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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듣기 전에 우리 짧은 우리 간증 두 분이 하시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저희가 9명이 기도 컨퍼런스를 다녀왔는데 그중에 우리 두 분 박성희 집사님하고 김혜진 집사님 우리 순서대로 나오셔서 컨퍼런스 간증해 주시겠습니다. 박성희 집사님 먼저 앞으로 나오셔서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작 구역 박성희입니다. 제가 이번 기독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유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는 이 말씀을 회복하고 싶어서 참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랑하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인혀주시고 하나님 자녀라는 축복의 자리로 저를 불러주셨는데, 언제부턴가 영적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인본적이고 육적인 모습에 길들여지고 황폐하게 굳은 심령으로 변화된 나를 보면서 애통해하면서도 교만하게 그냥 거절, 어떤 결단도 하지 못하고 낙태하고 게으른 자의 종교 생활을 제가 하면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께서 기도 컨퍼런스 강구를 하셨고 듣는 순간 2박 3일 동안 세상과 나를 분리시켜야겠다. 예배 속으로 훈련 속으로 나를 강제적으로 밀어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미리 여름 휴가를 신청했습니다. 대전 한빛교회에 도착하여 스케줄을 보니 새벽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식사 시간 외에는 전혀 여유가 없는 찬양 말씀 기도로 넘쳤습니다. 생전 처음 접하는 스케줄에 죽었다는 생각과 과연 내가 다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잠시 둘째 날 말씀 듣던 중에 신기하게도 제 안에서 알 수 없는 힘이 생겨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강단에서 열정적으로 선포하시는 목사님 말씀과 찬양과 기도에 더욱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도로 세계를 변화시켜라 제목의 강의가 총 50강인데 크게 5가지 주제로 나누면 첫 번째가 기도의 원리, 기도는 무엇인가, 기도하는 이유 등등이 있었고, 두 번째가 기도의 응답, 기도는 응답이 먼저 있다고 하셨고요. 세 번째가 기도의 방법, 새벽 기도, 통성기도, 여러 가지 기도에 대한 풀이를 해주셨습니다. 네 번째가 기도의 영적 돌파, 기도의 진영을 돌파하라, 영적 장애물을 돌파하라, 기도의 임계점을 돌파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섯 번째가 기도와 영적 성장,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은혜 가운데 36강 말씀 영적 장애물을 돌파하라는 말씀이 저의 본성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장애물을 돌파라는 내용. 첫 번째가 육신이 장애물이라고 하셨어요. 육신은 타락했고 악한 본성은 기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판단하지 말고 규칙을 먼저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가 사단이 장애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단 이기는 방법은 성령 충만함밖에 없다고 하셨고, 예수님도 40일 금식 기도하실 때 사단이 시험하셨고 사단은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기도를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유람선이 아니고 전함이라고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가 주변 환경이 장애물이다. 에서는 주변의 환경은 늘 기도를 못하게 한다, 주변 환경의 장애물을 기도로 이겨야 한다, 싸워서 이겨야 한다, 거룩한 생활이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과 돌파해야 된다는 단어가 제 본성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육신, 사단 주변 환경의 장애물을 돌파하여 오직 예배, 오직 기도로 거듭나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가장 먼저 고백한 것이 25년도 기독 컨퍼런스에도 꼭 참석하여서 1년에 한 번이라도 나를 훈련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은혜받는 것도 크지만 보면서 느낀 신선한 감동도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대전 한빛교회가 도착해보니 감리교단이더라고요. 교단도 교회도 다른데 목사님들이 서로 소통하며 은혜의 자리로 성도들을 인도하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기존에 제가 알던 교회는 본교회 말씀에만 집중하라는 방향이었거든요.
