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국·영·수' 평균으로 본 고교별 성적
학교내 학력차가 원인… 중소도시의 비평준화高 40곳 넘게 100위권 들어
수능 최상위권인 1등급 학생들의 숫자나 비율이 해당 고교의 이른바 명문대 진학 능력을 반영한다면, 평균 점수는 고교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습능력을 반영한다. 우수학생도 중요하지만 하위권 학생이 적어야 높은 평균 점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능 3개 영역(수리·외국어·언어)의 종합 평균 점수로 따진 고교별 성적표는 어떨까. 고득점 학생이 많은 학교 상당수의 수능 평균 점수 역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최상위권과 달리 평균 점수 분석에서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다. 우선 서울 강남구, 부산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등 사(私)교육 열풍의 진원지인 지역 고교들이 1등급 비율에서와는 달리 평균 점수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나타냈다. 또 대도시 지역이 대부분 평준화로 바뀌면서, 중소도시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온 비(非)평준화 지역 고교들이 아주 높은 수능 점수를 내고 있는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 '강남 8학군' 100위권에 하나도 없다
서울 지역 고교가 100위권에 겨우 8개만 이름을 올린 것도 충격이다. 그나마 8개 학교는 모두 대원외고·한영외고·명덕외고·대일외고 등 특목고였다. 특히 '강남 8학군'으로 통하는 강남구·서초구의 고교가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 역시 충격에 가깝다. 외국어영역의 평균 점수에서만 은광여고 등 4개 고교가, 수리영역에서 휘문고 1개 고교가 100위권에 이름을 올렸을 뿐 3개 과목 전체 평균에선 100위권 내에 한 학교도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학교 내 학력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우수 학생 못잖게 학력이 낮은 학생들도 많다는 뜻이다. 1등급 비율로 따졌을 때 강남구와 서초구 고교 20여개가 영역별 최상위 100위권 안에 포함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다른 특징이다. 최상위권이 아닌 전체로 경쟁을 하자니 지방의 학교 내 격차가 적은 고교에 상대적으로 크게 밀려난 것이다. 그동안 서울 강남구와 함께 전국 최고의 '사교육 특구(特區)'로 불리던 부산 해운대구와 대구 수성구 역시 3개 과목 종합 평균에서 100위권에 각각 2개 고교의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이들 지역의 고교는 각각 14개와 17개이다. 특히 1등급 비율에서는 영역별로 6~8개씩의 학교 이름을 올리던 수성구가 평균 점수 순위에서 크게 밀린 것은 의외라는 분석이다.
◆10개 중 4개가 비평준화 지역 고교
언어영역 평균점수 상위 100위권에 비평준화 지역 고교는 44곳에 달했다. 비평준화고가 광역 단위로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교육에서는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대도시보다 불리한 중소도시에 밀집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선전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동시에 하향 평준화 논란을 불러온 평준화 지역 고교의 경우는 광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특목고를 제외하고는 100위권에 16곳(특목고 제외)의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비평준화 지역 고교 중 수능 3개 과목 종합평균이 가장 높은 곳은 충남 공주 한일고(8위)였다. 한일고는 1등급 학생비율에서도 일반계 학교 중 성적이 가장 좋았다. 공주사대부고와 한일고는 같은 지역의 '라이벌'로 두 학교 간 학력 올리기 경쟁이 치열하며, 그 효과가 수능 성적 향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풀이됐다. 경기 광명의 진성고(16위), 안산 동산고(26위) 역시 비평준화 지역 학교로 경기도의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학교다. 경남의 거창고, 경북 풍산고와 점촌고, 전남 장성고 등 농촌지역 고교들의 선전도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들 비평준화 지역 선호학교는 지역의 우수학생들이 지원하고 학생들을 선발해 뽑기 때문에 특목고 수준의 학력 수준을 보이고 있다.
