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벽 감독의 『럭키』(LUCK-KEY, 112분)
유쾌한 액션 코미디 영화
희극영화가 우회적으로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비극영화 보다 더 처절하고 아름다울 때가 많다. 『시티 라이트』, 『황금광 시대』, 『모던타임스』, 『위대한 독재자』 등 대부분의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이 사회적 이슈나 비판적 함의를 담은 영화들이었고,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심우섭 감독의 『남자식모』도 시대의 아픔과 사회상을 다룬 작품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계벽 감독의 『럭키』는 사회적 이슈를 배제한 외래종 오락영화임에 틀림없다. 맛있는 일본산 모리가나 밀크 캐러멜 같은 것이다. 오랜만에 코미디영화의 빅 히트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아쉬운 점은 이 정도 내용의 시나리오를 일본인의 힘을 빌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 요인 중에는 연기자 선택, 개봉시기, 장르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동안 일제 강점기의 우울을 다른 『밀정』, 『덕혜옹주』, 『귀향』, 『아가씨』, 뒤틀린 사회상을 보여주는 『검사외전』, 『터널』, 전쟁의 참혹함을 다룬 『인천상륙작전』, 노골적 사회적 참혹함의 확장을 보여주는 『부산행』, 『곡성』같은 영화들이 중심가 영화관에서 흥행순위의 선두에 있었다. 모두가 웃을 일이 없는 영화들이었다. 그 우울을 뚫고 코미디 영화 한 편이 등장했다.
유해진이 주연한 코미디 영화 『럭키』가 2016년 10월 13일 개봉하여 11월 26일까지 6,965,422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일본 우치다 겐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Key of Life, 2012)을 각색한 이계벽 감독의 코미디가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감독은 장편 『야수와 미녀』(2005), 단편 『아무도 모른다』(2006)와 『9시 5분』(2006)을 만든 경험이 있다.
『올드보이』(2003) 조감독 출신의 이계벽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럭키』는 목욕탕에서 비누에 미끄러져 잔인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기억상실증에 걸려 새로운 삶을 경험하면서 겪게 되는 일화로 짜여 있다. 형욱은 살인 사건 처리 후 우연히 들른 목욕탕에서 자살 계획 직전 들른 말단배우 재성(이준)과 열쇠가 바뀌면서 두 사람의 생활은 완전 반대가 된다.
재성은 훔친 행운의 키(럭 키)로 불안한 호사를 경험하지만 형욱은 자신을 재성이라고 생각하 고, 훌륭한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밋밋한 남성 중심의 영화에서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구조대원 리나(조윤희)와 그의 가족들이 재미를 배가한다.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이준의 연기도 신선하다.
이 영화는 반전의 묘미가 뛰어나다. 킬러는 기억력을 되찿고, 형욱은 TV 드라마의 액션 스타로서 실력을 발휘한다. 형욱은 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로부터 승낙을 받는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화려한 칼솜씨처럼 유해진의 변화무쌍한 연기 스펙트럼은 관객들을 완전히 자신의 숭배자로 만든다. 각자의 생활공간이 뒤바뀐 상황 설정도 흥미롭다.
어른들의 성장영화, 범죄 장르가 섞이는 방식으로 킬러 형욱(유해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피가 튀기거나 시체가 즐비하게 나 뒹굴 지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즐기는 영화이다. 노출되어 있는 모든 설정에서 독창성을 창출해내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희극영화의 진정한 발전은 오락성을 겸비한 사회상을 담은 영화의 출현에 있다.
순제작비 40억원, 이미 손익분기점 넘어 돈방석에 앉은 영화는 많은 감독들의 흥행 모델이 될 수 있다. 아류의 영화들은 실패를 낳고, 관객의 외면을 받는 법이다. 영화의 순환은 그래왔다. 로맨틱 코미디의 수준을 뛰어 넘은 킬러 코미디는 구급대원이 엄청난 치료비를 대신 지불하는 등 과장도 있었지만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로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는 모델을 제시해주었다.
이계벽, 생산자로서의 작가가 처한 사회적 위치에 대한 자각과 성찰의 측면을 가장 중심에 두고 사유해왔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미적 산물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서를 전달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코미디 장르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적중했다. 그는 어둡고 긴 터널의 벽을 넘어서는 영화를 생산했다.
『럭키』의 흥행을 계기로 이계벽 감독은 한국영화에 큰 힘을 보태는 감독으로 성장했으면 한다.
글/장석용(영화평론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