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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채 시집 『흑두루미 날다』 해설
동식물과 고향 제재의 시편들
공광규(시인)
1.
류인채 시인은 필자와 같은 나이면서 같은 고향인 충남 청양 출신이다. 청소년기까지 시골 경험을, 이후 고향을 떠나와 도시 경험을 한 것도 필자와 비슷하다. 인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졸업(문학박사)한 시인은 2014년 계간 《문학청춘》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7년 《국민일보》 신춘문예에 시 「돋보기」가 대상으로 당선되면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은 시 「詩에게」서 진술하듯 온몸이 가렵도록 “숨어 있던 시들 시나브로 꽃눈 터져” 그동안 시집 『나는 가시연꽃이 그립다』『소리의 거처』『거북이의 처세술』『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다. 2014년 인천문학상을 수상 했고, 경인교육대학교와 성결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계간 《학산문학》 편집 위원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안개 낀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발밑에 으깨진 풀잎을 보고, 손사래 치는 나뭇잎을 보고, 재잘대는 새들과 그 뒷전에 있는 자신을 보고 고향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쓰고 있다. 정리를 하면 시인은 일상에서 풀잎과 나뭇잎의 움직임, 새의 울음소리, 고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류인채 시인의 시집에는 풀과 꽃과 나무 등 식물의 이름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상당수 언급된다. 이를테면 「노랑턱멧새」「흰나비」「흑두루미 날다」「직박구리」「저어새섬」「황제펭귄」「바지락국수를 먹는 중이다」「개미」「가오리연」 등이다. 시인은 이런 시들에서 자신의 경험을 적실하게 형상한다.
개미야 여름은 참 길기도 하구나
이른 아침부터 땅거미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네가 하는 그 일이 나는 궁금하다
더듬이를 세우고
곰곰 생각하는 그것이 나는 궁금하다
삼각형으로 단단해진 머리
구부정한 등
실낱같은 다리로
열심히 기어가는 그곳이 나는 궁금하다
머리가 잘리고도 펄펄 뛰는 메뚜기를 끌고 가는
그 무심이 나는 궁금하다
잘록한 허리는 금방 끊어질 듯한데
곰곰 무언가를 끌고 가는
너는
- 「개미」 전문
마당 가 천수국에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나풀나풀 노란 꽃잎에 하얀 미소가 번진다
꽃밭을 가꾸던 아버지의 무명 저고리 깃이다
바람에 춤추며 팔랑이는 앞섶이다
잔디밭을 휘휘 돌다가 공중에 솟구쳐 오르다가
다시 꽃밭에 앉아 이 꽃잎 저 꽃잎 살피시며
아버지, 종일 살랑살랑 안마당에 머무신다
- 「흰나비」 전문
동서양 문장에서 동물은 주로 풍자와 우화적 어법에 자주 사용한다. 어딘지 모르게 시 「개미」에서도 그런 냄새가 난다. 이 시는 화자가 개미에게 일방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의 제재가 일관되게 질문하는 시 「쇠뜨기」와는 반대 형식이다. 화자는 개미의 생태적 특성을 알면서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먹이를 물어 나르는 개미에게 궁금하다고 묻는다.
개미가 더듬이를 세우고 곰곰 생각하는 것도 궁금하고, 열심히 기어가는 목적지가 궁금하다. 메뚜기를 끌고 가는 것이 궁금하고, 끊어질 듯 잘록한 허리로 곰곰 무언가를 끌고 가는 것이 궁금하다. 사실 이 질문은 일상에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개미에게 물을 것도 없고, 물음에 대한 답은 질문자도 알고 있다. 알면서도 묻고,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묻는 내용 없는 질문은 우둔을 가장한 우화적 방식이다.
묘사가 일품인 시 「흰나비」의 공간은 고향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종일 살랑살랑 안마당에 머무신다”는 문장 때문이다. 마당가 천수국에 나비가 한 마리 날아와 앉았는데, 꽃밭을 가꾸던 화자의 아버지 무명저고리 깃을 닮았다고 한다. 바람에 춤추는 팔랑이는 앞섶을 닮았다는 것이다. 나비로 몸을 바꾼 화자의 아버지는 잔디밭과 공중과 꽃밭을 자유스럽게 옮겨 다니며 마당에 머문다. ‘나풀나풀’이나 ‘휘휘’나 ‘살랑살랑’하는 의태어와 “이 꽃잎 저 꽃잎”이라는 언어의 중첩이 시 읽는 재미를 준다. 동시에 시적 효과도 발휘한다.
