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1. 맑음
오늘 아침, 빨간 모자
오늘 아침 빨간 모자-선일기 2020.10.11 수필.hwp
박경선
늙어지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신체 리듬으로 시간을 가늠하게 되나보다. 4시 30분이면 잠에서 깬다.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한 시간쯤 컴퓨터에 앉아 어제 읽었던 책<그분은 새벽에 왔다>조명래 수필집에서 발췌해놓은 글귀들을 정리하다가 5시 40분에 남편과 집을 나선다. 파크골프장이 있는 유천교까지 걸어가면 우리보다 앞서 나와 공을 치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인다. 아직 희뿌연한 어둠속이라 목표지점은 잘 안 보이지만 어림짐작으로 공을 날린다.
고령집 잔디밭에도 4홀을 만들어두고 치는데, 한 코스가 길어봐야 25m이니 별로 스릴을 못 느낀다. 하지만 대구 나오는 날, 여기 강변 골프장에 오면 9홀 두 세트로 25m 코스에서부터 56m, 75m, 85m, 95m 코스까지 날릴 수 있다. 더 멀리 날려 보내려고 비틀면 안될 허리를 힘껏 비틀다가 허리를 다쳐 마사지도 받고 복대도 하지만 욕심을 비우지 못하고 있다. 욕심이 과해 자꾸 허리를 비틀어 골프채를 휘두르다 보니 공의 옆 모서리를 치게 된다. 모서리를 맞은 공은 골프장을 이탈하여 옆 강물 풀섶에까지 날아간다. 조금만 더 힘껏 날렸으면 공이 강물에 빠졌을 수도 있다. 공과 그런 이별은 하지 말아야하는데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마음에 욕심을 비우고 어깨에 힘을 빼고 앞에 놓은 공과 멀리 목표지점에 집중해서 부드럽게스윙할 때 공이 정통으로 채에 맞아 “탁!” 하며 날아가는 맑은소리는 경쾌한 음악으로 들린다. 그 소리에 스트레스가 한방에 다 날아가는 기분이다.
“우리 같이 쳐도 될까예?”
부부가 치다보니 구장이 복잡해지면 두 사람이 따라붙어 4인 1조가 된다. 그래야 다음 사람들한테 구장을 빨리 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 오늘 따라 붙은 사람은 아줌마와 아저씨인데 각자 왔던 분들이 합세한 모양이다. 내 공이 홀에 들어가자 아줌마가 골프채 끝에 달아놓은 집게로 공을 집어 꺼내어준다.
“어머, 참 편리한 집게네요.”
감탄했더니
“아줌마도 저기 빨간 모자 쓴 아저씨한테 하나 얻으쇼.”
하며 옆 구장에서 골프 치는 패들을 가리킨다. 그들 중에 빨간 모자 할아버지가 보인다. 교도소장으로 퇴임한 분인데 골프채 끝 구멍에 끼워 넣을 집게를 만들어 열 댓개씩 가지고다니며 나눠준단다.
“어머, 나눔을 실천하시는 분이네요. 여보 우리도 연구해서 만들어 나눠줍시다. 그러면 친구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했더니 옆의 아저씨가 방법을 일러준다. 옷걸이 철사를 활명수 병에 끼워 만든 것이란다. 한 세트를 다 쳐 갈 즈음 아줌마가 또 일러준다.
“아, 저기 빨간 모자 아저씨가 집에 가실라나 보다. 아줌마도 얼른 가서 얻어 오이쇼.”
한다. 용기를 내어 달려갔더니 둘러선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하나가 남아서 건네준다.
“어머, 고맙습니다. 우리 신랑 것도 있어야 하는데……
웃으며 뻔지 좋게 말했더니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따라오란다. 자전거 위에 달린 가방에서 꺼내어 주는데 가방에 이름표가 큼지막하게 달렸다. 김성진. 낙동클럽 010-하고 전화번호도 쓰여 있다. 이 고마움을 문자로라도 날리려고 전화번호를 외어두고 싶었다. 뛰어가며 외쳤다.
“김성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복 지으시쇼!”
교도소장으로 퇴임하고 나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은 빨간색(모자)처럼 정열적으로 살고싶은 그 어르신의 인품이리라. 그분의 향기를 들이키며 김성진 이름 석자를 떠올렸다. 김성진! 그는 남편의 고등학교 때 절친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진, 재진, 석진 세 친구가 삼진클럽이라며 고향에서 몰려다녔는데 성진 친구의 장래가 제일 촉망되었단다. 그는 서울 명문대 졸업 전에 사법고시를 쳤지만 두 번이나 낙방하자 철도 공무원을 하는가 싶더니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평생 농사일로 고생하는 부모님 기대를 져 버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였을까? 자기를 믿고 시집와준 아내보기가 민망해서였을까? 곁에 있기만 해도 따뜻하고 함께 있어 행복한 것이 가족이었을 텐데 어린 두 딸도 남겨두고 고향집 뒷산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우리 결혼식에 사회도 맡아했고 부인과 아이도 장거리 우리 집에 오갔던 친구라 우리도 충격이 컸다. 남겨진 친구 아내와 아이들을 가끔 보러갔지만 차차 주춤해졌다. 우리 부부가 미망인을 찾아가 고작, 식사 같이 하고 오는 일이 오히려 그분을 더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싶은 염려에서였다. 요즈음은 딸들이 장성하여 훌륭하게 크고 있는 소식만 듣고 지내는 터다.
하필 오늘 아침, 빨간 모자 어르신 성함이 남편 절친의 이름과 같은 김성진이라니. 우리는 지금 95m 9홀을 바라보며 이 구장을 돌고 있는데 겨우 35m 3홀을 돌다 구장을 빠져나가버린 공 같은 친구가 그리워 빨간 모자 어르신의 뒷모습을 그 친구의 환영인양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2020.10.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