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임화선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았다
세상을 통째로 삼킨 입 속으로 기어들었다
산이 있고
물이 있고
골짜기에는 추억의 바위가 촘촘히 박혀 있다
바위에 숨어 사는 해삼, 소라
가재는 물때에 찌들린 삶을 말리고
PC방에서 메기는 물고기 떼와 당구를 친다
날을 세운 칼날
노도에도 끄덕없는
바다 속의 집
천년을 늙어도 꾸미지 않는 신비
그 집에는 닉네임이 살고 있다
뻘구덕이 없다
얽힌 전선, 광케이블도
고약한 냄새도 소금물로 담금질한
소독된 입은
여전히 꾹 다물고 있다
어머니
임화선
흰 접시 꽃씨를 받는다
아파트에도
친정 동네에도
빈 땅만 보면 심는다고
자궁에 생긴 물혹을 삭인다는
민간요법
흰 접시꽃 뿌리를 살린다
명절에
아들이 선물한 구두 티켓으로
구입한
값비싼 빨간 단화
진 흙탕물에 목이 잠긴다
흰 접시꽃 뿌리 번지듯
딸부자 어머니
하얀 접시꽃
감척을 기다리는 어선
임화선
너는 밧줄에 묶여 수의를 걸치고 흐느적거리고 있다 바다는 자신의 몫을 챙기고 안목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경계선은 목을 조여온다 쉴새없이 파도는 밧줄을 난도질하고 있다 자갈치아지매의 말라버린 눈물은 패선의 몰골로 버티고 서 있다 노여움을 삭히며 바다는 침묵하고 파도는 바다 한 곳의 검은 물체를 삼키며 딸꾹질하고 있다 벌겋게 달아오른 일출은 새천년의 벽두를 벗기며 서슬 퍼런 파도는 폐곡선을 그리고 있다
거울 앞에서
임화선
역사 속에
묻힌
파란 눈을 가진
프란체스카의 유물 중에서
손때 묻은 참빗
거울 앞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장마
임화선
전화를 끊자 숨이 멎었다
하늘은 노란색으로 변했다
이내 골방에서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크게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도가 거세게 밀려왔다
유년의 바다 뿌연 안개에 휩싸인
철조망은 생과 사를 조율하고 있다
마른하늘에 무지개빛 천둥 번개가
바위를 때리고
오두막에는 흰 쌀밥을 먹던 고양이가 울었다
꿈이다
예감은 그대로 맞았다
비는 소나기가 되어 아스팔트에 강물처럼 번졌다
나는 그 강가에 서 있다
장마는 차라리 바람이 되어
내 모자를 강물에 날려 보냈다
추천사
임화선 씨의 〈바다) 외 4편을 추천한다.
“날을 세운 칼날/노도에도 끄떡없는/바닷속의 집/천년을 늙어도 꾸미지 않는 신
비/그 집에는 닉네임이 살고 있었다"
기억은 시간과 공간에 있어 연속성이 있고 철저히 인과 식으로 연결될 터, 이 인과성의 필연은 기억이 과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再現한다는 데 문학 쪽에서는 도리어 기억의 기능을 경시하지만 상상력은 인과성의 법칙을 초월한다는 데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할 것이다.
심사위원 : 홍윤기•정광수•오용수
• 당선 소감
오늘 아침 눈을 뜨니 가을 하늘은 맑고 깨끗하다.
가을은 성큼 내 곁에 다가왔다,
습관처럼 써 오던 습작 시 한 편이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뜻밖에 당선 소식을 듣고 보니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숙한 글을 뽑아 주신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톡톡 튀는 언어와 정서를 바탕으로 철학이 있는 미학의 시를 써 달라는 채찍이다.
희미한 줄무늬 점선은 장날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사다 준 노랑 치마, 탱자나무는
노랑 치마가 본 최초의 가시나무다.
미숙한 글이기에 더 소중했던 시어는 당선 소감으로 쓴다.
한 편의 시를 짓는 것은 고독한 작업이다,
졸작의 시 한 편이라도 쓸 수 있어서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저를 도와주신 모든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한 지붕 아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남편과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주소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1동 529번지 도시광안APT. 104동 804호
전화 : 051-958-8137, 011-593-9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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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발굴 추천작품 -시/임화선 •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