비평준화 지역인 강원도 명문고들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100위권에 춘천고·강릉고·원주고·춘천여고·강릉여고·원주여고 등 6개 학교가 올랐다. 강원도 교육청 관계자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학교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서로 간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경쟁은 학교 간 특색도 낳고 있다. 춘천고는 타학교보다 강도 높은 수준별 수업으로 유명하며, 강릉고는 상위권 학생이 하위권 학생을 가르치는 '선후배 간 문화'를 내세우고 있다. 또 원주고는 같은 종류의 권장도서를 90~100권씩 구입해 전교생이 돌려보도록 하는 등 언어영역·논술만큼은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
평준화 지역 학교로 수능 성적이 좋았던 학교는 경북 포항여고(40위) 부산 개성고(44위) 충북 세광고(46위) 경기 부천여고(57위) 대구 경신고(79위) 등이었다.
☞ 표준점수
특정 영역·과목의 응시자 집단에서 해당 수험생의 상대적인 위치(평균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점수. 개인의 원점수와 계열별 전체 응시생의 평균 원점수를 뺀 값을 해당 과목의 표준편차로 나누는 방식으로 구한다.
등급
응시자 집단의 최상위부터 최하위까지 비율에 따라 9개 등급으로 나눴다. 표준점수로 상위 4%는 1등급, 상위 11%까지는 2등급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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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언·수·외국어 상위 30개 중 외고가 21곳
ㆍ비공개 뒤집은 교과부 ‘무책임 행정 전형’
최근 5년간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고교별 점수가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2005~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자료’를 조선일보가 전국 2200여개 고교별로 분석해 12일 공개했다. 고교별 수능점수 공개 결과 예상대로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자사고)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며 전국의 고교가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일렬로 줄을 서는 고교 서열화가 현실화됐다.
교과부는 이 같은 부작용을 우려해 수능점수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지만, 정권이 바뀐 후 방침을 뒤집어 수능 자료를 통째로 의원실에 제출했다.
◇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외고 = 지난해 수능에서 언어·수리·외국어 등 3개 영역의 평균점수를 합산한 결과 상위 30개 고교 가운데 외고가 21곳 포함돼 ‘외고=입시기관’이란 통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국제고 2곳, 자사고 3곳 등을 포함할 경우 특목고가 30곳 중 26곳을 차지해 외고 등의 설립취지가 ‘어학영재 양성’ 등이 아닌 ‘명문대 입학’이란 것이 입증됐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과 교과부가 검토 중인 ‘외고 폐지 후 자율형사립고 전환’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목고의 초강세에 맞설 일반계 고교는 찾기 힘들었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에 위치한 일반계 고교 가운데 수능 3개 영역 평균점수 상위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대신 지방 비평준화 지역의 일반계 고교 4곳이 수능 3개 영역 평균점수 상위 30개교에 포함됐다. 하지만 이들 4개교는 해당 지역에서 가장 우수한 중학생들이 입학하는 고교로, 특목고와 유사한 성격의 학교라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로 해석된다. 보통학생들이 입학해 우수한 수능점수를 보인 학교나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같은 여러가지 변인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단순 결과만 가지고 일렬로 줄을 세웠다는 점에서 이번 수능성적 공개에 함정과 오류가 있다는 분석이다.
◇ 고교 서열화, 교과부 책임져야 = 교과부는 “당혹스럽다”면서도 책임은 없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양성광 인재기획분석관은 “정부는 수능 원자료만 조 의원에게 제공했으며 학교별 점수를 공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과부의 인식은 무책임한 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수능성적 공개에 대한 입장이 정권 교체와 함께 돌연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당시 교육부(교과부의 전신)는 일부 단체의 수능성적 공개 요구에 대해 “공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거부했다. 결국 이는 소송으로 비화했고 1·2심에서 “수능성적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와 교육부는 패소했다. 하지만 “수능성적 공개는 공교육 질서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던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입장 번복에 대해 교과부는 “내부 회의를 거쳐 결론을 내렸다. 회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일반고와 특목고 간 서열은 물론 특목고 내에서의 서열도 분명해졌다”며 “올해부터 서류심사 중심의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대폭 확대한 주요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적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