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로 풀어보는 천자문[080] 곤지갈석 거야 동정(昆池碣石 鉅野洞庭) <곤명지와 갈석산이요, 거야택과 동정호라>
1. 들어가는 말
《천자문(千字文)》의 여든 번째 구절인 「곤지갈석 거야동정(昆池碣石 鉅野洞庭)」은 중국 각지의 이름난 못과 산, 호수를 나란히 들어 천하의 광대한 지리적 모습을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앞 구절인 「안문자새 계전적성(雁門紫塞 雞田赤城)」이 관문과 변새, 여러 지역의 지명을 통해 천하의 지리적 경관을 펼쳐 보였다면, 이번 구절은 곤지·갈석·거야·동정이라는 명승을 들어 그 흐름을 이어갑니다.
곤지갈석(昆池碣石)의 곤지(昆池)는 한 무제(漢武帝)가 수군을 훈련하기 위해 장안 부근에 조성한 곤명지(昆明池)를 가리키며, 갈석(碣石)은 발해 연안에 자리한 이름난 산으로, 진시황과 한 무제의 순행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곳입니다. 거야동정(鉅野洞庭)의 거야(鉅野)는 오늘날 산동 지역에 있었던 큰 못인 거야택(鉅野澤)을 가리키며, 동정(洞庭)은 장강 남쪽의 광대한 동정호(洞庭湖)를 뜻합니다. 이들은 각각 인공적으로 조성된 큰 못과 이름난 산, 고대의 큰 늪과 호수를 대표하는 지명입니다.
따라서 「昆池碣石 鉅野洞庭」은 곤지·갈석·거야·동정이라는 서로 다른 지역의 명승을 한 구절에 펼쳐 놓음으로써, 천하의 넓은 강역과 다채로운 산수의 모습을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앞 구절에 이어 이름난 지리와 산천을 차례로 제시하며, 인간이 조성한 못에서 자연이 이룬 산과 대택(大澤)·호수에 이르기까지 고대인들이 바라본 천하의 웅대한 공간을 그려 내고 있습니다.
2. 들어 있는 말
가. 어구의 핵심 의미와 철학적 배경 「곤지갈석 거야동정(昆池碣石 鉅野洞庭)」은 중국 각지의 이름난 못과 산, 대택과 호수를 두 글자씩 짝지어 보여 주며 천하의 광대한 지리와 다양한 산수의 모습을 펼쳐 보이는 구절입니다.
• 곤지(昆池): 곤지(昆池)는 한나라 장안(長安) 부근에 조성된 곤명지(昆明池)를 가리킵니다. 한 무제가 서남 지역의 곤명(昆明)을 정벌하기에 앞서 수군을 훈련하기 위해 만든 큰 인공 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인간이 조성한 대규모 수역이자 한대의 대표적인 명승을 나타냅니다. • 갈석(碣石): 갈석(碣石)은 발해 연안에 있던 이름난 산을 가리킵니다. 진시황과 한 무제가 순행 중 이곳에 이르렀으며, 후대에는 조조(曹操)의 「관창해(觀滄海)」에 등장하여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바다와 맞닿은 웅장한 산악 경관을 대표하는 지명입니다. • 거야(鉅野): 거야(鉅野)는 오늘날 산동 지역에 있었던 큰 못인 거야택(鉅野澤)을 가리킵니다. 《서경(書經)》 「우공(禹貢)」에도 대야(大野)가 등장하여 우왕의 치수와 관련된 고대의 중요한 대택으로 전해집니다. 본문에서는 광대한 내륙의 수역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쓰였습니다. • 동정(洞庭): 동정(洞庭)은 오늘날 호남성(湖南省)의 동정호(洞庭湖)를 가리킵니다. 예로부터 남방을 대표하는 큰 호수로서, 주변의 상수(湘水)와 여러 강물이 모여드는 광대한 수역과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났으며 후대의 수많은 시문에도 등장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남방의 대표적인 대호(大湖)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곤명지·갈석산·거야택·동정호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명승을 나란히 제시하여, 인공적으로 조성된 큰 못에서 바닷가의 산, 내륙의 대택과 남방의 대호에 이르기까지 천하의 다채로운 지리적 경관을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이를 통해 앞 구절에 이어 광대한 천하의 산천과 수륙의 모습을 여덟 글자에 압축하여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한 문자학적 고증 「곤지갈석 거야동정(昆池碣石 鉅野洞庭)」의 여덟 글자는 같음과 못, 우뚝 선 돌과 산의 돌, 강한 쇠와 들, 빠르게 흐르는 물과 뜰이라는 본뜻을 지니며, 본문에서는 곤지·갈석·거야·동정이라는 고유지명으로 쓰입니다. • 昆(맏/무리 곤): 「昆,同也。从日,从比。」 허신은 昆을 “같다(同也)”라고 풀이하였습니다. 日과 比를 따르는 글자로, 단옥재는 日에는 ‘밝다(明)’와 ‘같다(同)’는 뜻이 있고, 比에도 ‘같다’는 뜻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무리(衆)’의 뜻으로 확대되고, 앞선다는 뜻에서는 ‘맏이·형’, 뒤따른다는 뜻에서는 ‘뒤’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池와 결합하여 곤지(昆池), 곧 곤명지(昆明池)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 池(못 지): 「池,陂也。从水,也聲。」 허신은 池를 “못(陂也)”이라 풀이하였습니다. 水가 뜻을 나타내고 也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전해지는 《설문해자》에서 빠진 이 글자의 해설을 《초학기(初學記)》와 《풍속통(風俗通)》 등의 인용을 근거로 복원하고, “고여 있는 물을 池라 한다(停水曰池)”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昆과 결합하여 곤지(昆池), 곧 곤명지(昆明池)를 가리킵니다. • 碣(우뚝 선 돌 갈): 「碣,特立之石也。東海有碣石山。从石,曷聲。」 허신은 碣을 “우뚝 홀로 서 있는 돌(特立之石也)”이라 풀이하고 갈석산(碣石山)을 직접 언급하였습니다. 石이 뜻을 나타내고 曷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碣은 傑과 통하는 말이다(碣之言傑也)”라고 설명하였으며, 《우공(禹貢)》과 《한서》 「지리지」를 근거로 본문의 ‘東海’는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石과 결합하여 갈석(碣石)이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 石(돌 석): 「石,山石也。