성과 함께 진화해 갔다. 원광법사가 신라 화랑들에게 전해준 ‘세속오계’에는 ‘살생유택’이라는 항목이 있다.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택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 살생에 있어 오류 없는 선택을 할 것인가. 감독은 이에 대해 “집착을 버리면 살생유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집착 가운데 가장 큰 집착은 나에 대한 집착이며 이 집착을 버렸을 때 모든 사물이 가장 객관적으로 보인다. 내 이해관계를 떠나면 고통받는 이, 고통을 주는 이가 정확하게 보인다. 나와 고통받는 중생의 마음이 하나임을 깨닫게 되면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 하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승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교적 신념인 ‘충’에 무엇보다 철저했던 이순신 장군도 이런 점에서 보자면 불교적 신념체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명량’의 흥행에 따라 제작사는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등 이순신 관련 영화 3부작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순신 역의 최민식이 과연 다시 출연할지는 미지수다. 이순신을 연기하며 가졌던 부담감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우리들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할 만한 리더,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꾸는 영웅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순신의 리더십과 인간미를 보여주는 ‘명량’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열기는 태평양을 건너와 이곳 미 대륙에까지 거세게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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