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가 시카고 한 호텔 투숙하며 가장 저렴한 방을 요구했다.
“아니, 회장님! 자제분도 시카고에 오면, 언제나 이 호텔에 머무르고 가십니다. 그때마다 회장님 자제분은 항상 제일 좋은 방을 요구해서 그 방에서 며칠 동안 묵어가는데, 어떻게 회장님이 제일 값싼 방을 요구하십니까?"
그 때 록펠러는 껄껄 웃으면서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자명하지 않소? 내 아들에게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 같은 아버지가 없거든요."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1839~1937)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16세 때 중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나 그는 원래 인색한 사람이었습니다. 55세에 불치병이 걸려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으로 들어갈 때 병원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도 복이 있다.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그런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소녀의 입원이 안 된다 하고 환자 어머니는 제발 입원을 시켜달라고 울부짖으면서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병고에서 회복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그의 자서전에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록펠러는 이때 가슴이 확 트이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 때 부터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베푸는 자선 사업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1년의 시한부 삶에서 빠른 속도로 건강이 회복되어 40여년이 지난 98세까지 살았다. 이렇게 장수하면서 그는 시카고 대학을 설립하고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교육과 의학연구 부분을 중심으로 기부 후원 사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