두 번째가 기도 컨퍼런스에 참석한 인원이 5천 명이나 되는데, 이 어마어마한 인원의 숫자를 대한 한빛교회 교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차량 인도, 식사, 주차 안내까지 모두 직접 감사함으로 감당하고 섬기는 모습에 정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목사님과 교역자, 성도님들이 하나 되어 섬기는 모습에 참석자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운전으로 수고해 주신 우리 목사님과 성도들, 필요한 것들을 세밀히 살펴주시고 챙겨주시는 사모님께 이 자리를 비로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의지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 삶의 주인 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이자 김희진입니다. 저는 솔직하게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오지 못하고 2016년 목장교회에 다니다가 긴 방학 기간을 거치고 작년 겨울부터 다시 목장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교회에 나오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기도에 대한 부담감을 주시고 늘 기도의 자리에 있기를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여러모로 마지막 때라고들 말씀들을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 엘리야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사람들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참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학교에서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 믿음이 약하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 늘 넘어지지만 다시 한 번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길 소망하는 바울에게 무릎 꿇지 않기를 결단하는 많은 성도님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뜨겁게 부르짖고 두 팔을 벌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넘어질지라도 다시 한 번 결단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도학교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일이라 배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뜻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하여 또한 목장 교회 성도님을 통하여 이루어 가시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수고하신 우리 목사님, 가족분들과 기도의 동력자로 약속하신 우리 집사님들께 감사드리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간증을 너무 부드럽게 하셔서 설교가 귀에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고 우리 교회에서 우리가 50일 기도 학교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컨퍼런스에 모여서 같이 참석해서 큰 규모로 예배하는 것도 또 다른 강력한 은혜들이 있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함께 가서 참석하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제가 기도 컨퍼런스 중에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제목과 내용을 결정하고 와서 이렇게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매년마다 은혜가 좀 달라요. 저는 올해 이 부분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번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마음은 회개해야 되는 거예요. 회개 회개 기도는 하지 못했지만 회개에 대한 마음은 많이 주셨어요. 그래서 함께 나누고 또 기도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두 사람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의 기도이고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의롭다. 한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세례의 기도였어요. 두 사람의 기도를 간단하게 비교하면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했고 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죄를 회개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세리의 기도 즉 회개의 기도라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과 저는 다 모두 다 바리새인이에요.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도 의로운 척하고 기도하기 때문인 거예요. 세리는 죄를 인정하고 눈물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했다면 바리새인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척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고 보면 굳이 여러분과 저를 나눈다면 우리는 세리 쪽보다는 바리새인 쪽에 더 가까울 거예요. 왜냐하면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척 예배하고 신앙생활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 앞에서는 죄가 감춰질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춰질 수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과 저의 우리의 잘못이 뭐냐 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죄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워낙 죄를 감추고 일상의 삶을 사는 데 익숙해져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죄를 감추고 예배하고 섬기고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오늘은 회개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하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회개의 기도가 왜 중요하냐 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 시급한 기도를 찾아라고 하면 회개의 기도가 가장 시급한 기도예요. 왜냐하면 죄의 결과가 영적인 사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죄의 삯은 사망이오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적인 사망을 가져와요. 죄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습니다. 회개 기도가 끊어진 죄로 인해서 끊어진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키는 기도가 회개 기도입니다.
여러분 사울과 다윗이 똑같이 죄를 지었어요. 사울과 다윗의 큰 차이가 있어요. 회개입니다. 사울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죄를 짓고 회개했어요. 사울은 자신의 죄를 지목하는 선지자들 앞에서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자기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 앞에서 죄를 회개했습니다.
다윗이 회개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사울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진 거예요. 다윗도 하나님이 세웠고, 사울도 하나님이 세웠어요. 근데 사울은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그래서 영적인 사망을 가져왔다면 다윗은 회개했기 때문에 영적인 사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죄가 얼마나 회개하지 않으니 얼마나 큰 위기를 내 인생에 몰고 오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영적인 사망 영원히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절망이 영적인 사망인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돈을 잃어버리는 것, 육체가 잃은 것을 가장 큰 영적인 사망이라고 여긴다면 문제라고 여긴다면 아직 우리의 믿음은 한참 모자란 믿음이에요. 영적인 단절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인 겁니다. 영적인 사망은 영원히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가장 큰 절망입니다.
한국교회 앞에 큰 위기가 왔어요. 여러분 엄청난 위기가 왔어요. 구미신학교하고 또 제가 운영하는 교사 교육원 전단지를 매년 이렇게 만들어서 매 학기마다 이렇게 구미에 김천까지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이렇게 배부를 해요. 저는 이렇게 형곡동을 맡았어요. 자료상으로는 30개 정도 교회가 형곡동에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돌아보니까 한 40개 정도가 되더라고 이런 말이 좀 죄송한 말이지만 어떻든 교회를 방문했을 때 목회자가 그 자리에 있는 교회는 거의 없었고, 한눈에 봐도 한눈에 봐도 관리가 안 되고 있는 교회들이 또 너무 많았어요.
