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동물은 누굴까? 개나 고양이가 먼저 떠오른다. 인간과 교감을 오래 했고 친근한 동물이긴 하지만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별로다. 그렇다면 말은 어떨까? 일찍이 기마민족들은 기병전술로 정복전쟁을 벌여 영토를 넓히며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우경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소는 어떨까? 물론 말과 소 모두 인류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지만 이에 필적할만한 동물이 양이 아닐까 싶다. 고대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양은 인간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해왔다. 특히 서구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물질적 토대가 되어줬다. ‘희생양’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인간은 양을 먹는다. <벽돌집>은 숙성육 양고기 전문점이다.
뉴질랜드산 어린 양고기를 한식 재료로
이 집 주인장 김성수 대표는 호텔외식경영학 박사다. 여러 대학에서 15년간 강의를 하면서 틈틈이 양고기를 연구했다. 한편으로는 경기 과천에 양고기 전문점을 차려 연구결과를 접목시키기도 했다. 꼬치요리 위주의 중식과 일식으로 양분되는 국내 시장을 보고 양고기의 한식화를 시도하려고 문을 연 식당이다. 얼마 전에 지금의 서울 가락동으로 옮겼다.
<벽돌집>은 6개월령 뉴질랜드산 숙성육 양고기를 취급하고 있다. 양은 생후 7개월이 되면서 차츰 특유의 냄새를 생성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주장이다. 보통 램(lamb)은 1년생 어린 양을 뜻한다. 양고기에 익숙한 서양사람 기준으로는 1년생 램이 먹기 적당해도 우리에게는 노린내가 감지된다고. 반면, 너무 어린 양은 고기 맛이 싱겁다고 한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고기 맛도 좋은 것이 바로 6개월령이라는 것.
그러나 완벽하게 6개월령 양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뉴질랜드 현지 목장의 양 사육 환경 때문이다. 광활한 초지에 양들을 풀어 방목하는데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스스로 번식하고 자란다. 각 개체별로 추적관리가 불가능하다. 차선책으로 표준 체중을 적용해 선별하는데 가끔씩은 6개월에 못 미치거나 초과하는 양도 생긴다.
대개 양고기는 숙성시키지 않는다. 고기가 워낙 부드러운데다가 양 고깃집들이 대체로 영세해 숙성 시설을 갖추지 못 해서다. 그러나 이 집은 반드시 약 10일 정도 저온숙성을 시킨다. 부드럽게 할 목적이 아니라 풍미를 높이기 위해서다. 숙성 과정에서 잘못하면 부패로 이어져 낭패를 볼 수도 있어서 숙성작업은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
갈비와 등심 저렴, 와인 무료 제공
<벽돌집>은 양고기 전문점인데 정확히는 양고기 정육 식당이다. 원하는 고기를 구매한 뒤 상차림 비를 내고 구워먹는 스타일의 식당이다. 따라서 고기 값이 비교적 저렴하다. 구이는 크게 두 가지, 양갈비와 양등심이다. 고기 값은 시가를 적용하는데 요즘에는 양갈비 1인분(340g)에 2만3000원, 양등심 1인분(250g)은 2만5000원이다.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필수적으로 구입하는 ‘구이용 모듬야채’는 5000원. 오크라 그린빈 아스파라거스 가지 대파 마늘 방울토마토 파프리카로 구성됐다. 상차림 비는 1인당 3000원. 여기에는 숯불, 기본 소금과 반찬, 라면사리와 김치전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셀프코너 이용권 등이 포함됐다. 기본반찬은 채소 샐러드 명이나물 산고추 피클이며, 기본 소금은 민트 소금과 쯔란 소금(쯔란, 후추, 고춧가루) 두 가지.
테이블에 레드 와인도 한 병씩 놓인다. 주문하지 않은 것이어서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 없다.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니까. 과천에 있던 점포를 최근 가락동으로 이전한 기념이라고. 세라믹 화로에 참숯이 들어앉으면 비로소 상차림 준비가 끝난다. 전통 질화로를 연상시키는 세라믹 화로에서 한식 이미지가 물씬 풍긴다.
