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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 축복의 회복
성경본문 : 잠언 22: 4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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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 17-19
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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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수 목사
한 사람의 물질관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며 인격입니다.
성경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합니다.
돈을 가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은 항상 중립적인 것이므로 재물의 가치를 알 때에 재물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할 때에 물질은 축복이 됩니다. 바르게 사용하지 못할 때 물질은 오히려 저주가 됩니다.
자, 그러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물질축복은 무엇입니까? 물질 축복이 회복되는 역사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1. 물질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물질의 축복을 말하기 전에 물질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물질의 축복을 회복 하시려면 먼저 성경이 던지는 경고의 말씀을 겸손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경고의 멧세지로 시작 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은, 재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이 부유했다가도 다른 곳으로 흘러가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왔다가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거나 의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삶에 기쁨이 있고, 재물이 떠나면 절망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물 때문에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는 사람은 재물에 소망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20장 13절의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 연장받고,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많은 축복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고 궁전의 많은 재물로 인하여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사신이 왔을 때 모든 궁의 문을 열어놓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그런데 그의 자랑이 화근이 되어서, 바벨론으로 돌아갔던 사신이 그것을 왕에게 고함으로 바벨론은 군사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궁전 창고에 쌓아둔 많은 재물은 바벨론으로 옮겨졌고, 히스기야왕의 아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재물이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그 재물 때문에 화를 당하기가 쉽습니다.
잠언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한때 부자라고 큰소리 떵떵 쳤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가난하게 되고, 감옥에 가고, 빈털털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재물은 이처럼 많이 있는 듯 하지만, 동서남북으로 흩어지면 잡을 수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본문 17절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 했습니다.
물질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진 재물이 많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 길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쌓아두는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을 쌓아 둔다는 것은 물질에 소망을 걸고 산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부자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많은 재물을 가진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이 왕으로 재임할 때에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부유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물질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부자를 배격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합니다.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라고 합니다.
곡식이 많은 부자가 쌓을 창고를 여러 개 짓는 것을 보시고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언제나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지 물질에 두어서는 안 되는 것 입니다.
만일, 돈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썩히고 있는 크리스챤 부자가 있다면, 그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할 때, 몹시 마음이 찔릴 겁니다.
그럴 때, 그 기도를 드리며 하루의 양식을 위해서 눈물짓는 이웃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는 겁니다.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전 5:13)
또한 물질을 착취하는 도둑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도 이렇게 경고합니다. 약5:4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노동의 착취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4:15에는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의 원리는 노동의 품삯을 당일에 반드시 주는 것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이을 말합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기 쉽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철저히 반대합니다.
내 물질이 아까운 줄 알면 다른 사람의 것도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착취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물질이 우상이 된 것 입니다. 부자가 더 욕심이 많은 경우가 많습니다.
[부자의 본심]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부자가 얼마나 지독할 수 있는가?
한 부자가 리무진을 타고 가다가 길가에서 어떤 사람이 잔디를 먹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는 운전사에게 차를 멈추라고 한 다음에 "왜 잔디를 먹습니까?" 라고 물어봤습니다. 가난한 남자는 "음식을 살 돈이 없어서요." 부자가 말합니다.
"이런, 우리 집으로 오게나." 가난한 남자가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내와 아이도 넷이나 있는데…" "그들도 다 데려오게!" "정말 친절하시군요. 저희를 거둬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에 부자왈, "별 말을 다. 우리 집 잔디는 3피트나 자라있다네."
그리고 물질로 마음을 살지게 사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는 다시 경고합니다.
약 5:5은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물질로 인간의 마음을 살지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물질로 마음을 살지게 하려는 것이 사치라고 합니다. 돈이 없으면 쓰지 말고 적으면 아껴 써야 합니다.
최근에 신용카드 불량자가 많아졌습니다. 우선 쓰고 보자는 사치한 마음이 신용불량자를 만듭니다. 사치는 점점 심해집니다. 돈이 없으면 불안한 사람은 돈이 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물질의 노예입니다. 물질에 우리의 마음이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물질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나 불과도 같습니다.
