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먼동이 트면, 아버지는 등에 지게를 얹고 손에는 낫이나 괭이를 쥐었다. 어머니는 무쇠솥에 밥을 지었다.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농기구와 쇠붙이 도구로 사계절 내내 농사를 지어 식생활을 영위했다.
대장간 앞길을 지나 초등학교를 등하교했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다 풀무에서 벌겋게 달군 쇳덩이가 모루 위에 올려 해머와 망치로 맞는 장면을 보았다. 달아오른 쇳덩이가 농기구와 생활 도구로 서서히 변하는 과정이 마냥 신기했다.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어 반용융 상태로 모루에 올려놓고 해머나 장도리로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를 모루 또는 철침(鐵砧)이라 한다. 모루와 풀무는 대장간의 기본 장비이다.
편수가 풀무에서 달군 쇠를 모루에 올려 해머로 내리치면 도편수는 작은 망치를 이곳저곳 두드릴 곳을 지시했다. 그가 들고 있는 작은 망치로 토닥토닥 두드리면 도끼, 괭이, 쇠스랑, 작두, 자귀, 송곳, 낫, 끌 같은 것들이 서서히 모양을 잡아갔다. 이때 쾅쾅 치는 편수의 해머 소리와 도편수가 쥔 망치 소리가 또르르 소리를 내어 리듬과 박자가 척척 맞아떨어지는데, 이 소리가 시끄럽다거나 거슬린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듣고 대장간을 똔땡깡이라 했다. 우리는 도편수의 아들 별명을 ‘똔땡깡’이라 불렀다. 그 아이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대장간 주인 도편수는 아버지와 동성동본으로 항렬은 같으나 나이가 두 살 위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낫이나 괭이, 작두날이 무디어지거나 부러지면 아버지는 이를 핑계로 장터에 갔다. 시골에는 5일마다 장이 열렸고 이날은 대장간 일도 분주해졌다. 아버지는 가져간 농기구를 맡겨놓고 주막을 찾았다. 친척을 비롯하여 오가며 알게 된 지인들과 막걸릿잔을 나누는 것이 삶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농기구를 벼리는 것은 일석이조의 핑계였다.
용도에 따라 농기구의 강도가 달라져야 일의 능률이 오른다. 나무를 자를 때 낫의 강도가 높으면 날이 부러지고, 벼나 보리를 벨 낫은 강도가 높아야 오래 쓸 수 있다. 딸만 둘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연세가 많도록 소를 치고 농사일을 했다. 소여물통 볏짚을 자르는데 작두날이 연해 자주 숫돌에 갈기가 번거로웠다. 아버지가 작두날을 강도 높게 벼리어 드렸다. 여물용 볏짚을 자르다가 외할머니 검지 한 마디가 잘려버렸다. 시골이라 의원이 없었다. 손마디가 잘린 곳에 된장을 바르고 헌 옷을 찢어 동여매는 것이 치료였다. 6·25 전쟁 중이라 마침 가까이에 야전 육군병원이 있었다. 다행히 소독약을 얻어 바르고 치료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공연히 작두날의 강도를 높여 사고가 났다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장에 가기만 하면 만취하여 횡설수설하는 아버지가 보기 싫어 작두날을 핑계로 주눅 들게 했다. 장날 외출금지령을 내렸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아버지는 낫이나 작두의 날을 슬며시 돌에 문질러 무디게 한 후 장에 가서는 대장간에 들렸다가 거나하게 취해서 귀가했다.
형님의 실수로 대대로 이어오던 집과 전답, 과수를 팔아 빚을 갚고 부산으로 부모님을 모셔왔다. 부모님은 고향을 잃은 마음이 아파도 자식이 한 일리라 내색하지 않았다. 그 후 딱히 볼 일이 없어도 아버지는 자주 고향을 찾아갔다. 주막에 들러 마을 사람들에게 술대접하는 것을 즐겼으나 늘 외상이었다. 내가 외상값을 갚으러 고향에 가면 효자라는 칭찬을 받긴 해도 마음은 아렸다.
아버지는 뇌졸중 증세로 오른쪽 수족을 쓰지 못했다. 어눌하고 정신이 흐릿하고 치매 증상도 있었다. 농사는 어릴 때부터 평생을 반복한 일이라 정신은 흐려도 절기를 꿰뚫었다. 못자리는 만들었는지 겡자리는 많이 넣었는지도 물었다. “예! 예!” 대답은 선선히 했지만 마음은 아팟다. 모루에 관한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고래 주둥이 같은 것이 있고, 등이 편평하고 네모구멍과 손가락이 들어갈 구멍뿐이다. 이 위에서 온갖 쇠 연장이 다 만들어진다. 총 말고는 다 만드는 편수의 제주가 용타.’ 가끔 이런 넋두리를 하시다가 홀연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부산 인근 언양읍에 대장간이 있어 장날에는 작업한다고 들었다. 2일과 7일에 장이 열린다. 어느 장날을 택해 큰아들 텃밭에 쓸 농구를 벼리러 갈 작정이다. 벌겋게 달구어진 쇳덩이가 대장장이의 망치를 두들겨 맞고 농기구로 변신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 아버지가 모루를 두고두고 말씀하셨던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고향에서 오랜 교분을 가졌던 친구와 친척들도 먼 나라로 가고 아무도 없으니 농구만 손봐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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