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화풍(花風)」 봄바람아, 꽃잎을 동구 밖으로 보내진 말라>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전기 문신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의 거제유배문학 「화풍(花風)」은 거제도 유배객 이행(李荇)에게 화답하여 써 준(贈擇之)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작가 최숙생은 이 짧은 한편의 시(詩) 속에 그의 귀양살이 온갖 고뇌를 담아내었다. 자신의 배소는 고을 읍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읍치(고현성)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푸른 숲만 보일 뿐이다. 어부가 무릉도원을 찾듯이, 나도 여기서 완전 적응하여, 편안한 삶을 살고 있으니 제발 봄바람이 꽃잎을 동구 밖으로 보낼 정도로 소문나게 불지는 말아달라. ‘혹여 나의 이러한 귀양살이가 알려져, 또다시 평온한 일상이 깨어지고 시련을 겪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을 드러낸 명작이다.
“먼 데 사는 봄바람아, 꽃잎 떨구어 동구 밖으로 보내진 말아주오. 가만히 꽃을 쓰다듬어 주고 버들가지 가볍게 스쳐주오. 남방 변방의 귀양살이 고달픈 나그네, 홀로 서글프다오. 한줄기 봄바람에 눈물 섞어 세월 보내며, 그저 무탈하기만 바랄 뿐이오.”
“결국 서정적 자아가 그리고 있는 곳은 바로 최숙생이 귀양살이하던 거제도 고현만 앞바다 장평 배소를 나타내며, 작가의 내면세계를 설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꽃을 피게 한 것은 고마운 봄바람이지만, 봄바람이 또한 꽃을 떨어뜨려 날리면서, 여기저기를 소식을 전한다. 꽃을 피게 하는 것은 좋지만, 조정에서 활짝 핀 거제도 꽃소문을 듣고 “혹여 사약이라도 내릴까?”하는 두려운 속내가 담겨 있다. 벌써 유배 3년째, 거제도의 자연과 유배된 학자들과 함께, 평온한 삶 속에 동화 적응되어, 거제도에 흔한 말까지 구입하여 거제 비경을 즐기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이때, 또 다른 정치적 역경으로 인해,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깨어질까 염려스러운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 [꽃바람(花風)의 종류] 따스한 동풍(東風)이 불어오면 봄꽃이 덩달아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즈음 그 옛날 선조들은 봄꽃이 필 무렵에 부는 꽃바람을 ‘화풍(花風)’이라 부르며 ‘꽃바람’을 다양하게 이름 지어 불렀다. 꽃샘바람은 꽃바람을 시기하여 분다고 ‘투화풍(妬花風)’이라 하고, 음력 3월에 부는 꽃샘바람은 ‘괴풍(乖風)’이라 했다. 그리고 ‘행화풍(杏花風)’은 청명절(淸明節)을 전후하여 살구꽃이 필 때 부는 봄바람이고, ‘이화풍(梨花風)’은 배꽃이 필 때 부는 바람이며, ‘노화풍(蘆花風)’은 갈대꽃에, ‘적화풍(荻花風)’은 억새에 부는 바람, ‘양화풍(楊花風)’은 버들에 부는 꽃바람이다. 또 ‘국화풍(菊花風)’은 중양절(음력 9월9일) 가을철에 부는 꽃바람이고 ‘연화풍(楝花風)’은 늦봄에 부는 최후의 화신풍(花信風, 꽃이 피는 것을 알리는 바람)이다.
