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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와 복제의 카타르시스 – 미술품 절도를 다룬 영화들
케이퍼 무비 혹은 하이스트 무비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훔치고 터는 소재를 가진 이 영화들은 일단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훔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영화의 한 장르인데요. 실제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것을 대리 체험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더욱 환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케이퍼 무비에서 훔치는 대상은 아주 다양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단순한 은행털이부터 각종 보석과 현금부터 때로는 어딘가 감금되어 있는 사람을 꺼내거나 구출하는 일까지 모두 케이퍼 무비의 좋은 소재들이지요. 그중에서 이번엔 미술품이 그 대상인 작품들을 골라 봤습니다. 여러 대상 중 특히 미술품들은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치 보석처럼 가짜와 바꿔치기 하거나 모작을 만들어내는 등의 다양한 불 거리와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미술 관련 서적에서나 보아오던 미술 작품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어 등장하는 순간의 즐거움은 다른 케이퍼 무비의 즐거움 그 이상이 되는 순간이겠네요.
글ㅣ 비됴알바 구성ㅣ 네이버 영화
[백만달러의 사랑] How To Steal A Million
- 윌리엄 와일러 감독, 피터 오툴 / 오드리 헵번 주연, 1966년 作
재능은 탁월하지만, 유명 화가의 그림을 위조하여 경매 시장에 팔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왠지 위태하여 못마땅한 딸. 그런 아버지가 박물관에 위조된 조각상을 기증하게 되고 보험사의 확인 작업이 진행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위작들을 훔치러 온 도둑과 작당하여 그 조각상을 다시 박물관에서 훔쳐올 계획을 세운다는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인 [백만달러의 사랑]입니다. 당대 최고의 감독과 배우가 만난 이 작품은 단순히 케이퍼 무비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의도치 않은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가지고 있으며 미술품 자체는 어쩌면 사건을 만들고 소동을 일으키는 도구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작을 즐겨 그리는 화가가 경매장에 지속적으로 그림을 공급하는 것이나 집에 들어온 도둑과 조각상을 다시 훔쳐내어 보험회사로부터의 위기를 탈출한다는 신선한 발상까지 있습니다. 여기에 도둑과의 러브 라인은 덤인 셈이죠. 이어질 수 없는 남녀가 서로 엮인다는 것은 이후 개봉한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와 같은 작품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군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 The Thomas Crown Affair
- 존 맥티어난 감독, 피어스 브로스넌 / 르네 루소 주연, 1999년 作
남부러울 것 없는 백만장자. 그는 무료한 생활의 활력소처럼 미술품 절도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바로 영화 속 토마스 크라운인데요. 피어스 브로스넌이 맡은 캐릭터입니다.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뭔가 스릴을 느끼기 위해 마치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처럼 미술품을 수집합니다. 그런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보험수사관이 바로 르네 루소가 맡은 캐서린입니다. 자, 앞선 [백만달러의 사랑]처럼 여기엔 남녀가 등장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 얽힐 수 없는, 혹은 얽히면 되지 않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의심과 사랑의 밀당을 보여 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이 [007 제20탄 - 어나더 데이] 이미지로 인해 상당한 영화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의 기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릴을 위해 미술품을 훔치는 백만장자를 잡아야 하지만 그만 사랑에 빠져 버리는 여자. 그리고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만 역시 시험에 들게 하는 백만장자. 마지막까지 어떤 결말이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들었던 작품인데요. 실은 노만 주이슨이 감독하고 스티브 맥퀸과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원작이 68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원작에선 미술품을 다루기보단 현금과 은행을 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존 맥티어난 감독의 연출력이 다소 쇠하던 시절에 만들어졌지만 원작만큼이나 매력적인 리메이크로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속에는 갖가지 인상적인 미술 작품이 등장하여 더욱 흥미로운데요. 특히 마네와 모네의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르네 마그리트 작품이 떠오르네요.
