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믿음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 12:2-3)
믿음은 하나의 관계입니다. 한 인격이 한 인격에 대해 갖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신뢰의 관계입니다. 한 인격이 한 인격을 죄에서 구원하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부르고 완성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육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관념적인 것이 아닙니다. 의, 거룩함, 선 등의 개념과 이상에 관한 싸움이 아니라 그것이 내 육체에 녹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육체로 ...만들어진 나라는 존재가 의와 진리와 거룩함과 선과 사랑으로 녹아난 그런 성품과 인격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런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성품과 인격이 기독교적 신앙이라는 종교적인 방법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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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유혹하는 이단들이 가장 많이 시험하는 것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오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시간과 과정을 없애는 비법으로 사용합니다. 우리가 지금 마음에 걱정과 근심과 낙심과 회의가 있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찌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의심과 걱정과 낙심이 없고 감각도 없습니다. 마치 차선이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틀린 것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고 진리가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틀린 것을 모르고 방탕에 자신을 방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며 삽니다. 여러분은 계속 마음이 불안하고, '믿음생활이 이 정도는 아닐텐데'하는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감각이 지적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은 다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감각이 있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모든 사건에 승리해야 훌륭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실패한 것으로도 많이 훌륭해집니다. 우리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든 것은 대부분 다 우리를 울게 만든 사건입니다. 웃었던 사건으로 훌륭해진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는 실패로 인해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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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성령 운동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대표적인 일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하나님 앞에 무엇으로 부름 받았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서 "내가 누구인가, 내가 이래서 되겠는가" 반성하게 하고, 거룩하고 참된 것을 향해 분발하게 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걱정 말라고 위로하는 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베뢰아파나 레마파나 혹은 요즘 많이 일어나는 성령 은사 운동은 전부 다 이런 과정 없이 우리를 이 자리에 오게 만들겠다고 합니다. 마치 옛날에 길에서 팔던 만병통치약 같습니다.
이단이나 이런 부분을 오해한 자들의 유혹이 무엇인가 하면, 성령의 은사를 받기만 하고 또 어떤 식으로 믿음의 어느 경지에 이르면 이 모든 과정 없이, 시행착오 없이 사람이 단번에 훌륭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나는 늘 기뻐요, 나는 늘 승리해요, 내 마음에는 늘 사이다가 올라와요." 이런 경우는 아이일 때 부모님이 선물을 사다 주면 그러는 것입니다. 사탕 두 개면 온 세상을 얻은 것 같고, 시험봐서 전 과목 모두 백 점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그런 것이 인생의 전부입니까? 아닙니다.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들의 기쁨은 있어도, 그것은 인생의 전 과정에서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사는 것이 왜 어렵지요? 산다는 것으느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온 힘을 다해 싸워야 하는 싸움입니다. 자기를 지켜야 하고 자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자기 손으로 해야 하거든요. 그것은 돈으로도 안 되고, 빽으로도 안됩니다. 본인이 그 실력이 되지 않고는 안 됩니다. 자기 스스로 실력을 만들고 그 만든 실력을 실천해서 자기가 씨를 뿌려 거두지 않고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완성의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 가르침 대로 좇아가야 합니다. 드드고 이해하고 시험해 봐야 합니다. 맞는지 틀린지 정도의 시험이 아니라, 그 맞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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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눈물과 한숨을 보통 포기와 실패의 표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사람이 포기하면 울지 않고 웃습니다. 그래서 정신병자는 다 웃습니다. 포기하면 드디어 울지 않습니다. 이겨 내지는 못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가 하면, 눈물 즉 마음의 절망인데 그것은 여러분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좀 창피하지만 삼삼한 신앙의 소유자들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들 주셔서, 또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전능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실패하게 하지 않고 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나에게 몇번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길 때까지 시간과 기회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것으느 믿지 않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승리의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울고 낙심하며 한숨을 지으면서도 다시 주앞에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과 전능하신 손길이 우리에게 이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어떤 신비로운 믿음이라는 묘약으로 여러분의 신앙이 승리하고 완성의 자리에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기나긴 시간과 과정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 여러분의 신앙이 자라고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완성의 자리로 접근해 간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갖고 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요 그 복을 누리는 자들이요 마침내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자들이란 것을 믿음으로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박영선, 『믿음』, pp.283-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