물론 청소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고도 예배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다는 우리가 쉽게 눈에 보이잖아요. 40개가 되는 교회들 중에 정말 몇 개가 빼고는 다 그랬어요. 저는 위기다 위기라고 많은 말을 들었지만 지난 목요일 정말 위기를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 한국교회 위기가 오니까 목회자와 성도들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기 시작해서 하나님 교회가 능력을 회복하게 해 주십시오. 은사를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러나 지금 정말 한국교회에 필요한 기도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은사를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회개의 기도인 거예요. 우리는 교회가 능력을 받아야 교회가 회복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역사상 교회는 회개할 때 회복이 되었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교회에 주셨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구하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교회나 남의 교회나 능력이나 교회의 크기를 구할 때가 아니라 회개해야 될 때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회복이든 교회의 회복이든 능력을 얻어야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야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한국교회는 회개할 때 큰 회복의 역사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어요. 한국교회가 회개할 때 능력을 받았고 회개할 때 교회가 부흥했고 회개할 때 교회 가운데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1907년 산정현교회에서 일어난 평양 대부흥 운동도 길선주 장로 나중에 목회자가 되죠. 회개로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회개가 교회를 부흥케 하고 회개가 교회의 능력을 머물게 했고, 회개가 도시를 변화시켰고 회개가 인재를 만들었어요.
평양 대북 운동 때 만들어진 회개한 많은 성도들 중에 신학교를 가게 되고 그렇게 신학교를 간 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에 우리나라를 이끌어온 영적 리더가 다 됐어요.
회개할 때 인재도 만들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에 인재가 없어요. 이제 목회자를 찾으려고 해도 찾기도 어려워요. 성도도 마찬가지예요. 그 옛날에 설교하던 장로님들. 그 옛날에 교육자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이 부서를 다 운영하던 분들이 지금은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정말 어려워요. 이 모든 결과의 원인에는 회개 기도하지 않으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능력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 기도를 왜 해야 하냐 하면 의인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는 없다 한 사람도 없다.
이 말은 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의로운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할 때가 종종 있잖아요.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산다. 그게 거짓말이에요. 세상에 법 없이 살 사람은 없어요. 그건 환상이고 거짓말입니다. 때로는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 저 사람은 정말 너무 착한 사람이에요. 거짓말입니다. 착각인 거예요. 착한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 우리 모두는 다 회개해야 될 죄인이지 법 없이도 살 사람이거나 한없이 착한 사람은 결코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교회나 성도들이 회개하지 않을까요? 죄를 모르기 때문인 거죠. 가장 치명적인 것은 죄를 짓고도 이것이 죄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예요. 이게 죄라고 느껴져야 우리가 회개 기도할 거 아니에요. 내가 지금 우리 가정에서 내가 지금 우리 교회에서 내가 직장에서 나의 삶에서 하는 이 말과 이 행동들이 최소한 죄라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회개 기도할 거 아니에요.
문제는 죄라는 것을 몰라요. 그래서 회개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왜 기도를 해야 되냐 기도는 죄를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의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기도는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만들어요. 그래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보이지 않고 죄가 보이지 않으니까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하는데 제가 느껴지지 않는다. 좀 정상적이지 않은 기도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날마다 기도하는데 내 죄가 보이지 않는다. 이거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는데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죄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바리새인의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정상적이라면 정상적이라면 기도의 자리에 있으면 제가 떠올라야 하고 예배를 드리면 죄가 생각나야 되고 말씀을 드리면 죄가 조목조목조목 다 기억돼야 정상인 거예요.
기도하면 죄가 느껴집니다. 교만이 좀 문제예요. 오늘 새벽도 말씀드렸지만 교만은 죄를 가볍게 보게 만들어요.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교회도 목회자들도 성도들도 교만해졌어요. 제 생각엔 한국이 되게 잘 살잖아요. 잘 사는 것과 교만은 뗄 수 없어요. 나라가 발전하는 것과 교만은 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가진 돈이 우리를 교만하게 했거나 아니면 공부를 많이 한 학력이 나를 교만하게 했거나 어떻든 우리나라와 이 땅의 현실은 여러분과 제가 교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이 교만이 죄를 가볍게 보게 만들고 죄를 가볍게 여기면 회개할 이유를 못 찾는 거예요. 죄가 가볍게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가 회개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저는 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 번째로 회개 기도를 왜 해야 하냐 하면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7절과 8절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으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나 주님의 기쁨 되길 원합니다라고 찬양하잖아요. 나의 삶이 나의 예배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기를 우리가 소망하잖아요. 그런데 죄를 가지고는 우리의 예배도 우리의 찬양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고, 회개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늘 기도해요. 하나님 하늘 문을 열어주셔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이 기도를 수없이 했잖아요. 근데 그 하늘 문은 여러분이 그렇게 열고 싶어 하는 그 하늘 문은 우리가 회개할 때 열리는 문이지 교만할 때 열리는 문이 아닌 거예요.