물은 우리 삶에 절대 필요한 것으로 잘 이용하면 수력발전소도 만들고 거대한 배도 다니게 합니다.
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을 잘 이용하면 자동차나 거대한 비행기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물이나 불은 대단히 위험하기도 합니다. 홍수가 나서 온 동네나 토지들을 순식간에 흙더미로 만들고 제방이 터지면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도 있습니다. 쓰나미를 보십시오. 노아의 홍수를 보십시오, 물은 심판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산불이 나면 수십 년 수백 년 성장한 나무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듭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불은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은 우리 삶에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상이 되면 우리 마음이 거기에 빠지면 마침내 그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살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버리라는 교훈입니다.
맨날 허송 세월 하던 백수건달이 어느 날 사이다 병마개를 따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신령이 나타났다. -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단 한가지만 실현해줄 수 있다. 남자는 돈과 여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소원은 오직 하나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 두 개 동시에 말하면 되겠지.
- 돈 여자 - 이튿날부터 그 동네에선 백수건달 한 명과 머리가 돌아버린 여자 한명이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딤전 6:9,10에서는 "부하려는 사람은 시험과 유혹과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심은 이 청년이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돈을 더 많이 소유하려고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가 망한 자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발람은 대단히 유능한 선지자였으나 그의 약점은 물질 유혹에 너무 약하다는 것이요, 결국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간은 물질을 지나치게 탐하다가 자기 뿐 아니라 온 식구가 돌에 맞아 죽는 비극을 만났고,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랑 받는 종이었으나 물질을 지나치게 탐하다가 결국 문둥이가 되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의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지나치게 탐하다가 결국 같은 날 진노를 받아 죽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가능성이 많은 주의 제자였으나 돈에 대한 욕심을 이기지 못하므로 버리운 자가 되었습니다.
희랍 신화에는 이런 유명한 우화가 있습니다. 디오니소스라는 신이 미다스왕에게 말하기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해주겠으니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이에 욕심이 많은 미다스 왕은 신에게 "무엇이든지 내가 만지는 것은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디오니소스 신은 그 요청을 쾌히 승낙했습니다. 미다스 왕은 우선 정원에 있는 바위에 손을 대니 큰 황금이 됩니다. 신바람이 난 왕은 자기가 기르던 강아지, 공작새를 만지니 또한 황금이 됩니다.
왕은 너무 기쁜 나머지 이 기쁜 소식을 왕비에게 알리기 위해 내전으로 달려갑니다. "여보,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소."라면서 왕비를 얼싸 안자, 아내도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상심한 왕이 물을 마시려니까 물도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이 때 외동딸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한 사실에 놀라서 아버지께로 달려오자, 엉겁결에 끌어안자, 딸도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황금에 대한 지나친 탐욕 때문에 집안도 식구도 다 망하게 되는 독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 때문에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 6:24에서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은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재물'이란 '맘몬'이라고 불리우는데, 오늘의 우상은 바로 이 맘몬신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돈과 물질 앞에서 그들의 양심과 정조를 팔고 있는지 모릅니다.