在厂之下;口,象形。」 허신은 石을 “산의 돌(山石也)”이라 풀이하였습니다. 벼랑을 나타내는 厂 아래에 돌의 모습을 본뜬 부분이 놓인 상형자입니다. 단옥재는 石이 ‘크다’는 뜻의 碩이나 무게 단위인 䄷의 뜻으로도 빌려 쓰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는 碣과 결합하여 갈석(碣石)이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 鉅(큰 쇠/클 거): 「鉅,大剛也。从金,巨聲。」 허신은 鉅를 “크고 단단한 쇠(大剛也)”라고 풀이하였습니다. 金이 뜻을 나타내고 巨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여기에서 뜻이 확대되어 ‘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引申爲鉅大字」)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野와 결합하여 거야(鉅野), 곧 거야택(鉅野澤)이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 野(들 야): 「野,郊外也。从里,予聲。」 허신은 野를 “교외의 바깥(郊外也)”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里가 뜻을 나타내고 予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읍 밖을 郊라 하고, 郊 밖을 野라 하며, 野 밖을 林이라 한다”고 하여 野가 읍과 교외를 벗어난 들을 뜻함을 밝혔습니다. 본문에서는 鉅와 결합하여 거야(鉅野), 곧 거야택(鉅野澤)을 가리킵니다. • 洞(빠르게 흐를/골 동): 「洞,疾流也。从水,同聲。」 허신은 洞을 “빠르게 흐르는 물(疾流也)”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水가 뜻을 나타내고 同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여기에서 뜻이 확대되어 막힘없이 통한다는 ‘洞達’과 깊은 골짜기를 뜻하는 ‘洞壑’ 등의 의미로 쓰였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庭과 결합하여 동정(洞庭), 곧 동정호(洞庭湖)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 庭(뜰 정): 「庭,宮中也。从广,廷聲。」 허신은 庭을 “궁실의 안(宮中也)”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广이 뜻을 나타내고 廷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宮中也」를 본래 「中宮也」였을 것으로 보고, “宮은 집이며, 집의 안을 庭이라 한다(宮者,室也。室之中曰庭)”고 설명하였습니다. 곧 궁실이나 집 안의 뜰과 관련된 글자입니다. 본문에서는 洞과 결합하여 동정(洞庭), 곧 동정호(洞庭湖)라는 고유지명을 이룹니다.
《설문해자》의 자의를 종합해 보면, 昆·池·碣·石·鉅·野·洞·庭은 각각 고유한 본뜻과 자형의 연원을 지니지만, 「昆池碣石 鉅野洞庭」에서는 개별 글자의 뜻을 억지로 조합하기보다 곤명지·갈석산·거야택·동정호라는 네 지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천자문》은 서로 다른 지역의 못과 산, 대택과 호수를 한 구절에 나란히 펼쳐 놓음으로써, 천하의 넓은 강역과 다채로운 산수의 모습을 여덟 글자 속에 압축하여 보여 줍니다.
3. 맺는 말
여행을 떠날 때면 우리는 흔히 이름난 산이나 넓은 호수, 아름다운 바닷가부터 떠올립니다. 먼 곳에 가야 새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유명한 곳이어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다 보면 뜻밖에도 이름조차 몰랐던 작은 못이나 들판, 길가에서 우연히 바라본 산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풍경의 크기와 마음에 남는 깊이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곤지갈석 거야동정(昆池碣石 鉅野洞庭)」에는 서로 다른 네 곳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큰 못도 있고, 바다와 마주한 산도 있으며, 넓은 들의 대택과 남쪽의 큰 호수도 있습니다. 모습도 다르고 생겨난 내력도 다르지만, 옛사람들은 그 서로 다른 풍경을 한 구절 안에 함께 담았습니다.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저마다의 모습으로 한 지역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풍경도 그렇습니다. 높은 산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넓은 호수만 볼거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논 사이로 흐르는 작은 냇물이나 마을 뒤의 낮은 산, 오래된 저수지와 들길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늘 곁에 있어 무심히 지나쳤을 뿐, 조금 천천히 바라보면 가까운 곳에도 제법 아름다운 풍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昆池碣石 鉅野洞庭」의 여덟 글자를 되새기며 내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 너무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먼 곳의 명승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지만, 때로는 익숙한 길을 천천히 걸으며 평소 지나쳤던 풍경 하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좋은 풍경은 반드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보던 것을 새롭게 바라볼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終)>
2026. 9. 30.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