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훈 스테파노 주임 신부님 강론
오늘 독서에서는 히즈키야 왕이 죽을병이 들었다. 온갖 치료를 다 받은 왕이지만 죽을병을 피하지는 못한다. 히즈키야가 울면서 하느님께 탄원한다. 하느님 앞에서 올곧게 살아왔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달라고 슬피 통곡하였다. 통곡하며 살려달라고 청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어색하게도 느껴지지만 솔직한 심정인 것 같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죽음이 나에게 닥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통이 워낙 심해서 사는 것이 힘든 순간에는 떠나갈 마음의 준비도 갖출 수 있게 되지만, 아직 더 살아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다면 이런 마음이 들 것 같다. 이런 히즈키야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께서 15년을 더 살도록 허락 해주신다. 여러분에게 지금부터 15년을 더 살게 해준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가셔도 할 말이 없다. 생명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고. 하루를 마치며 거룩한 죽음을 기도하면서 또 내일을 청한다.
요즘 장마 폭우로 인해서 생각지 못한 가운데에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15년이라는 표현은 선물이다. 우리의 삶도 선물이지만 지금부터 15년을 살 수도 있고 또 더 긴 삶을 허락하셔서 50년, 백년을 산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수명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고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다. 짧게 끊어서 5년이든 10년이든 15년이든 이 안에서 하느님께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제자들이 배가 고프다고 낫을 들고서 밀 이삭을 수확했다면 남의 것을 훔쳤기 때문에 죄가 된다. 그렇지만 낟알을 몇 개 먹었다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구약 성경 레위기에 보면 추수할 때 다 수확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되게 남겨두라고 하신다. 또 신명기에서도 남의 포도밭에 들어가 포도를 따 먹는 것은 괜찮지만 그릇에 담아 싸가는 것은 안 된다고 하신다. 가난한 사람 또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인이 그 정도는 그냥 주어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 법이라는 것은 바리사이들이 말하듯 규정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정신을 살려야 한다.
법의 의미는 법이 약자들을 보호해 주는 법이어야지 약자들을 옭아매고 강한 자들은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올바른 율법의 정신이 아니다. 율법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많은 법들이 약자에게만 강하게 작용하는 그런 면들도 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법대로가 아니라 법의 정신을 살려서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법도 사랑의 정신을 깨달을 수 있어야 되겠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말씀도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 쉬는 시간을 가지라고 하느님 앞으로 초대하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우리 참 신앙인에게 있어서 주일미사 참례하는 것은 기쁨이고 하느님의 제단에 나아가는 것이고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모인다는 의미를 가진다. 사람을 위해서 법이 생긴 것이고 안식일이 생긴 것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고 또 우리를 살리려는 주님의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