담백한 ‘숄더랙’ 갈비에 와인 곁들여야 제 맛!
‘양갈비’는 양의 어깨부터 4번 갈비까지의 부위인 숄더렉만 사용한다. 5번부터 12번까지의 뒤쪽 갈비인 프렌치렉은 지방이 많은 편이어서 한국인 입맛에는 느끼해 뺐다고 한다. 숯불 위에 갈비와 채소를 올린다. 모두 가급적 미디엄으로 구워야 맛있다. 다만 대파는 껍질을 완전히 태워 한 꺼풀 벗겨 먹는다.
다 익은 갈비는 두 가지 소금 중 기호에 맞는 것에 찍어 먹는다. 워낙 냄새가 없는 어린 양의 고기인데다가 참숯 불향을 입히니 잡내가 없다. 갈비가 부드럽게 씹힐 때마다 입 안에 육즙과 풍미가 흥건하다. 숙성의 영향일 것이다. 찬으로 나온 명이나물에 싸먹기도 하지만 워낙 향미가 강해 양고기의 제 맛을 가린다. 고깃집 가면 무조건 명이나물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찬으로 구성한 듯하다. 가끔 고소한 참기름 향이 월등한 샐러드를 곁들여 입안을 헹군다.
그동안 양고기하면 양꼬치였고, 양꼬치하면 중국 맥주가 머릿속에서 연관검색어로 붙어 다녔다. 그러나 양고기 전문가인 김 대표는 양갈비와 와인의 조합을 권했다. 궁합이 맞아 서로의 맛에 상승작용을 한다는 것. 양갈비 구이와 숙성된 와인 향의 조합은 맛 이전에 멋과 여유가 느껴졌다. 1만 원대임에도 맛이 괜찮은 칠레와 프랑스산 와인들을 다종 구비했다.
한편 ‘양등심’은 양의 목등심 부위다. 양은 소와 달리 목 부위 근육이 발달해 이 부위가 담백하고 맛있다고 한다. 몽골에서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접대용으로 내놓는 부위라는 것.
양고기 보신탕 ‘양전골’도 무료 제공
고기를 먹고 나면 양전골을 서비스로 제공한다. 정식 메뉴인 양전골(1인분 1만6000원)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만 다 먹기 벅찰 만큼 푸짐하다. 돼지의 삼겹살이나 소의 양지쯤에 해당하는 뱃살 부위 살로 끓였다. 양 고기를 2시간 30분 고아내고 기름을 제거한 국물에 된장을 넣고 끓여 깊은 맛이 난다. 일종의 양고기 보신탕인 셈.
맛도 육개장이나 보양탕과 비슷하다. 양 뱃살은 적당히 쫄깃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고기 먹고 난 뒤의 입가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고기와 함께 깻잎 부추 쑥갓 미나리 등 채소들을 먼저 건져먹는다. 남은 국물에 역시 무료로 제공하는 라면 사리를 넣고 끓여먹어도 별미.
그래도 배가 허하다면 셀프 코너로 간다. 라면과 김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집은 국내 유명 김치 메이커의 대리점을 겸한다. 양질의 김치를 사용한 김치전이 얼큰하다. 일종의 후식 개념으로 먹기 좋다. 특히 돼지 정제 기름인 라드를 비치해두어 누가 부쳐 먹어도 김치전이 고소하다. 양고기는 가족외식이나 직장인 회식으로 적당하다. 2층에 52인실의 연회장도 있다. 근처 가락시장 종사자들이 단골로 찾아와 아침 8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늑대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은 양이다. 그 다음은 아마 어린 돼지가 아닐까?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 늑대를 막아낸 막내돼지 이야기에서 옥호를 빌렸다. 김 대표는 앞으로 양고기를 탕이나 찜 불고기 석쇠구이 등 다양한 한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튼튼하게 쌓아 올리는 자세로··· 서울시 송파구 중대로9길 36 02-403-6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