본래 이 '맘몬'이라는 말은 '신뢰한다'라는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회를 출석한다고 할지라도 재물을 지나치게 의지하고 사랑하고 사는 사람들은 맘몬신의 신자들이지, 하나님의 신자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가진 물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셨다는 철저한 청지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청지기 정신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더 큰 물질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2. 물질축복은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적게 뿌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뿌린다는 것은 베풀기나 드리기에 관한 은유적 표현입니다. 우리의 물질이 땀 흘려 심고 가꾸고 거둔 땀의 결실로 이루어질 때만이 복된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나 불로소득이나 부정에 의해서 생겨진 물질은 오히려 내 가정을 망치고 자녀를 망치는 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일확천금이나 도박이나 갬블링 성격이 있는 사업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땀 흘리고 가꾸고 수고하는 노력이 있어야 축복이 되는 것 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일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 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9절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서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잠 10:4 "게으른 손은 가난하게 되고 부지런한 손은 부하게 되느니라" 고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맡은 청지기가 땀흘려 수고할 때에 열 달란트를 받는 날이 왔으나 한 달란트를 맡은 자는 게으르게 땅에 묻어두고 기도만 하고 있었는지 몰라도 그 있는 것 마져 뺐기는 날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살후 3:10 에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성경의 법칙이지, 심지도 않거나 뿌리지도 않는데서 거두려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닙니다. 적게 뿌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대부(大富)는 재천(在天), 소부(小富)는 재근(在勤)이라고 [大富 在天,小富 在勤] 하였습니다. 즉,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에서 기인한다고 했습니다.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인물들은 자기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대부가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신 것 입니다. 요셉도 엄청난 부자였는데 성경은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삭도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에 100배의 농사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창세기 26:12-13에 보면 “이삭이 그(그랄)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정당한 방법으로 땀 흘려 우물을 파고 농사지어 일구어낸 많은 수확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것이라 합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 한다면 대부는 하나님이 주신 재물에 대한 은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가 된 것 입니다. 바울이 마게도냐교회의 아낌없는 연보보다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언급하고 있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 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아낌없이 드리게 하는 것은 그분의 아낌없는 은혜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또한 풍성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믿음, 말, 지식, 간절함, 사랑 등 영적 은사가 풍성하듯 ‘드리기의 은혜’도 풍성하기를 권합니다. 로마서 12장 8절에서도 ‘구제’의 은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하사품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후한 선물인 동시에 일부 성도에게 주어지는 특별 선물(은사)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성도들은 타인과 복음을 나누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나 전도자의 은사를 받은 성도는 일부이며, 모든 성도들은 타인에 대한 목양적 돌봄을 행해야 하지만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소수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아낌없이 베풀어야 하지만 ‘베풀기(구제)의 은사’를 받은 크리스천은 일부입니다.
그들은 선한 청지기로서 자신이 맡은 상당한 재정적 자원을 이웃과 나눠야 할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일단의 미국 학자들이 그 나라의 100만 장자들이 어떻게 그런 부자가 되었는가를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부자가 되고 싶은 분들은 잘 유의해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100만 장자들 중에 부모의 유산으로 된 사람은 20%에 불과하고 80%는 노동층이나 중간층 출신으로 자수 성가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전기기구 메이커인 '더브르'는 1949년 구두수선을 하는 자기 아버지 가게 2층 구석방에서 전기기구 수선공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설립 당시 영세한 슈퍼마켓이었을 뿐인 월마트는 현재 2450억 달러의 연매출을 올리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세계 10개국 4천여개 월마트 매장에서 매주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장을 보고, 130만 명 이상의 직원들이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경영 목표와 도덕적인 기업가 정신, 건설적인 경영 전략과 직원들의 의욕을 북돋는 수평적 리더십, 효율적인 경영 승계가 어우러져 월마트의 성공의 원인이 됐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억만 장자인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연쇄백화점에서 겨우 몇 천불의 잡화점으로 시작하였다는 사실과 그는 하루에 평균 10-12시간씩 일하여 30년 만에 100만 장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자가 된 다음에도 철저하게 근검절약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샘 윌튼은 아침식사를 도너스 가게에서 때우고 손수 픽업 화물차를 몰며 연쇄점에 물건을 배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로소득으로 번 돈으로 고급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수백만을 날리고 있거나 자녀들에게 그랜져 승용차를 사주고 한달 용돈으로 1,000만원 이상을 주는 한국의 수많은 졸부들과는 감히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땀 흘려 수고하는 자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재물 얻는 은사를 주셔서 거부가 되게 하십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 입니다.
