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쾌한씨'는 작업 도중 자동차 범퍼모서리에 복부가 찍히며 넘어진 이틀 후에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병원을 찾았다. 장파열. 거동조차 힘든 그가 이런 사실을 회사에 알렸지만 수술이 끝나도록 회사에선 일언반구조차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된 그가 출근했을 때 회사에서 이미 퇴사처리된 후였다. 치료는 고사하고 일자리마저 자신도 모르게 뺏기고 만 것이다.
이런 하소연과 함께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이후 단 한번도 결근한 적이 없다는 그가 내민 월급봉투는 의문투성이였다. 몇 달 전부터 인상된 시급 370원과 연말성과금 지급은 고사하고 고용주 마음대로 월급을 주고 미루고를 반복하여 들쭉날쭉, 계산조차 복잡한 월급명세서였다.
"내가 잘못한 기라. 마, 다친 그날 병원을 찾아 갔어야 한 긴데 나는 나대로 그냥 견뎌보려고 했던 기라." "자기들 마음대로 봉급을 줘서 안 그런교. 다음달에 밀린 것은 그 다음다음 달에 나오는 기라."
그의 말대로 다친 그날 바로 병원을 찾았다면 적절한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비정규직중 과연 몇이나 산재처리를 받았는가?"고 울산현대공장 파업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털어 놓는다. 산재뿐이랴. 비정규직 그들이 '생계'현장에서 겪는 부당한 대우와 인간적인 차별과 수모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정규직에게 작업복이 세 벌 나오면 이들에겐 두 벌, 그래서 정규직이 버린 작업복을 주워 입는데 그나마 좋아진 사정이라고. 간식으로 정규직에게는 제과점 빵을 주지만 이들에겐 구멍가게의 빵을 주는데 한 생산라인에서 정확히 구분한다. 정규직은 해마다 임금인상투쟁을 하지만 이들로선 어림도 없을뿐더러 정규직이 파업하는 동안 덩달아 일을 못하는 이들은 그들 뒤에서 비를 들고 청소를 해야 한다. 정규직에게는 파업동안의 일당이 나오지만 이들 비정규직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월차를 하루라도 쓰려면 범법자라도 된 듯 비굴해져야 하고, 또한 일주일전에 미리 말해야 하기에 갑자기 아프면 낭패,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아픔도 허락을 받고 아파야만 하는 이들이다. 생리구조상 남자들에 비해 볼일 보는 시간이 긴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화장실 볼일로 수모를 겪어야 한다. 끊임없는 잔소리와 따가운 눈총은 물론 '짤리는'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라리 옷에 싸 버리고 말까?'를 수도 없이 생각한다고.
이렇듯 모멸로 이어지는 수모를 예사로 받는 이들이 정작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짤릴(그들 표현대로)' 위험이 가장 많은 '신규채용 때'다.
우리나라 채용구조는 3개월 계약, 3개월 계약… 이런 식이다. 1년 계약은 퇴직금을 줘야 하기 때문에. 또 한 가지는 1년 계약단위인데 그 대신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교묘히 이용하는 악덕 고용주들에게 비정규직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 쓰고 버리면 그만인 싸구려 부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렇다보니 작업현장에서 받는 온갖 차별과 모멸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해고되지 않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도 좋으나 그보다 먼저 저는 퇴사당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으면 합니다. 더는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그런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인격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차별까지 받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잖습니까?"-어느 비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거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턱없이 적은 월급은 들쭉날쭉하여 생활은 계획 없이 늘 불안정하고, 작업현장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기거나 불만을 말하면 그 순간 퇴사로 이어지기 일쑤다. 또한, 어느 날 출근하여 보면 자신도 전혀 모르는 회사에 입사되어 있다. 그야말로 입사도 퇴사도 고용주 마음대로다.
비정규직으로서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일정 기간이 지나 정규직으로 채용은 고사, 일한 기간만큼 몇 백 원씩 쌓아진 시급조차 떼먹으려고 고용주는 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실태는 강쾌한씨가 치료비는커녕 자신도 모르게 쫓겨나고만 울산현대공장이야기에 불과할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대한민국인권의 현주소를 찾아서
<길에서 만난 세상>의 첫 번째 글,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은 파업중인 울산현대자동차를 찾아가 만난 비정규직 이야기다. 책 속의 글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웹진 '인권'에 연재되었던 글들로 21세기의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다.
"2004년 2월 폐광 속에 버려진 광부들의 이야기를 필두로 글쓴이들은 매달 길을 떠나야만 했다. 서울에서 가까운 안양을 다녀오기도 했고, 전라도 광주와 부안을 다녀오기도 했고, 울진과 속초, 소록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모두 참으로 아픈 곳들이었고,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곳들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조금만 더 정직하고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에 눈물 떨 군 적도 여러 번이었다." - 여는 글
세 명의 공동 저자 스스로 이라크 파견 작가, 탈학교 청소년, 방북 이후 보안관찰처분 등의 이력을 갖고 있어서 최소한의 인권마저 보장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여 생생하게 전해준다. 세 명의 공동 저자가 만나 끝없이 눈물 적셨던 사람들은 또한 이렇다.
우리 사회의 성(性)에 대한 모순과 편견이 만들어 낸 비혼모,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봉제노동자 24시, 외국인 이주 노동자 실태,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아시아 여성들 코시안, 테러리스트로 싸잡아 오해받는 무슬림, 탈학교 청소년, 방황하는 도시의 노인, 보호 관찰대상자, 진폐증으로 고통 받고 살아가는 탄광촌 사람들, 팔려오다시피 와서 성을 유린당하고 착취당하는 베트남 처녀들… 그리고, 세상의 편견에 여전히 세상의 끝에 있는 섬, 소록도를 찾았다.
한편의 글 끝마다 인권에는 미처 담지 못한 취재후기를 실었는데 뒷이야기들만으로도 그들의 아픔은 깊게 패여 들고, 인권관련 사진을 주로 찍는 김윤섭씨의 사실적인 사진들이 깊은 생각을 묻게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간 이런저런 매스컴을 통하여 한번씩은 반드시 만난 적이 있는 이야기들인데도 표면적인 것들만 알고 있는 나의 무관심에 또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들이 나의 일상,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매일 무심히 스치는 이웃들이란 사실이 가슴 아프고 억울하였다. 마음 아프고 부끄럽고, 적절치 못한 국가정책이나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고 착취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향하여 치밀던 분노도 숨기지 않고 싶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은 세상. 우리들의 작은 소망이 모여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 나의 일이 아니니 나와는 별 상관없다는 무관심만으로도 때론 우리도 가해자일수 있지 않을까? 가까운 내 이웃의 일이 결국은 나의 생활과 이어진다. 같은 사회 공동체로서 적어도 무엇이 우리들의 권리를 빼앗는지, 어떤 사람들이 차별대우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 관심가지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몫이지 않을까? 우리는 과연 몇 퍼센트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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