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추리소설로 베스트셀러의 쾌거를 이룬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1966년 전남에서 태어났다. 기독간호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재직했고 2007년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하며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2009년에 발표한 <내 심장을 쏴라>는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고,
2011년에 발표한 <7년의 밤>과
함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28>이라는 작품도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상처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과 전직 간호사로서 현장에서 느꼈던 상처에 대한 경험이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면서
책의 제목이 ‘종의 기원’인 것은 사이코패스라는 별종의 기원이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진화심리학 책을 탐독했다는 작가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어떤 것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줄거리
26 살의 유진은 코 끝을 스치는 피비린내에 잠이
깬다. 그는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일명 ‘포식자’(프레데터, Predator)이다.
낯선 여자와 자기 어머니를 면도칼로 살해한 유진이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잠에서 깨어나 온 몸이 피범벅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하며
사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2층 자신의 방에서 나와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죽어있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지난 밤부터 자신의 행적을 기억해 내고 정황상
증거를 종합할수록 범인이 자신임이 분명했다. 유진은 서둘러 현장을 정리하고 은폐한다.
유진이 사이코패스 기질을 보인 것은 어렸을 때부터였다. 엄마 혜원이
우연히 발견한 유진의 낙서 같은 그림에는 활짝 펼친 우산 꼭지에 여자아이의 머리가 꽂혀 있었다. 정신과
의사인 유진의 이모는 유진에게 포식자의 성향을 억제시키기 위해 그에게 정신과 약을 처방한다.
수영선수의 꿈을 가지고 있던 유진은 그 약을 먹고 온몸이 둔감해짐을 느끼고 투약을 거부하지만 엄마와 이모는 그것이
간질 약이라고 속이며 약을 먹지 않으면 수영을 못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그러나 약을 먹지 않으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남을 알아버린 유진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약을 먹지 않았다가 발작을 일으켜 수영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
약을 먹는 것은 자신이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엄마의 목적에 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유진은 가끔씩 약을 먹지 않으며 자신 안에서 나타나는 사이코패스 기질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밤마다
집을 나가 홀로 걷는 여성을 뒤쫓아 겁을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그저 간질의 발작전조증세(개병)라 여기며 반복하던 중 문제가 발생한다.
개병이 도져 단순히 겁을 주기는 했어도 그 동안 ‘선’을 잘 지켜왔는데, 머리 속에서 상상하던 ‘살인’을 현실에서 저질러버린 것이다.
유진의 뒤를 쫓던 엄마가 그 살인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그로 인한 실랑이 과정에서 유진은
어머니마저 살해하면서 ‘악’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망각’함으로써
현실을 도피하려는 심리로 잠(수면)에 빠진 것이다.
유진이 어렸을 때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적이 있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바닷가 마을에 갔을 때, 형과 게임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형을 바다 속으로 밀어버리고, 형을 구하려다 아버지마저 잃었던 적이 있다.
어머니의 교통사고로 알게 되어 현재 어머니의 양아들이 된 해진은 유진의 범죄 행위에 대한 전말을 알고
자수를 권하자 유진은 해진마저 죽인다. 결국 해진이 유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유진은 배를 타고 도피하게
된다.
읽고나서
소설은 380 페이지가 넘지만, 유진이 눈을 뜬 아침부터 겨우 3일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건 이후 시간의 순서대로 이어지는 유진의 시선과 사건 발생일부터 역순으로 그려지는 어머니의 일기장이 어느
순간 만날 때까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의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P380)
절대악으로 규정되는 사이코패스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에필로그에서 몸을 숨겼던 유진이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굉장히 시사적인 부분으로 우리 사회에 암암리에 숨겨져 있을 그들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작가가 말한 예방주사란 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여기에 옮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인데, 소설 중간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라는. 그게 이 소설의 핵심이죠. 사이코패스
테스트라는 게 있어요. 40점 만점에 30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보는데, 세계 인구의 2~5%가 사이코패스라고 해요. 나머지 95~98%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0~30점 사이에 있는 것이죠. 공감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숙고하지 않고, 무책임하고, 자기합리화가 심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우리도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 책이 예방주사였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사이코패스 성향은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니, 그들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안의 악을 억누르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그들의 악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각성하자는 거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