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낼까?
기자명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입력 2023.07.13 04:00
뇌의 뉴런이 의식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과학계의 오랜 난제였다. 최근 연구 결과 뇌의 후측 피질이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photo 게티이미지
25년 전 미국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와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 사이에 맺어진 내기가 일단락됐다. ‘뇌는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낼까?’ 이 질문이 코흐와 차머스가 1998년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시작한 내기의 핵심이었다. 당시 코흐는 누군가가 앞으로 25년 내에 뇌에서 특정 의식 신호를 발견할 것이라며 고급 와인을 걸었다. 차머스는 그 반대쪽이었다.
두 학자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2023 의식과학연구협회(ASSC)’ 연례회의에서 국제 공동연구진이 실험한 결과와 함께 ‘그 탐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데 동의했다. 그간의 실험에서 의식 신호가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아 차머스가 승자로 선언된 것이다.
25년 전 내기, 철학자가 이겼다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의식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과학계의 오랜 난제였다. 고대인은 인간의 의식이 심장이나 간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체를 연구한 현대에는 의식이 뇌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드물다. 그렇다면 ‘의식’은 뇌의 어디에서 생성될까? 과학계는 이를 ‘통합 정보 이론(IIT·Integrated Information Theory)’과 ‘전역 작업 공간 이론(GNWT·Global Network Workspace Theory)’이라는 두 가지 가설로 설명한다.
IIT는 사람이 크고 작은 어떠한 경험을 할 때 뇌의 뒤쪽에 위치한 후측 피질을 중심으로 특정한 신경 연결 구조가 활성화되면서 의식이 만들어진다는 이론이다. 햇살 좋은 가을날 공원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볼 때 그 모든 정보를 뇌의 각종 부분이 받아들이면서 나타나는 총체적이고 복잡한 작용이 의식이라면, 이런 정보들을 인과관계로 연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의식이 되는데 그 역할을 후측 피질이 맡는다는 것이다.
GNWT는 어떤 기억이나 행동 정보가 신경연결망(네트워크)을 통해 뇌의 여러 영역으로 보내질 때 마치 전 세계로 방송되는 것처럼 의식이 발생한다는 이론이다. 전달은 경험의 시작과 끝에서 발생하며, 뇌 앞쪽에 있는 전두엽 피질에서 감각신호·기억·생각이 통합될 때만 의식이 만들어져 뇌 전체로 퍼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 뇌 속에 일종의 ‘무대’ 같은 것이 있다고 보고, 어떤 기억이나 행동 등이 무대에 올랐을 때 그것을 의식한다고 본다.
코흐는 두 가설 중 IIT를 지지하는 쪽이고, 차머스는 GNWT를 지지한다. 코흐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함께 인간의 의식을 뇌 신경세포로 접근해온 과학자로,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이 후원한 앨런 뇌과학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다. 차머스는 뉴욕대 철학과 교수로 심리철학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두 사람은 2023년 안에 뇌 신경세포와 의식 생성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모든 정신 활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뇌 신경세포 활동이 있다. 화를 내거나 고통을 느끼거나 경치를 감상하거나 모두 뇌의 특수한 영역들의 활동을 동반한다. 다시 말하면 정신활동과 뇌세포의 활동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이러한 상관이 바로 의식의 신경상관이다.
‘2023 의식과학연구협회(ASSC)’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국제 공동연구진의 실험 결과는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 더 밀접한 부위는 뇌의 후측 피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영국 리즈대, 미국 위스콘신대 등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전 세계 6개의 독립된 실험실에서 동일한 테스트를 시도하고 결과를 동시에 수집한 결과다.
실험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뇌혈관 조영술(TFCA), 수술 전 뇌 표면에 전극을 설치하는 ‘전기 피질법’ 등 세 가지 기술을 사용해 실험 참가자 250명의 뇌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서 연구진은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해당 실험 계획을 밝혔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특정 판단을 내릴 때 뇌의 신호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첫 번째 그룹은 두 장의 사진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아무 작업도 하지 않게 했다. 이후 각 그룹의 뇌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룹에서 참가자들이 사진을 선택하는 동안 뇌의 뒤쪽에서 신경신호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됐다. 반면 뇌의 앞쪽에서는 사진을 본 직후에만 순간적으로 신호가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관측됐다. 연구팀의 실험 데이터와 결과는 논문 사전출판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모두 공개됐다.
결정적 결과 부족, 가설 검증은 현재진행형
실험 결과는 두 이론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다. IIT의 경우 실제로 후측 피질 영역에 정보가 지속적으로 포함돼 있다는 것을 관찰했지만, 이론이 예측한 대로 뇌의 서로 다른 영역 사이에서 지속적인 동기화의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GNWT의 경우엔 전전두엽 피질에서 신호가 발생했지만 예측했던 것처럼 경험의 끝이 아닌 경험의 시작에서만 발견됐다.
세계 과학자 대부분은 이번 실험 결과가 IIT를 더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GNWT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GNWT를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IIT를 채택하기엔 근거가 약하다는 얘기다.
참여 연구원 중 한 명인 루시아 멜로니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신경과학자 또한 “실험 결과는 IIT가 사실이고 GNWT가 사실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는 새로운 발견을 통해 두 이론이 제안한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결정적인 결과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낙관론은 과학계에 남아 있다. 연구자들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뇌 영상 기술과 방법론의 발전이 의식의 신비를 계속 밝혀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두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후속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차머스는 의식에 대한 두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코흐와의 내기는 자신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했다”며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코흐 또한 동물 모델의 뇌에서 두 가설을 테스트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코흐는 또 다른 내기에 대해 “지금보다 두 배로 걸 자신이 있고, 기술 발전으로 앞으로 25년 후엔 의식의 열쇠가 드러나 정말 승패를 가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 나이(1956년생)를 고려했을 때 25년 후면 무리일 수도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관련기사
이준석 "원희룡 ‘내가 뒤집어쓰겠다’라는 것 누군가에게 보여줘"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회원로그인
작성자
작성자
비밀번호
비밀번호
댓글 내용입력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법률에 의해 제재될 수 있습니다. 회원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 작성이 간편합니다.
0 / 400등록
댓글 정렬최신순 추천순 답글순 BEST댓글
인기기사
1
맛있지만 장 건강을 해치는 음식 9
2
이렇게 틀면 ‘전기료 폭탄’... 알뜰한 에어컨 사용법은?
3 80세 해리슨 포드 건강 유지 비결은 이것
4 거대한 산 품은 캠핑의 성지, 덕유산국립공원 덕유대야영장
5 ‘바그너 반란’으로 드러난 러시아군의 난맥상
최신뉴스
문화/생활존 미어샤이머 ‘거대한 환상
런던 통신‘작은 거인’ 넬슨을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유
정치[단독] 박영수 후배 변호사 "영수형, 끈 떨어졌을 때 대장동으로..."
세계"우린 아마존 쇼핑몰이 아냐"…젤렌스키 향한 월리스 英 국방 일침
정치'샤넬 논란'이 보여준 실업급여에 대한 당정의 시각
퀵메뉴PC버전 회사소개 정기구독
© 주간조선. ND소프트
위로
주간조선 사각플로팅
기사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