[인코그니토] Incognito
- 존 바담 감독, 제이슨 패트릭 / 이렌느 야곱 주연, 1997년 作
영화 [인코그니토]는 모조 전문화가가 주인공인 영화로 당시에는 소재가 참으로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국내의 [인사동 스캔들]과 설정이 비슷하긴 하지만 결말은 다소 다른 작품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어려운 경제생활 여건에 놓인 주인공. 그리고 그를 찾아온 브로커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의뢰하게 되고 뭔가 음모에 휘말리게 됩니다. 여기에 그에게 다가온 여성은 심지어 미술감정가였던 것이죠. 그가 완성한 모작을 모두가 진품이라 판정했을 때 가작이라 판정한 그녀의 실체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왠지 이런 직업에 잘 어울릴 듯한 이렌느 야곱의 모습이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었네요. 이 영화는 스릴러의 기본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 모작을 만드는 과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흥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주로 B급 액션 영화를 찍어온 존 바담 감독의 연출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며 누명을 쓴 주인공이 결국 자신이 그린 그림이 모작이란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도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앞선 소개 작품을 포함해 모두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구성을 지닌 것이 이 장르의 특성인가 봅니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지만 찾아보니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참으로 다양한 작품이 있군요. 워낙 예전에 본 영화라 실제 영화 속에 등장한 작품이 이 작품이 맞는지 확실치는 않군요.
[엔트랩먼트] Entrapment
- 존 아미엘 감독, 숀 코너리 /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 1999년 作
유명 미술품만을 훔치는 전설의 대도로 숀 코너리가 등장하는 [엔트랩먼트]입니다. 지금은 연기 생활에서 은퇴하여 참으로 아쉽지요. 워낙 신출귀몰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는 까닭에 애꿎은 후배 대도인 캐서린 제타 존스가 그에게 접근합니다. 보험 담당관의 의뢰로 말이죠. 이런 조합도 새롭습니다. 극장의 전설과 새로운 대도의 만남에다 알 수 없는 남녀의 조합이 말이죠. 당시 캐서린 제타 존스의 날렵한 연습 장면만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술품이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엔딩에 이르러서는 지금 기획의 포스팅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렘브란트의 작품이 거명되기도 하지요. 미술품에서 점차 판이 커지는 듯한 인상의 작품이라 다소 아쉽습니다. [인코그니토]와 마찬가지로 렘브란트의 작품이 등장하는데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밧세바'란 작품이라고 하네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와 유사한 점이 있는데 두 남자 주인공의 성격이나 생활 환경이 다소 비슷하고 결국 여성과의 로맨스가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겠지요.
인사동 스캔들
- 박희곤 감독, 김래원 / 엄정화 주연, 2009년 作
자, 이번에도 천재 복원전문가와 미술계의 큰손이 맞붙은 영화 [인사동 스캔들]입니다. 이 작품은 해외 영화에서나 보아 오던 소재의 영화를 국내에 접목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줄 수 있는 작품인데요. 서로 다른 꿍꿍이를 가진 여러 인물이 안견의 벽안도를 놓고 벌이는 한판 승부입니다. 영화에서는 복원 과정이나 경매하는 장면 등 이른바 미술 세계의 모습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주축 인물 두 명 이외에 미술계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것도 큰 재미를 주었습니다. 새로운 매력을 준 것에 비해 흥행에서 조금 아쉬운 결과를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 영화 상영 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안견의 벽안도가 과연 실재하느냐였습니다. 영화 속에선 안견이 안평대군이 왕이 되기를 바라는 꿈을 담아 선물하려고 했던 것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몽유도원도가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작품이라면 그에 대한 응답으로 완성된 작품이 벽안도라는 설정으로 영화 속에서 등장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재하는 그림보다 더욱 영화 같은 설정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셈이죠.
[헤드헌터] Headhunters
- 모튼 틸덤 감독, 니콜라스 코스터 월도 주연, 2011년 作
이 낯선 노르웨이 영화 [헤드헌터]는 결국 국내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했습니다. 북유럽의 영화는 여전히 변방의 영화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이 작품은 장르 영화로서는 손색이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작은 키 때문에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 주인공은 이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가지고 아름다운 아내와 생활하는 남자인데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처럼 무료한 생활을 달래기 위한 방도로 미술품을 훔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자신의 콤플렉스로 기인한 불안감이 지속적인 절도 행각에 빠져들게 한 것 같습니다. 부를 유지해야만 아내가 떠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죠. 토마스 크라운처럼 미술관을 터는 수준은 아니지만 개인의 소장 미술품을 훔치는 정도인데요. 그러다 훔치러 간 집에서 아내의 흔적을 발견하고선 일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온전히 처절한 쫓고 쫓기는 추격 액션 스릴러로 변모하지요. 사실 영화 속에서 특정 미술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따로 설명 드릴만 한 작품은 없네요. 작가 요 네스뵈의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 속에는 줄리언 오피의 '사라, 옷을 벗다'와 뭉크의 '브로치' 등의 작품들이 거론되고 있다고 하네요.
