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말 씀: 마가복음 10:32-45
설교일: 2025. 3. 9 (주일 낮 예배)
우리 예수님은 어느날 갑자기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수난예고를 하신 것이
성경에 기록된 것만도 세 번이나 됩니다.
첫 번째 수난 예고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에 하셨고,
두 번째는 변화산 사건 이후에 하셨습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여행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은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 지시고
그야말로 죽으러 가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길의 목적을 분명히 가르치시기 위하여
세 번째 수난 예고를 지난 두 번과 달리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 32-34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 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직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아멘
얼마나 구체적이고 분명합니까?
그런데 이렇게 분명한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5절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말씀하시는데,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물으십니다.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37절이지요!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영광을 얻으시면 그 영광의 중요한 두 자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 야고보와 요한은 자리 청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무슨 뜻일까요 ?
“나의 길은 구하는 그런 영광의 길이 아니다. 지금 나는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쓴잔을 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세례를 받으러 가는 길이다” 하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제자가 예수님과 이야기 할 때 그 곁에,
다른 열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두 제자가 하는 말을 듣고 어떤 반응 보입니까?
오늘 말씀 41절입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내거늘”
왜 열 제자가 화를 냈을까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못알아 듣는 것이 하도 답답해서 일까요?
“야! 너희들은 예수님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르냐?” 그러면서 화를 냈을까요?
아닙니다.
“너희가 중요한 두 자리를 차지하면 그럼 우린 뭐냐?”
이런 미운 마음이 들어서 열 제자가 다 화를 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자들과 예수님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합당한 사자성어가 동상이몽(同床異夢)입니다.
같은 침상에 자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님은 같이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과 제자들의 생각,
예수님의 목적과 제자들의 목적은 전혀 다릅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 제자들은 영광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희생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지만, 제자들은 출세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섬김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지만,
제자들은 섬김을 받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오늘 우리는 이 제자들의 모습을 탓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제자들과 무엇이 다른가?”하는 것입니다.
1) 혹시 나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예수님이 주실 은혜와 축복만을 바라고, 그것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닌지 ~
2) 혹시 나는 예수님이 좋아하시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사는 것은 아닌지 ~
3) 혹시 나는 사랑하고, 섬기고, 주님처럼 헌신하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하고,
그저 나만 사랑하고, 내 자녀만 사랑하고,
내 가정, 내 행복만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렇습니다.
어쩌면 바로 우리가 영광에 취해 버린 두 제자이고,
그 두 제자를 보고 본노하는 열 제자가 아닌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혀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 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너희 중에서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오히려 종이 되어야 한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 목숨을 주어 그들을 구원하러 왔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의 삶 전체를 표현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섬김”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오늘의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누구나 위대한 사람, 크고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문법에 맞는 말만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섬기기 위해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몰라도 됩니다.
섬기는 데는 은혜와 사랑으로 충만만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도 누구나 위대한 사람, 크고 으뜸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누구나 다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 없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주신대로, 자기 위치에서 다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으뜸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처럼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섬김과 권위는 반대가 아닙니다.
자리를 통한 권위는 자리가 바뀌면 끝납니다.
그러나 섬김을 통해 얻는 권위는 자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납니다.
영광의 봉우리는 섬김이라는 산길을 통해서만 오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길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걸으신 섬김의 길입니까?
아니면 제자들이 걸어간 영광의 길입니까?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서로 서로 섬기는 섬김의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섬김의 길을 가며 우리가 영광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섬김의 길은 영광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결국에는 진정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섬김의 길을 가시고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을 빌립보서 2장 8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의 모양을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 결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오늘은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시기 위하여 받으신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절기로서 주일을 제외한 40일 간의 기간으로 여섯 번의 주일을 포함합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항상 수요일이며 참회로 시작함으로 ‘재의 수요일’이라고 하는데,
금년도 재의 수요일은 지난 주 수요일, 3월5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성 금요일은 사순절의 절정이고
사순절 마지막 여섯 번째 주일 금년 4월 13일은 종려주일 또는 고난 주일이라고 하는데, 이 고난 주간에는 특별히 고난에 동참하며 기도하고 경건하게 보내고,
4월 20일 부활절을 맞이 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번 사순절에 섬기는 은혜를 받고,
예수님처럼 섬김의 길을 가면서 예수님처럼 영광에 이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