순천만은 철새 도래지인데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갈대들만 가볍게 몸 비비며 서 있다
고요한 둘레길을 걷다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는데
서쪽 하늘로 기우는 해가 마침표를 붉게 찍는다
순간, 푸르륵 푸르륵
여기저기서 새들 한꺼번에 깃 치는 소리 들린다
누가 무슨 신호를 보냈는지
갈대밭에서 숨 고르던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 떼가
오후 다섯 시를 끌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발목이 간지러운 갈대들이 잎을 뾰족이 세우고 휘청거린다
저 새들, 어느 행성에서 날아온 누구일까
오래 봉했던 입이 한꺼번에 열린 듯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공중의 합창이 웅장하다
새까맣게 하늘을 덮은 군무가 시작된다
제 색에 취한 노을이 서천에 점묘화를 그린다
새들은 해 지는 쪽으로 날다가 돌아서 길게 원형을 만들다가 화르르
건너편 논바닥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른다
머리 위에서 회오리가 인다
이곳의 저녁은 새 떼에 포위되었다
갈대들은 방죽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새들은 제가 걸어온 길을 지우고 서서히 하루를 지운다
길이 없어진 길 위에서 나는 넋 놓고 그들을 바라본다
저 새들 지금 저 붉은 눈동자로 무얼 주시하고 있는지
긴 다리를 뻗어 이 저녁을 떠메고 어디론가 날아갈 태세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뚜루루루…
높이 더 멀리 날아가 까마득한 점이 되는 새들
목을 길게 빼고 커다란 날개를 휘저어
저무는 하늘 끝까지 날아갈 듯하다
문득, 겨드랑이가 간지럽다
- 「흑두루미 날다」 전문
표제시 「흑두루미 날다」는 묘사와 진술이 절정을 이루는 역작이다. 서쪽 하늘로 기우는 해가 마침표를 붉게 찍는다는 시각적 심상이 인상적이다. 갈대 속에서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 떼가 “오후 다섯 시를 끌고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표현이 장엄하다. “발목이 간지러운 갈대들이 입을 뾰족이 세우고 휘청거린다” 진술이 섬세하다.
오래 다물었던 입이 한꺼번에 터지듯 울음소리가 공중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은 웅장하다. 흑두루미 떼들의 군무는 하늘을 덮고, 노을을 배경으로는 점묘화를 그린다. 갈대들이 방죽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한다는 묘사와 진술도 일품이다. 하늘 끝까지 날아갈 듯한 새떼를 따라가고 싶어 화자의 겨드랑이가 간지럽다는 상상력도 기발하다. 새 울음소리를 묘사한 의성어가 청각적 울림을 주는 시다.
3.
식물은 시인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해오던 시적 대상이다. 옛 시인들은 식물의 생태적 특성에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기대어 표현하는 관습을 지속해왔다. 시골에 고향을 두고 있는 류인채 시인은 친식물성의 시인이다. 시집의 첫 안내문 격인 ‘시인의 말’에서 풀잎과 나뭇잎을 언급한 시인의 시에는 식물이 많이 등장한다.
풀과 꽃과 나무 등 이름이 제목으로 들어간 시들은 「수수꽃다리」 「얼레지꽃-한나에게」「대봉」「맥문동」「장평멜론」「참나리꽃」「자귀나무」「조팝나무-유림에게」「이팝나무」「쇠뜨기」「꽃잎을 머리에 인 사람들」「감자알 이웃」「자목련」「구절초」「능소화」 등 상당수이다. 시인은 이런 다양한 식물에 자신의 체험과 미적 감각을 투영하고 있다.
순간의 구름 여러 필 끊어 와
새틴 웨딩드레스 만들었다
풍만하고 눈부신 백색이었다
삶은 이따금 바람을 몰고 와 베일을 벗겼다
꽃인 사랑은 화약이 되기도 했다
- 「이팝나무」 부분
망월산 기슭에 구절양장으로 피어나던 꽃
열네 살 계집애 머리에 환하던 꽃
종아리 시린 추분 무렵
초경을 치르는 계집아이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어머니는 토방에서 구절초를 달이시고
골수에 스민 숙근초 향기
산비탈 두둑이 화초장 같은 꽃
- 「구절초」 전문
식물을 형상하는 류인채의 감각은 아름답다. 흰 꽃이 구름처럼 무더기로 피는 이팝나무를 순간의 구름을 끊어왔다는 상상, 또 흰 이팝나무꽃을 풍만하고 눈부신 새틴 소재로 비유하여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는 상상이 아름답고 풍요롭다. 연애할 동안만 사랑이고 결혼은 생활이다. 생활은 사랑의 베일을 벗긴다. 그래서 사랑이 화약처럼 폭발하기도 한다.