[갬빗] Gambit
- 마이클 호프만 감독, 콜린 퍼스 / 카메론 디아즈 주연, 2012년 作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건초더미, 황혼'을 소재로 모작을 만들어 팔아먹으려는 사기 설계자와 위조 전문 화가 그리고 그림의 행방과 관련된 소문의 여성이 만나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갬빗]은 위조 과정이나 그림에 대해 아주 전문적인 것을 보여 주지 않고 소동극에 가까운 작품인데요. 재벌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미술 감정사까지 속여야 하는 제법 재미있는 사기극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일하던 재벌 가를 속여 그림을 팔 작정이었던 주인공 해리 일당의 작전은 뭔가 어수룩하면서도 마치 영국 영화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드는 작은 소품 같은 작품이었는데요. 워낙 정교한 가로채기와 복제만을 보아왔던 관객들에겐 다소 싱거울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나름 사랑스러운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트랜스] Trance
- 대니 보일 감독, 제임스 맥어보이 / 뱅상 카셀 주연, 2013년 作
영국의 TV 시리즈가 원작으로 대니 보일이 연출하였습니다. 끝내 국내 정식 개봉은 하지 못했지만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영화라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영화 속에서 미술품 절도는 그저 하나의 소재 세팅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미술품 혹은 절도라는 소재보다 최면이란 소재를 활용한 스릴러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역시 도박에 중독된 경매사 주인공이 수집가 일당에 포섭되어 그림을 훔치는 데 성공하지만 그림 틀만 있을 뿐 그림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림을 숨긴 주인공을 최면을 통해 그림의 위치를 되살리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고 나름의 반전을 통해 즐거움을 주는 작품입니다. 제임스 맥어보이나 뱅상 카셀 등의 배우를 보는 맛도 있으며 비록 미개봉작이긴 하나 대니 보일 감독의 연출이 여전히 범상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자칫 스토리가 마구 뒤엉킬 수 있으니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서 보면 더욱 재미있을 영화네요.
[베스트 오퍼] The Best Offer
-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제프리 러쉬 / 짐 스터게스 주연, 2013년 作
[베스트 오퍼]는 기본적으로 그림 절도에 관한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여운으로 따지면 멜로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미술품 감정사를 하면서 자신의 수집 욕구도 채워 나가던 올드만은 어느 날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 집안의 모든 물품을 감정해 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신비로운 그녀에게 끌리는 그지만 광장 공포증이 있는데요. 서로에게 어느 정도 감정을 느끼게 되지만 이야기는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올드만은 자신의 방 중 하나를 모두 초상화로 채운 것을 보여주는데요. 온 벽면을 가득 채운 초상화들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림을 훔치는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마저 훔치는 작품이 되어버린 상당히 서정적인 작품이기도 하지요. 뭔가 고집스럽지만 상당한 교양을 가진 듯한 이미지의 제프리 러쉬가 올드만을 맡았고 짐 스터게스가 그의 절친으로 등장합니다. 곧 개봉을 앞둔 작품.
[모뉴먼츠맨: 세기의작전] The Monuments Men
- 조지 클루니 감독, 조지 클루니 / 맷 데이먼 주연, 2014년 作
다른 작품과는 달리 미술품을 찾으러 가는 영화 [모뉴먼츠맨:세기의 작전]입니다. 실제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상당한 미술광이었던 히틀러가 유럽의 상당수 미술품을 수거하여 보관 혹은 폐기하려던 것을 찾기 위해 결성된 부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 훔치고 위조하는 것은 등장하지 않지요.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국립예술학교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낙방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엔 야수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히틀러의 화풍은 신고전주의라 합격하긴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만약 히틀러가 화가의 삶을 살았다면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히틀러는 특히나 피카소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특히나 그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가장 경멸했다고 전해지네요. 그래서 영화 속에서도 피카소의 그림은 불태워진 걸로 묘사되었나 봅니다.
저 같은 보통의 미술 문외한이 보기엔 이런 류의 영화들이 신선한 재미로 다가옵니다. 교양이랄 것까진 없지만 이렇게 영화 속에서라도 미술품을 만나면 나름의 소양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