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티고개~신앙고개(간이산패 인증)~태조단맥 분기점~청마산~청마산성~금성산(통수대 정자 인증)~(부여여고)~부소산~구드래나루터(표지석 인증) 약 16.5km/6시간
가자티고개(2.0km), 됨봉(160 0.5km), 신앙고개(1.6km),청마산(월명산 233 4.6km), 청마산성, 오석산(166 0.8km), 청마고개(제마소고개 1.5km), 석목고개(2.1km)금성산(121 1.3km), 부여여고(1.7km), 부소산(105 1.9km), 구드래나루터(1.2km)
<시간계획>
ㅇ07:00~09:40 : 가자티고개 이동(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566-1)
ㅇ09:40~16:00 : 산행 및 자유시간(날머리 장원막국수 맛기행 가능)
* 차량 대기장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1-1 구드래나루터
ㅇ16:00~18:30 : 귀경
좋은사람들 예약 홈페이지 : 2025-03-14 : 금남8-3 ( pty8489/물결따라)
좋은사람들 예약 홈페이지 : 2025-04-20 : 금남9-3 (달리마)
가자티고개(가지티고개)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와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 가자퇴골 사이의 고개이다. 가척 마을은 가재가 많은 골짜기에위치한다 해서 가재울 또는 가자울이라 불리다 후에 가척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충남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탄천면 가척리 경계의 됨봉(160)은 성골 마을이 뒤웅박(됨박)처럼 생겼다하여 됨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앙고개는 충남 부여군 초촌면 세탑리와 탄천면 가척리 사이의 고개이다. 세탑리(細塔里)는 백제시대에는사비군, 신라시대에는 부여군, 고려시대에는 공주군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부여군 초촌면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탑동리와 신송리, 세동과 몽도면의 보각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동과 탑동의 이름을 따서 세탑리라 하고 부여군 초촌면에 편입하였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송곡리, 가증리 경계에 청마산(140.8)이 지형도에 표시되어 있는데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초촌면 신암리 경계의 월명산이 산행 지도상 청마산(월명산 233)으로 표시되어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의 부여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은 월명산에 있는 백제 산성으로, 당시 수도였던 사비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은 둘레 약 5~6㎞의 흙과 돌로 쌓은 산성이다. 골짜기를 성안에 두고 산 능선을 따라 토석혼축의 포곡식 산성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청마산성과 부여읍 용정리 용정소류지 경계의 오석산(烏石山 166)은 오적산(烏積山), 오산(烏山) 이라고도 부르며 까만 돌이 나오는 산이라 한다. 백제 때부터 삼령산(三靈山)의 하나로 여겨졌는데, 산 부근에서 백제 때의 토기와 불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청마고개(제마소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와 부여읍 용정리 청마로 사이의 고개이다.
석목고개는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석목리와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사이의 고개로 40번도로가 지나간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가탑리, 부여읍 동남리, 부여읍 쌍북리 경계의 금성산(錦城山 121)은 백제의 삼산 가운데 하나로 일산(日山), 오산(吳山), 부산(浮山)의 산위에 신선이 살았다고 한다. 삼산중 일산은 부여의 동편에 있는데 지금의 금성산으로 추정되며 금성산을 중앙에 놓고 서쪽에 부산, 동쪽에 오산이 일정한 거리로 일직선상에 있다고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여읍 구교리 경계의 부소산(扶蘇山 105)은 언제부터 부소산으로 불렸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소나무를 뜻하는 풋소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부소라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솔뫼가 되는 것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扶餘邑) 부소산(扶蘇山) 북쪽 백마강변의 고란사(皐蘭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백제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절 뒤 바위 틈에 고란정(皐蘭井)이 있으며, 그 위쪽 바위틈에 고란초(皐蘭草)가 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고 하며, 또 궁중의 내불전(內佛殿)이었다고도 전한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落花岩)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028년(고려 현종 19)에 지은 사찰이라고도 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백마강변의 부소산에 있는 낙화암(落花巖)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자 궁녀 3천명이 백마강 바위 위에서 투신하었다 하여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한다. 바위 위에는 백화정(百花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의 사자루(泗(水+此)樓)는 원래 1824년(순조24)에 세운 임천면(林川面)의 관아 정문이던 것을 1919년 부소산성(扶蘇山城)에서 가장 높은 곳인 송월대(送月臺)에 옮겨짓고 이름을 개산루(皆山樓)에서 사자루로 바꾸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부여부소산성(扶餘扶蘇山城)은 538년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도읍지였으며, 당시에는 사비성이라 불렀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 수도 천도를 전후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구드래나루는 백제 사비성의 관문 역할을 한 곳으로 백제의 무역항이었다고 한다. 구드래는 부소산 서쪽 기슭 백마강변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구드래, 구다라, 굿들개, 구들설 등 여러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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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램블러 검색어 : 금남00-02 가자티고개 구드래나루터 , 금남8-3 , 금남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