◉ [1506년 조선 최고의 문학 공간 거제도] 1506년 거제도에 유배된 학자들은 모두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귀양살이를 했다. 당시 신현읍 일대의 유배객은 최숙생(子眞), 이행(李荇, 擇之), 김세필(金世弼, 公碩), 이려(李膂, 強哉), 홍언승(大曜), 홍언충(直卿), 홍언국(公佐), 이윤(李胤,子伯), 이전(李䐌, 子善), 이육(李育, 元叔), 홍언방(君美), 공백(恭伯), 이인지(李守訒, 訒之), 공신(公信) 등등, 약 26명의 유배 온 학자들이 서로 교분을 나누었다. 1504년 늦가을부터 1506년 가을까지 거제유배 생활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긴 장소가, 장평바닷가, 운문(문동)폭포, 소요동[상문동], 신청담(神淸潭, 문동폭포 웅덩이)과 매립전의 고현바닷가, 그리고 유자도[현 대섬(竹島), 현재 유자섬(橘島)은 당시에는 소도(小島)], 주봉 계룡산, 구천동(삼거리)까지 함께 다니며 거제비경을 즐겼다. 거제고을 선비인 이악(李鶚,斯立), 이맹전(李孟全), 이백완(李伯完)도 가끔씩 참석했으며, 또한 거제 관리 이수간(李守幹), 수위(守威), 수인(守訒), 수심(守諶) 형제들과도 시문을 교환했다. 이분들이 가장 자주 찾은 곳이 거제 고전문학의 1번지, 문동저수지에서 문동폭포 사이였다. 그리고 최숙생 선생의 「화풍(花風)」은 물론, 그의 거제도 유배문학 작품은 <거제읍지>, <거제군읍지(巨濟郡邑誌)>, <거제부읍지>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 다음 ‘元’ 운목(韻目)의 칠언절구 「화풍(花風)」은 조선전기 문신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의 거제유배작품이다. 1506년 완연한 봄날, 거제시 장평동에서 상문동 거제유배객 ‘이행(李荇)에게 화답하여 써 준(贈擇之)’ 측기식 한시(漢詩)다.
작가 최숙생은 이 한편의 절구 속에 그의 귀양살이의 온갖 고뇌를 담아냈다. “내가 있는 곳은 외딴 곳(장평동)이라, 고을읍치(고현성)가 잘 보이지 않고 다만 푸른 숲만 보인다. 어부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여기가 무릉도원인지 알지 못하고 살고 있을 뿐이다. 여기는 고을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후미진 곳은 아니나, 봄바람이 지나는 길에 나를 위한다고, 꽃잎을 동구 밖으로 보낼 정도로 소문나게 하지 말아달라. ‘평온한 일상이 또다시 깨어질까 염려스러운 마음을 드러낸 명작이다.’
*「화풍(花風)」* 거제도 꽃바람. 이행(李荇)에게 주다(贈擇之) / 최숙생(崔淑生)
祗見靑山不見村 마을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푸른 산,
漁郞無路覓桃源 어부는 도화원(무릉도원)가는 길을 찾지 못하네.
丁寧爲報東風道 정녕코 봄바람의 고마움을 갚으려 한다면
莫遣飛花出洞門 흩날리는 꽃잎, 동구 밖으로 보내진 말라.
◉ [저자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의 약력] 상재(像齋)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字)는 자진(子眞), 호(號)는 상재(像齋), 현우(玄祐)의 7세손이며 철중(鐵重)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였고, 1496(연산군2) 사가독서(賜暇讀書, 휴가를 얻어 책을 읽음)를 한 뒤, 1504년(연산군10) 응교(應敎)로 있을 때, 갑자사화(甲子士禍,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 복위 문제로 연산군이 일으킨 사화)로 1504년 4월 신계(新溪)에 유배, 다시 5월 거제도로 이배되어 이행(李荇), 홍언충, 김세필, 이려, 이윤 등과 거제시 신현읍에 함께 유배되어 있다가 1506년 9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1508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대사간·대사헌을 역임하고 1518년(중종13) 우찬성(右贊成)에 올랐으나, 이듬해 기묘사화(己卯士禍)때 파직되었다가 다음 해인 경진년에 죽었다. 사후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 그는 특히 시문(詩文)에 능하여 많은 저서(著書)를 남겼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덧붙여 그는 대사헌이 되어서 도성 안에 살고 있는 무녀(巫女)들을 쫓아내어 동서 활인서(東西活人署)에 모이게 하고, 도성 안에 있는 여승방(女僧房)을 철거하고 불상까지 헐어서 중들로 하여금 도성 안에는 접근을 못하게 하였으며, 사대부(士大夫)로서 제도에 지나친 집은 간가(間架)를 철거하게 한 유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