3. 물질축복은 주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청지기에게 물질을 맡기 시는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많은 선한 사업, 많은 나눔을 나타내게 하기 위하심입니다. 물질축복을 받아서 자기 가정의 행복만 위해 흥청망청 쓰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질축복을 구하는 자는 그 목적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많은 선한 사업을 하겠다는 청지기 정신이 확고해야 합니다. 본문 18절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 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런 정신 하에 열심히 일하고 얻는 대로 열심히 나누어주는 데 힘쓰는 자에게는 성경은 약속하십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 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펌프의 물을 푸지 않으면 나중에는 물이 말라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펌푸의 물을 푸면 풀수록 더 많은 물, 더 맑은 물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물질을 선한 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면 쓸수록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더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잠 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를 돕되 할 수 있는 대로 우리에게 갚을 수 없는 자들에게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자기 가 꾸인 것으로 여기시고 대신 갚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서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어려워서 갚을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도 기근을 만난 유대에 있는 성도들에게 “각각 그 힘대로” 기부한 적이 있고(행 11:29), 예루살렘교회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재물을 나눠주었습니다(행 2, 4장). “힘대로”와 “필요를 따라”는 성경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균형 잡힌 삶을 힘쓸 때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고넬료 가정처럼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 입니다.
4. 물질 축복은 하나님의 것을 드릴 때 받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10의 1조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여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약속이 아니고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이것은 수 천 년간 변함없는 축복의 원리입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 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 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에 많은 성도들이 십일조를 열심히 함에도 하나님이 물질축복을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지금쯤은 십일조하는 교인들이 거의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대부분의 교인 들이 그 어려운 중에도 십일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십일조 생활을 해보니 과연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이 물질축복을 주시는 것을 체험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고 나면 하나님은 나머지 10의 9의 물질도 복된 것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앞으로 물질의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니까?
어릴 때 주는 용돈으로부터 십일조를 내는 연습을 가르치십시오.
남편이 신자여서 십일조 생활하기가 힘든 여성도님들이 계십니까?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서라도 십일조를 떼어서 바쳐 보십시오.
그리고 바칠 때와 안 받쳤을 때를 비교해 보십시오. 분명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음을 발견하게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에릭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존재형 인간과 소유형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들은 소유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로서 존재하기 위하여 소유하는 자들입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돈이 우리 속에 있는 욕심과 연결되면 파괴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인 긍휼과 나눠줌(giving)과 연결되면 참으로 건설적으로 쓰여 질 수 있다”고 권면합니다. 정직한 노동과 땀으로 일구어 낸 부를 사회에 다시 환원하는 미국의 청교도적 재물관이 그나마 부강하면서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많이 배려하는 미국의 정신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 것입니다.
크리스챤 청지기 부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재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적절히 흘려 보낼 때, 주위의 곤고하고 핍절한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고 복음은 더욱 힘을 발하게 됩니다. 이것은 공상 소설에나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대 교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재 사건입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 이러라.
(There were no needy persons among them. For from time to time, those who owned lands or houses sold them, brought the money from the sales, and put it at the apostles' feet, and it was distributed to anyone as he had need. NIV) (행 4:34-35)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물질축복의 회복을 원하십니까?
(1) 물질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 땀흘려 수고하시기를 바랍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 입니다.
(3) 하나님의 것을 철저히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4) 나누어주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시면 반드시 물질 축복의 삶이 회복 될 것 입니다. 특별히 주께서 주신 물질 축복의 은사가 있는 분들은 기업을 크게 키워서 주의 일에 더욱 크게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상이 되어서 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위대한 부자 거룩한 부자 깨끗한 부자가 우리교회에서 많이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 어느 기자의 글을 읽고…
세계 최고의 부자들인 '워런 버핏'과 '빌게이츠'의 아름다운 기부 경쟁을 지켜보며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 부자들은 살아 있을 때 악착같이 잔인할 만큼 철저하게 돈을 모아도 세상을 떠날 땐 사회를 위해 기증하는 것을 보람으로 여깁니다. 반면, 한국 부자들 사이에서 재산의 사회 환원은 대단히 이례적인 '돌출행동'으로 여겨집니다. 법으로 정한 상속세도 내기 싫어서 온갖 편법을 '발명'합니다. 생색내기 또는 사회적 이목 때문에 마지 못해서 내놓는 기부금이 있지만 재산을 대하는 미국사회의 정신문화 저변에는 사유 재산의 배타적 영속성을 고집하지 않는 청교도적 '청지기 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바탕한 '청지기 정신'은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물질의 관리자라는 인식입니다.
