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양준하 201812003
밀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가 ‘독단’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밀은 당시의 사회조직 자체를 독단성을 내재한 무엇으로 보았고, 그것을 경계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적 자유’라 보았던 것 같다. 밀에 따르면 그 사회의 도덕률이란 지배계급의 도덕률이고, 지배계급이 공고한 이상 사람들은 그것이 조금 이상하더라도 도덕률을 따른다. 사람들은 지배권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 같이 그렇게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다수가 지지한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사회 전체에 진리로 통용되는 것을 밀은 거부했다.
그가 대책으로 내 놓은 것이 ‘토론의 중요성’이다. 토론은 일단 어떤 의견이든 나와 다른 생각을 듣고 검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검증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이 틀릴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며 (나름)과학적인 검증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밀은 노동자의 선거참여와 단결권을 지지했다. 기존의 자본가들이 따르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새로운 언어와 말들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정치에 있어서 입장의 다양성은 아직도 민주주의의 주요한 가치로 지목된다. 어떤 이야기가 발화되는가 발화되지 않는가는 큰 차이이다. 누가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여기서 어떤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음을 말할 권리가 생기고, 그 정치적 공간이 생긴다면, 자신의처지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른 다양한 불평등들이 발화되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 된다. 이는 당연히우리가 사는 사회를 한층 더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것이다.
그러나 밀이 경계했던 사회의 독단성은 아직도 유효하며, 토론의 부재는 지금도 심각한 문제이다.국회에서 제대로된 토론이 이뤄진 적이 있었나 의심스럽고, 다른 편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원시적인 감정정치만 남았다. 어찌보면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다수의 의견을 포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당 이외의 선택지는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에 선거가 늘 ‘최악 아니면 차악’이라는 불만족스런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이 양당은 서로의 비난을 통해 기형적으로 서로에게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적대적 공존 관계에선 국민적 여론에 휩쓸려 하는 일회적인 합의만 있을뿐 토론과 설득을 통한 건강한 의견개진이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에겐 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더 다양한 창구가 필요한데, 현재의 선거제도는 이를 막고 있다. 양당 이외에 나의 목소리를 더 잘 반영해줄 수 있는 정당을 지지하고, 그 정당이 실질적 정치지형인 의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있게 하는, 더 넓은 정치적 자유가 절실한 때이다.
한편 밀은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지 않고, 자유에도 제한이 (아주 조심스럽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가 자유를 제한할 수있는 단 하나의 원칙으로 제시한 것은 “자기 보호를 위한 경우”다. 그러니까 어떤 이의 자유가 누군가에게 ‘해’가 된다면 제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대로 수긍하기보단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밀의 저 원칙을 보며 한때 화제가 되었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동할 자유-비장애인들에겐 당연한 권리를 보장해달라며 투쟁하고 있다. 지하철을 몇 분 간 정지하게 만드는 그들의 시위방식에 일각에서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시위활동을 하는 것이라 하고, 그렇기에 권력은 그들을 ‘불법시위’라 낙인찍고 압박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하라며 시작한 시위를 다시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이름으로 훼방하고 있다. 이때 자유는 권력의 무기가 된다. 그러니까 저 단순한 원칙엔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질문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유에도 계급이 있는가?” 어떤 이의 자유는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음에도 관심 가지지 않는 반면, 어떤 이의 자유는 단지 몇 분의 멈춤만으로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 되는가? 자유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며, ‘누구’의 자유냐에 따라서 ‘어떤’ 자유냐에 따라서 구체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특히 권력은 그 중 특정한 자유만을 취사선택해서 자유마저도 차별한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 내에선 자유라는 개념이 늘 차별적으로 개진된다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부자유’를 토대로 쌓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보다 근본적인 해방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밀의 자유론은 보완되어야 한다. 밀은 단순히 자유의 확대를 중요하게 보지만, 정작 자유를 둘러싼 다양한 불평등은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자유마저도 계층화되어 있으며,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권력 역시 한쪽으로 집중돼 있다. 밀이 이야기하는 자유에 한발짝 더 나아가려면 이를 함께 사유해야 할 것이다.
질문.
- 밀은 전장연의 사례처럼 자유와 자유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았을까?
- 밀은 전장연 시위를 타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았을까, 자유를 향한 정당한 시민투쟁으로 보았을까?
- 밀의 자유 개념은 자유를 하나의 층위로만 생각하는가, 아니면 여려 개의 층위로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