여러분 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 은혜가 없을까요? 회개하지 않아서 은혜가 없어요. 회개하면 어떤 자리에서도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 은혜를 주셔요. 회개하지 않아서 은혜가 없는 것이지, 은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은혜가 없을까요? 꼭 은혜가 없다고 여기는 분이 있다면 여러분 그중에 은혜받는 성도들이 있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바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회개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말씀의 역사도 회개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우리는 능력을 구하기 전에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능력을 받아야 교회를 더 세울 수 있고 더 건강하게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을 많이 줘야 내가 물질로 교회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세상의 지위가 높아져야 교회를 더 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진짜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회개한 사람인 거예요.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이 교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고, 교회 부흥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능력보다 더 필요한 건 회개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능력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회개 기도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왜 회개 기도를 해야 되냐 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자라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해요. 죄가 정말 너무너무 작아요. 근데 이 죄가 그냥 지워질까요? 안 지워져요 여러분 아무리 작은 죄도 여러분과 제 생각에 과연 이게 죄일까라고 생각하는 것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아요.
작은 죄라도 회개해야 용서를 받습니다. 회개 외에는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문제가 뭐냐 하면 용서받지 못한 죄, 회개하지 못한 죄는 자란다는 거예요. 죄가 점점 더 커져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죄가 깨달아지는 순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회개 기도를 해야 되는 거예요.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자라고 어느 순간 그 죄가 여러분의 육체와 영혼을 다 잠식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입니다. 우리 같이 읽습니다. 시작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가 자라서 사망을 낳는다고 합니다. 죄가 왜 문제냐 하면 죄의 끝에는 사망이 있어요. 이걸 이제 여러 번역본으로 보면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는다. 회개하지 않는 죄는 점점 커진다. 이런 의미가 이 성경 구절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회개하지 않는 죄로 인해서 치명적인 손상을 교회와 나 자신이 입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다윗의 죄가 점점 자랐어요.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충성스러운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는 것에서 죄가 그치지 않고 우리아를 전장 더 깊은 곳에 보내서 그를 적들의 손에 의해서 죽게 만듭니다.
죄가 자란 거예요. 죄가 커져간 거예요. 사무엘하 11장 15절을 표준 세번으로 보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있었다. 의인은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의도적으로 전장의 상황을 조작해서 우리 아가 전투하다가 죽은 것처럼 위장하라는 거예요. 회개하지 않는 다윗의 죄가 자란 겁니다.
성경에 많은 죄가 등장합니다. 아마 다윗의 이 죄는 아마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죄예요. 아담과 하와의 죄가 가장 크죠. 원죄를 우리에게 가져왔으니까 그 외에 다른 큰 죄들도 많지만 정말 사악하고 정말 죄질이 나쁜 죄를 찾으려고 하면 다윗의 이 죄예요. 이 죄 다 가진 왕이 있잖아요. 이렇게 충성스러운 이 우리 아이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이 정말 얼마나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깨닫게 돼요. 다윗의 충성과 우리아의 악함이 계속 대조돼요. 따지고 보면 다윗은 충성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근데도 우리 아는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을 합니다. 근데 그 신화를 전쟁의 상황을 그것도 조작해서 죽게 만들어요. 왜냐하면 죄가 자랐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처는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거예요. 죄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대응은 죄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거예요.
우리가 왜 회개해야 되느냐 회개하지 않는 죄는 자랍니다. 어린아이들의 죄를 방치하면 머잖아 어른과 같은 죄를 지어요. 제가 자라는 것을 사회가 막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죄를 방치하잖아요. 그러면 그들은 어른들과 똑같은 죄를 지어요. 왜냐하면 사회가 그들의 죄를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죄를 막아내는 공동체예요. 요즘 인권을 이유로 죄가 조장되는 사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인권이 존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인권을 핑계로 방치한 죄로 인해서 국민들이 더 고통을 당해요. 인권의 위로 방치한 죄로 인해서 나라들이 더 많은 곤란과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좋은 부모가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들의 죄가 자라지 않도록 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예요. 좋은 목회자가 어떤 목회자일까요? 성도들의 죄를 자라지 않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죄가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이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의 주관자가 인간처럼 보이지만 죄가 자라게 되면 죄가 인간을 주관하게 됩니다. 그 어느 순간 죄가 시키는 대로 죄가 이끄는 대로 살게 돼요.
회개하지 않는 죄는 자랍니다. 그리고 내 삶을 영적인 사망으로 이끌어갑니다. 죄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죄가 영적인 열매를 썩게 만들고 죄가 영적인 변화를 방해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은밀한 곳에서 죄가 자라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제가 오늘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찬양하고 결단할 때 회개의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아요. 가만히 있어도 회개하지 않는데 용서되는 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용서받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과 제 속에 숨겨진 죄를 우리가 찬양 중에 함께 보고 기도할 때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