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저들이 경배하지 않으면, 돌들이 일어나(예수님께) 경배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마치 "뇌가 없는 돌들이 의식이 있어서 예수님을 경배할 것이다"라고 하시는 것 같다. 그 누가 의식은 뇌를 가진 생명체들만의 전유물이라 했던가? 들판에서 자라나는 식물들 중에는 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곤충을 먹이로 하는 식물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식물들은 뇌가 없으니, 기계적으로 곤충이 앉으면, 곤충을 먹이로 한다고 핼 수 있는 걸까?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처럼 작동하지 않고 피지컬 AI처럼 뇌가 있어서 그 뇌로 분별하여 곤충을 식량삼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 식물은 의식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일까?
동전이 없는 현상을 내가 보았을때 나는 "동전이 없다"라는 개념을 직관한다. 내가 동전이 없는 현상을 보고 동전이 없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은 그 현상이 그 개념을 당연화 하기 때문이다. 즉 그 누구라도 동일하게 동전이 없는 개념을 인식하는 것은 그런 현상과 그런 개념은 당연히 직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겨울에 한 날씨를 느끼면서 그 추위의 정도를 주체에 따라 달리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즉, 그것은 누구나 그렇게 인식할 수 밖에 없는 직관이며, 당연이다. 동전이 없고 지폐가 없는 현상이라는 것은 따로 동전 또는 지폐를 인식의 대상에 넣고 동전이 없다. 혹은 지폐가 없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도 없는 것이 당연히 직관되는 것이다. 즉 그것은 동전이 없는 것을 인식할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지폐 또한 인식할 대상에 상관없이 없는 현상에 의하여 없음으로 직관되는 것이다.
동전을 인식의 대상에 넣었을때, 동전이 없는 현상을 인식할 수 있는 뇌가 있는 주체와는 달리, 동전을 인식의 대상에 넣지 않았을때 동전이 없는 현상은 지폐가 인식의 대상이 아닐때 지폐가 없는 현상과 같은 것이며, 그렇게 인식의 대상이 아니면서 그렇게 동전 내지 지폐 그리고 그 어떤것이든지의 없음은 인식할 대상이 누구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인식할 대상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 값이 유지되는, 없음이라는 현상이 스스로 없음의 개념을 내재하고 상대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동일한 직관이 가능하게 그 직관을 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현상을 직관하는 것은 눈으로 보고 뇌로 그 현상을 인식하는 우리(사람이나 동물 등)의 몫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서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없음이란 개념은 당연한 것이며, 주체에 따라 달리 인식되어 질수 없는 직관이다. 즉 아무것도 없는 현상은 직관으로 없음이란 개념을 당연하게 한다. 즉 없음이란 개념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개념이란 언어의 인식이나, 아무것도 없는 현상을 보고 없음이라고 인식하는 판단이 아니라, 없음이란 보지 않고 판단없이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내재하는 것이라서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없음이란 개념은 의식으로서 직관되는 것이다.
없음이란 무언가가 있는 현상에 우리의 사고로 바로 직접 연계되어지는 것은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직관으로 이를 수 있는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없는 현상을 인식하는 없음이란,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내재하는 없음의 스스로의 직관이며,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당연히 없음으로 직관되어 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스스로 없음의 의미를 내재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당연히 직관할 수 밖에 없는, 없음이라는 의식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없음이 스스로 없음이라는 자신을 직관하고 즉,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내재되어 있는 없음이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스스로 없음을 직관하고 없는 자신을 직관하므로 스스로 있다. 비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없는 자신을 직관하는 것은 없음 자신의 예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무아의 관점에서 보면은 나는 없다. 하지만 이 없는 나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나라고 볼 수 없는 내 자신을 흐르는 시간의 지점 지점마다 자신을 인지한다. 변하지 않는 나의 실체는 없다. 나는 내가 순간 순간의 지점에 현상하여 있는 나를 나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내가 아니고 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없는 자신의 나를 직관한다. 내가 내자신을 직관하는 것은 현상하는 내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은 표현되는 나일 뿐, 없는 나 인 나를 직관하면서, 그렇게 없는 나의 표현됨에 나를 인식한다고 착각한다. 이는 마치 없음으로 스스로 있는 신이 나를 창조하면서 표현으로 창조되어진 나의 뿌리가 없음에 근거하기 때문에, 없는 나인 무아의 나를 직관하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란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배제된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없는 현상이 내재하고 있는 없음이라는 개념의 인식에도 스스로 직관의 주체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 내재하는, 없음이란 개념이 있고 그렇게 직관되어지며, 아무것도 없는 현상에서 없음이라는 의식은 스스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