시 「구절초」는 망월산 기슭과 열네 살이라는 수사가 있어 구체성을 더한다. 아마 시인의 청소년기로 추정된다. 구절초가 “구절양장으로 피어나던 꽃”이나 “계집에 머리에 환하던 꽃”이라는 심상이 아름답다. 특히 “초경을 치르는 계집아이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어머니는 토방에서 구절초를 달이시고”라는 문장은 우리 민속과 풍속적 정서를 물씬 풍긴다.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잣나무 숲길에 구부정히 목 늘이고
연보라 꽃 한 송이 피울까 말까 망설이는 듯하다
숲 안쪽에 개별꽃 현호색 괴불주머니들이 저희끼리 쑥덕거리고 있다
소문이 축령산 중턱에 파다하게 번지고 있다
어린년이 바람둥이처럼 화사하게 차려입고
길 복판에 서 있다고
집단 구타를 당했는지
이파리에 얼룩덜룩 멍 자국 같은 것 보인다
그 모습 어디서 본 듯해
발길을 멈추고 쭈그려 앉아
가만 꽃잎을 열어 보니
목울대에 핏물 요동친 자국 뚜렷하다
무거운 발길로 수목원을 돌아 사방댐을 지나 내려오는 길
그녀가 반갑게 꽃봉오리를 열고 말한다
염려 말라고
꽃잎을 반쯤 젖혀 검은 씨방을 보여준다
- 「얼레지꽃 -한나에게」전문
얼레지꽃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의 산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4~5월 봄에 보라색 꽃이 핀다. 산에서 쌓인 나뭇잎을 뚫고 나와 꽃이 핀다. 화자는 축령산 잣나무 숲길에서 “구부정이 목 늘이고” 있는 얼레지를 밟을 뻔했다고 한다. 2연에서는 개별꽃, 현호색, 괴불주머니를 열거하고 서로 쑥덕거리고 있다고 인유한다.
화사한 얼레지꽃이 바람둥이 어린년으로 비유되고, 길거리 한복판에 있는 꽃의 이파리가 얼룩얼룩 멍 자국같이 보이는 것을 집단 구타당한 것으로 의외적 상상을 한다. 묘사와 진술, 열거와 인유가 빛나는 시다. 시 「능소화」는 꽃을 인물에 비유한다. 어머니는 “한낮의 능소화처럼 톤을 높이”시고, 능소화는 “미수 언저리 자매들의 농익은 표정” 같기도 하고, “지천명에서 이순 무렵 여인의 도톰한 입술 같기도” 하다고 비유한다.
시 「쇠뜨기」의 언술 방식은 질문형 대화형식이다. 말하는 주체는 시의 제재인 쇠뜨기다. 쇠뜨기는 호미를 들고 뽑아버리는 사람을 향해 “눈치껏 목 늘여 부추가 먹다 남은 햇볕 한 줌 얻어먹고/ 지문도 나이테도 없이 잠깐 푸르게/ 숨 좀 쉬다 가면 안 될까요?”하고 묻는다. 시 「박규흔傳」은 인물들의 다양한 행위가 주는 재미가 있다. 혼자서는 일어나기 힘든 구순의 어머니와 백일홍 같은 얼굴을 하고 불멍하는 딸들, 거실 바닥에서 코를 고는 아들들, 불새처럼 날아오르는 불, 만개한 꽃같은 불 등이 대위를 이루며 입체감과 생동감을 준다.
4.
문인에게 고향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고향 제재는 평생을 써도 또 쓸게 있다. 시골에서 자란 류인채의 시집에는 고향에 대한 어휘와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墨書銘」「노랑턱멧새」「아픈 손가락」「천장호 출렁다리를 건너며」「암만」「장평멜론」「이통령 댁 면사랑」「자목련」 등이다.
西紀 一九七六年 三月 十一日
무진생 용띠 가장은 손수
천리에 순응하는 새집을 짓고
입주를 하늘에 고했다
- 「墨書銘」 부분
도시에서 살던 시인은 이순이 되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돌아간다. 고향집을 수리하면서 천정을 뜯어보니, 먹물로 쓴 상량문이 보인다. 화자는 상량문을 읽어가면서 “오복을 기원한” 진중한 가족 신화를 확인하고 집에 대한 “내력의 뿌리가 곧”음을 느낀다. 상량문을 올린 아버지를 우러른다.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홍란이니?
어서어서 홀치기틀 들고 무랑골로 오란 말이지?
신작로를 지나 논둑길을 지나
망월산 계곡물 흐르는 언덕배기 응달집
비단 폭에 그린 기모노 꽃무늬를
갈고리바늘에 꿰어 실로 야무지게 옭아매자는 말이지?
