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법문 800
수행의 길156
만약에 그대가 어제와 오늘 현실에서 오는 괴로운 심처는 바로 구하고 원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바라고 원하는 바가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것 또한 오만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평생 마음체를 관해도 자성불도를 이루기는 어렵다.
극소수만이 체득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이다.
끝임없이 일어나는 의식과 인식의 번민과 고뇌의 무더기를 양산한다.
그것은 장마철에 논밭에 자라나는 잡초보다 더 끈질기다.
무의식에 잠복하고 있다가 조건이 생하면 생겨나고 조건이 멸하면 사라진다.
억념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름은 기억이라고 하고,
또는 업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감각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그러한 환경이 도래했을때 오므로 심히 깊이 잠복해 있다.
수백년의 선연과 악연.
습관과 학습효과로 단련되거나 훈습이 된다.
어떤경치를 보면 편하고,
어떤 환경을 보면 혐오와 기뿐곳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런곳도 불편한 사람,
불편한 관계가 된다.
그러하므로 그런 심성을 버리는 것이 수행의 도이다.
그래서 흐르는 물과 부는 바람처럼 어떠한 장소 어떠한
조건, 어떠한 인연에도 찰나간에 머물다가 스쳐간다.
그러하므로 사랑과 미움에 마음을 두지 말라.
성공과 실패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서 살아야 한다.
수행의 도도 신심의 원력으로 천차만별로 벌어진다.
세간에도 복덕성이 있다면 하는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복과 기연이 없다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진도가 없다.
만약에 그대가 원하는 것을 붙잡을 수가 있다면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재물.처자.명예.권력.직위를 영원히 소유할수가 없잖는가?
백년도 못사는 인생이 천년의 걱정을 붙들고 산다.
내일도 기약하지 못하는 삶이 십년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산다.
하루살이와 아침나절에 물안개나 풀입에 맺힌 이슬과 같다 그러하므로 항상 즐겁고 명랑한 생활을 하고 살아가면 된다.
될 인연이면 될 것이고 안될 인연이면 안된다.
안되는 일과 사람을 제도하려고 하는 것이 출세간에 수행자의 미혹한 행위이다.
갈 인연은 붙잡아도 간다.
올 인연은 막아도 온다.
남을 인연이라면 사는 동안 같이 머문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살면 된다.
종재기에 담을 물건을 항아리에 담는다면 활용을 모르는 어리석은이라 한다.
좁쌀같은 같은 성품을 가지고 대지와 바다와 허공에 비교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본래 대심[불성]은 그러한 것을 다 품고 있다.
묘주선원장 묘원 태허대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