청지기 정신은 자손에게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주는데 급급하지 않습니다. 재산 상속을 완전히 거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보람 있는 방법으로 유산이 선용되기위한 장치를 마련하는데 더 노력한다는 얘깁니다. '카네기'니 '록펠러'니 '워너 메이커'니 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토대를 놓은 거부들은 대부분 재산의 사회 환원을 선택했고, 그 바탕에서는 기독교적 청지기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와 환원이라는 어휘와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반면, 한국의 부자들은 세습이나 편법상속과 잘 어울립니다. 재산을 모으면 어떻게든 자식에게 최대한 물려주려는 것이 한국의 부자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심성입니다. 미국 건국정신의 주요 토대가 된 기독교 정신은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단히 중시합니다.
그러나 동양 특히 한국의 물질관은 '입신양명'과 '문중'이라는 표현이 압축해 보여주듯 '내 가족, 내 문중, 내 조상, 내 후손'이라는 '우리끼리'정신이 강합니다. 내가 모은 재산의 주인은 바로 '나'이며, 이는 '우리 집안' '우리 문중'의 독점물입니다. 물질의 주인을 사람으로 인식할 때,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은 모두 '내 것'이고 '내 자손의 것'이 되며, 기부는 '당연한 보람'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동정심의 산물'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재산의 사회환원은 사유재산의 약탈을 요구하는 '공산주의'로 받아들여집니다.
한국과 미국의 물질관의 차이는 또한 정신문화 또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흔히 '제삿밥을 얻어 먹는다'고 하지요?
한국인들은 사후에 자신의 이름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하는 점 이상으로 사후에 내 자식들이 나를 얼마나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유산은 후손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가장 강력한 매개물로 작동합니다.
두 나라 부자들의 물질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상속세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극명하게 표출됩니다. 빌 게이츠 등 미국의 내로라 하는 부자들이 부시 정부의 상속세 폐지 정책을 반대하는 데 앞장선 사실은 유명합니다. 비슷한 출발선이 아니라 엄청나게 차등적인 상태에서 경쟁을 시작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입니다.
상속세가 부자들의 사업 의욕을 꺾는다는 논리를 학자들과 보수언론이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미국의 부자들이 상속세 폐지 방침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신선했습니다. 상속세 강화까지 가지도 못하고 그냥 현행 상속 관련 법안의 엄격한 준수만 주장해도 '좌파'니 뭐니 말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 매우 부러운 일입니다. 어찌어찌해서 돈만 좀 만지면 큰 부자건 작은 부자건 '내간 번 돈 내맘대로 하는데 웬 참견이냐'는 인식, '상속세는 나쁘다'는 인식에 빠지는 한국의 물질 문화로서는 미국인들의 '기부와 환원'이 해외토픽처럼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부금 통계를 내 보면, 그래도 기업들의 거액 기부가 큰 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부'라는 것이 기업이 개인의 돈인지, 기업체의 수익 중 일부를 떼내어 내는 것인지, 기업 직원들이 월급을 원천 공제해서 내는 것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솔직히 각종 모금 운동에서 기업체로부터 접수되는 돈의 내력을 보면, 회사측이 직원들의 사전 동의 없이 그냥 '통보'만으로 월급에서 일괄 공제해 돈을 모으거나, 아니면 회삿돈으로 거금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국민들은 기업인들이 개인돈을 내놓을 때는 뭔가 '꿍꿍이 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순수성을 믿어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