엉덩이에 힘주고 틀에 앉아 양손 바삐 놀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홀치기꾸리 넘어가는 장단에 맞춰 유행가를 부르며
호호 깔깔 수다도 흥겹게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지집애
- 「노랑턱멧새」 부분
지집애는 계집아이의 충청도 사투리다. 고향집 뒷산에 사는 노랑턱멧새는 지집애 지집애 하며 운다. 화자는 이 새가 숨어서 자신을 자꾸 놀려대는 것으로 듣거나 자기를 찾아보라고 술래에게 재촉하는 소리로 듣는다. 아니면 뭔가 다급한 소리로 듣는다. 이 새 울음소리에 화자는 “홍란이니?// 어서어서 홀치기틀 들고 무랑골로 오란 말이지?”하고 응수한다.
개발 독재 체재 아래 해외수출을 위해 도시와 농촌 가리지 않고 부업으로 아이들까지 나서서 천에 홀치기를 하던 시절이니, 시인이 어렸을 때 일이다. 홍란이는 망월산 언덕배기 응달집에 살던 친구이고, 화자가 언니를 따라 도시로 나올 때 “아부지 굴레에 묶여 콩밭”을 매던 친구다. 홍란이는 지금도 고향에 살며 자주 만나는 다정한 친구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퉁퉁 부어 있다
오른손 중지는 첫마디 관절이 옹이처럼 튀어나왔다
그 손으로 여전히 텃밭을 가꾸고 집안일을 하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글을 쓴다
한때는 병든 당신의 몸을 씻기고 뜨개질을 했다
한때는 타자를 치고 주판알을 튕기고
한때는 홀치기를 하고 뽕잎을 따고
나물을 캐고 낙과를 줍기도 했다
그동안 혹사했구나!
속죄하듯 굽은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너만 아들이 없구나 그래서 내가 눈을 못 감지
이따금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을까
네가 제일 매운 시집살이를 하는구나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던 어머니는 아직 나의 엄진데
동기간도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저마다 아픈 손가락이 다른데
세상 끝까지 함께 가자 한 사람과 손을 맞잡을 때도
나는 열 손가락이 아프다
사랑해!
아기가 말을 배우기도 전
어설픈 엄마가 손바닥에 써 주었던 말
멋모르고 움켜쥔 작은 주먹도
변변히 감싸주지 못한 어미라서
자꾸만 손가락이 아프다
- 「아픈 손가락」 전문
시 「아픈 손가락」은 시인 자신의 서사로 보인다. 손으로 읽는 개인사이고 시로 쓴 살아온 내력이자 자서전이다. 시인이 초고와 다르게 수정을 해서 따로 보내온 것을 보면, 시인이 관심과 정성을 드리고 있는 시임에 분명하다. 이 시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난 60년의 한국 현대사를 타자-주판-홀치기-뽕잎-나물캐기-낙과줍기-남아 선호-엄마로 살기를 개인의 편년사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자기 고백이 강하다. 시는 자기고백의 양식이다. 자기를 고백할 때 인간은 가장 진실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자기고백이라고 해서 시의 내용과 시인의 삶은 똑같을 수 없다. 시는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하다. 시는 자기체험의 재현이거나 재구이기 때문이다. 또 시의 허구적 구성은 소설보다는 약하지만 수필보다는 강하다.
5.
「정지용과 백석의 시적 언술 비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류인채 시인은 한국의 현대시가 정지용을 통해서 진술시에서 묘사시로 바뀌었고, 그러한 시적 언술 방식이 백석을 통해서 묘사적 서술시로 계승 발전되었음을 규명한 바 있다. 이런 공부의 영향인지 독자들은 류 시인의 시 문장에서 정지용과 백석의 어법을 계승한 흔적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 「환절기를 건너는 법」과 「지하계단 플라스틱바구니에 던져진 동전 한 닢은」 같은 시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들은 선배인 정지용과 백석을 넘어 류인채 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표제시 「흑두루미 날다」와 「노랑턱멧새」「아픈 손가락」 등 대부분의 시들이 독자적 형식과 내용을 성취하고 있다.
인천에서 생활을 꾸리던 류인채 시인은 이순이 넘어 고향인 청양 고향집에 생활 일부를 걸쳐 두고 있다. 당호로 불리는 시골집 이름은 느락골 문정헌이다. 류 시인은 성장기에 경험한 농경사회와 도시 생활, 그리고 다시 시골에 내려가 부딪히게 된 격세지감의 낯선 제재들을 통해 새로운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독자들이 류인채 시인의 시를 만나 삶이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